두 용어 차이 모호 하지만 속시원한 설명 없어
두 용어를 놓고 혼란스런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논점은 두 용어가 어떤 차이가 있고, 여권은 왜 원격의료에 거부감을 드러내고 일제히 비대면 의료라는 말을 전면에 내세우는가이다.
논란은 김연명 청와대 사회수석이 지난 13일 “원격의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이 많았지만 최근에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어 검토하고 있다”고 밝히면서 촉발됐다. 이 같은 발언은 문재인 대통령이 한국판 뉴딜의 일환으로 비대면 의료 서비스를 집중 육성하겠다는 뜻을 밝힌 이후여서 주목을 받았다. 정부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원격의료를 본격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읽혀졌다.
그러자 의료단체에서 극단적 투쟁을 선언하는 등 논란이 커지자 청와대와 여당이 주워담기에 나섰다. 요점은 정부가 추진하는 것은 원격의료가 아니라 비대면 의료 또는 비대면 진료라는 것이다. 강기정 청와대 정무수석은 “코로나19의 2차 대유행이 왔을 때를 대비해 인프라를 충분히 깔아야 한다”면서도 “원격의료 공론화가 아니다”고 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정부는 환자와 의료진의 안전과 향후 예상되는 제2차 대유행에 대비하기 위해 비대면 진료 체계 구축을 추진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조정식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김 수석이 코로나19 때문에 의료 혜택을 받지 못한 분에게 비대면 의료를 실시했더니 성과가 있다고 이야기했던 것”이라며 “이는 원격의료를 본격 추진하는 것과 별도의 이야기”라고 했다. 이어 “원격의료보다는 비대면 의료라는 용어를 쓰는 게 맞다”고 강조했다. 윤관석 민주당 정책위 수석부의장도 당정이 원격의료를 구체적으로 추진하거나 협의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여권은 왜 원격의료에 대해 이렇게 민감한 반응을 보일까. 원격의료가 첫발을 뗀 것은 김대중 정부 때인 2000년이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은 ‘지식정보화 사회 구현’을 적극 추진하면서 이를 위한 규제 개혁 과제 중 하나로 원격의료를 내세웠다. 그해 강원도 16개 시·군을 대상으로 시범 사업이 실시됐다.
그러나 지난 20년 간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도 고령화 사회에 대비하고 소프트웨어 시장을 육성하기 위한 일환으로 원격의료를 추진했다. 하지만 의료 단체 등의 반발로 논란만 거듭했다. 여권 골수 지지층은 “의료 민영화를 앞당겨 대기업과 대형병원 배만 불린다”는 논리로 반대하고 있다.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의료법 개정안은 국회에서 먼지만 쌓인 채 이달 말 임기가 끝나는 20대 국회에서 폐기될 운명에 처했다.
원격의료는 컴퓨터·화상통신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기를 이용해 의사가 멀리 떨어져 있는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다. 그러나 원격의료 시범 사업은 원격 모니터링만 가능해 애초부터 한계가 있었다. 진단과 처방을 받으려면 환자가 보건소 등을 찾은 뒤 의사 또는 간호사가 1차 의료기관의 의사와 화상으로 연결해 줘야만 했다.
정부는 지난해 7월 강원도를 규제특구로 지정해 원격의료를 허용했지만 참여하는 의료기관이 없어 유명무실화 돼 있는 상황이다. 이 마저도 원격의료의 핵심인 진단과 처방은 간호사가 환자의 집을 방문해야 가능하다. 의사와 환자 간 전면적 원격의료와 거리가 있다. 그러다가 코로나19 사태로 원격의료 실시를 위한 계기가 잡히는 듯했지만, 여권이 일제히 “원격의료는 아니다”고 선을 긋고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원격의료와 여권이 내세우는 비대면 의료는 무슨 차이점이 있을까. 여당 지지층 일각에선 정부가 사실상 원격의료를 추진하면서 지지층의 반발을 의식해 용어만 비대면 진료, 비대면 의료로 바꿔 부르고 있다고 지적한다. 청와대와 여당 주요 인사들은 원격의료와 비대면 의료는 다르다고 하면서도 두 용어 사이에 어떤 차이점이 있는지 속시원한 설명은 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이들이 언급한 비대면 진료는 코로나19 사태로 실시된 전화를 통한 의료 상담에 강조점을 두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비대면 진료는 현재까지 석 달 이상 운영되면서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데 중요한 성과를 냈다”며 “당초 대형병원에서만 (전화) 진료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그렇지 않았다. 동네 병원들까지 상당수 전화 진료를 했고 여러 환자들이 이용했다”고 강조했다.
조정식 정책위 의장은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현재 당청이 검토하는 것은 코로나19로 인해 전화로 진료한 것에 대해 평가를 한 다음 향후 이 같은 긴급재난으로 격리되는 상황에 대비해 인프라를 구축하고 체계화시키자는 것”이라고 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 실시된 비대면 진료는 단순 전화통화로 이뤄졌다. 비대면 진료가 부분 허용된 지난 2월 말부터 지금까지 약 26만 명이 전화 진찰상담을 받았다. 전문가들은 비대면 진료가 단순 전화 상담 수준에 머문다면 첨단 ICT를 이용해 이뤄지는 원격의료와는 거리가 한 참 멀다. 한국판 뉴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이름을 붙이기 민망하다.
미국과 일본, 중국 등은 원격의료 수준이 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참 앞서나가고 있다. 미국은 1990년대부터 원격진료를 도입하기 시작해 전체 진료 6건 가운데 1건이 원격의료로 이뤄지고 있다. 원격의료 뒤 약을 집에서 배달받을 수도 있다. 일본은 2015년 원격의료를 전면적으로 허용했으며, 로봇을 활용한 원격 수술도 할 수 있다. 처방약까지 집에서 받을 수 있는 원격의료 시스템 설치를 올해까지 마칠 계획이다. 2016년부터 원격의료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는 중국은 지난해 5G 기술을 이용해 3000km 떨어져 있는 환자의 뇌수술에 성공해 주목 받은 바 있다.
정부 관계자는 “비대면 진료라는 개념이 단순 전화 상담에만 머물지 않을 것”이라며 “ICT 등 첨단 정보기술을 활용해 환자를 대면하지 않고도 진료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게 될 것”이라고 했다. 김용범 기획재정부 1차관은 “본격적인 비대면 의료를 위한 의료법 개정을 21대 국회에서 논의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다.
사실상 원격의료를 뜻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여권은 거듭 아니라고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비대면 의료는 의료 영리화와 상관없고, 의사의 안전한 진료와 환자의 안전한 진료를 받을 권리를 위한 것”이라며 “이 자체가 공공성을 갖출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비대면 의료의 공공성과 원격의료의 영리적 측면을 부각시킨 것이지만, 둘 사이의 개념이 여전히 모호한 것은 마찬가지다.
홍영식 한경비즈니스 대기자 ys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