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범신라인 공동체, 동아시아 물류망 장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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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 동아시아의 물류망을 장악한 범신라인 공동체의 활동
신라인과 고구려·백제 유민으로 구성된 재당신라인
동아시아 운하경제와 해양무역에서 활약
신라인과 고구려·백제 유민으로 구성된 재당신라인
동아시아 운하경제와 해양무역에서 활약

범신라인들의 구성
재당신라인들은 고구려·백제 유민과 신라인 등으로 구성돼 있었다. 수적으로 가장 많은 고구려 유민들은 이정기(李正己)일가가 다스린 제나라에 살다가 제가 멸망한 후 ‘신라인’이라는 이름으로 변했다. 백제계 유민들은 전라도 해안 일대에서 임시정부를 따라 일본열도로 탈출했다. 충청도와 경기도 해안지방에서는 황해중부 횡단항로를 이용해 산둥성과 장쑤성 해안에 도착한 후 고구려 유민들과 합세했다. 816년에는 농민들 170여명이 저장성 지역으로 건너왔다. 이 같은 ‘보트피플’들과 승려, 유학생, 심지어는 노예로 팔려온 신라인들은 함께 신라촌을 이루고 살았다. 일종의 ‘신라타운’인 셈이다. 그리고 점차 ‘재당신라인(在唐新羅人)’이라는 존재로 탈바꿈한다.
운하경제와 해양무역에 참여한 재당신라인
![[윤명철의 한국, 한국인 재발견] 범신라인 공동체, 동아시아 물류망 장악하다](https://img.hankyung.com/photo/202005/01.22633578.1.jpg)
8세기 중엽에 이르면서 동아지중해 세계는 본격적으로 평화의 시대, 상업의 시대, 무역의 시대로 접어들었다. 이때 신라와 일본을 당나라 중심의 유라시아 물류망 속에 편입시키는 일을 범신라인 상인들이 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신라인들은 해안지역에 정착, 제염업, 숯 굽는 일, 조선업 등에 종사하면서 점차 신라 무역과 발해 무역의 거점인 등주(봉래시) 등 북쪽의 해안부터 저장성 이남의 해안을 이어주는 운송업 등에 참여하고 있었다. 따라서 상품의 전달과 보관, 유통 등의 물류망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는 상인 집단들과 운송 교통망을 장악한 항해인 집단과 깊이 연관됐다.
동아지중해의 해양조건과 신라인들의 해양활동

847년 9월. 장보고가 세운 산둥반도의 법화원 앞을 출항한 신라배는 일본 승려인 엔닌(圓仁)을 태우고 황해중부를 2일 만에 횡단한 후에 서해연안을 타고 내려와 큐슈에 도착하는 장거리 항해에 성공했다. 신라인들은 일본의 견당선들도 왕복 항해에 50% 이하의 성공률 밖에 안되는 난이도 높은 동중국해 사단항로도 활용했다. 819년에는 신라인이 당나라의 월주(越州)사람들과 함께 일본에 왔고, 신라 상인인 왕청이 당나라 상인들과 3개월 동안 표류하다 혼슈 북부의 출우국(아끼다현)에 표착했다. 847년에는 신라 상인들과 당나라 상인 등 43인이 양자강 하류의 쑤저우(蘇州)를 출발해 대재부(현재 큐슈 북부)에 도착했다. 일본이 파견한 15차 견당사는 839년에 초주(현재 회안)에서 신라배 9척과 선원 60명을 차용해 이 항로를 이용해 귀국했다. 필자는 1997년에 뗏목을 만들어 저장성 주산군도를 출항해 17일째에야 흑산도에 상륙한 적이 있다. 2003년도에는 산동성에서 경기만, 완도(청해진), 제주도를 경유해 일본 견당선들의 출항지인 고또(오도)열도까지 30여 일 간 항해한 바 있다. 이러한 고난도 항해에 뛰어난 능력을 보인 범신라인들은 남해항로, 동해남부 항로까지 적절하게 이용하면서 동아지중해 무역망을 확장하고 활성화시켰다.
신라인들의 뛰어난 조선술
재당 신라인들의 거주지와 범신라인 공동체의 운영방법

이처럼 재당 신라인들은 해안가의 거점도시들을 유기적으로 연결하고, 조직적으로 역할분담을 시켰다. 동시에 장보고의 힘을 빌어 군사력까지 동원, 신라 정부와 국적이 다른 신라인의 민간 상인조직들을 연결시켰다(김성훈 교수). 이른바 인적 네트워크, 물류 네트워크, 항로의 일원화를 성공시켜 ‘범신라인 공동체’를 완성했다. 동아시아 세계는 이들의 도움이 없으면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연결될 수 없었다. 특히 일본은 신라와 관계가 악화되면 무역은 물론이고, 견당사를 파견하는 일 조차 어려워서 민간조직인 이들에게 의존했다.
범신라인 공동체의 현재적 의미
현명하고 용감한 신라인들은 갈등과 분열을 극복하고, 해양능력을 바탕으로 범신라인 공동체를 이룩하면서 동아시아 세계의 물류망을 장악한 경제부국, 문화선진국이 되었다. 놀랍게도 산둥에서 저장까지 이어지는 재당 신라인들의 해안경제 벨트는 현재 중국의 연해개방 지역에 해당하고, 일부는 경제특구 전략에 중요한 거점이다.
중국은 덩샤오핑의 ‘경제특구론과 점선면 전략’, 후진타오의 ‘역사공정’과 ‘해양강국론’을 거쳐 시진핑의 ‘신중화제국주의’와 ‘일대일로’에 이르기까지 중요한 정책모델들은 역사에서 찾았다. 위기를 겪는 한국이 만약에 ‘신한민족경제권’과 ‘신해양강국론’을 추진한다면 ‘범신라인 공동체’의 활동과 ‘장보고의 청해진 특구’를 모델로 삼으면 어떨까.
윤명철 < 동국대 명예교수·우즈베키스탄 국립 사마르칸트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