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5년 희곡 '폭발'…실제 항쟁 참여자와 닮은 주인공 발자취
외신 뉴스에 바탕, 군부독재 향한 군중의 분노 '폭발'로 표현
고려인 문학에 등장한 5·18은…'독재·저항·학살'
디아스포라의 역사를 지닌 고려인은 고국에서 일어난 5·18 민주화운동을 독재와 저항, 학살이라는 열쇳말로 문학 작품에 기록했다.

17일 김병학(55) 고려인 연구가에 따르면 고려인 2세 한글 문학가 한진(1931∼1993)이 1985년 집필한 희곡 '폭발'은 고려인 문학사에서 5·18을 다룬 유일한 작품이다.

원제목이 '양공주'인 작품은 당시 소비에트연방 지식인의 민족해방주의 관점에서 5·18과 이산가족 찾기 등 1980년대 한국사를 다룬다.

5·18은 극 중 주요 인물인 철호가 직접 경험한 사건으로 등장한다.

대학생 철호는 1980년 5월 광주에서 행방불명돼 5년 만에 강원도 고향 집으로 돌아온다.

계엄군에게 붙잡혀 혹독한 고문을 당한 철호는 감옥에 갇혔다가 풀려나는 고초를 겪는다.

작가 한진은 실제 광주에서 항쟁 참여자들이 겪은 삶과 꼭 닮은 궤적을 철호라는 인물을 통해 돌아보게 한다.

5·18 항쟁 묘사는 철호의 독백으로 작품 곳곳에서 등장한다.

희생자 숫자가 부풀려진 면이 있으나 미국과 유럽, 일본발 외신뉴스로 위르겐 힌츠페터 등 언론인이 전한 광주 소식에 바탕을 뒀다고 김 연구가는 설명했다.

고려인 문학에 등장한 5·18은…'독재·저항·학살'
군인들이 어떻게 수많은 시민을 학살했고, 많은 사람이 벌떼처럼 들고일어나는 과정을 한진은 '폭발'에 담아 고려인에게 알렸다.

제목은 전두환 군부독재를 향한 군중의 분노와 작품 주요 소재인 불발탄이 터지는 장면의 중의적인 표현이라고 김 연구가는 부연했다.

'폭발'은 연극 무대에 올라 고려인뿐만 아니라 소련 사회에서도 크게 주목받았다.

김 연구가가 카자흐스탄을 방문한 1992년 당시 많은 고려인 후손이 수도 서울을 제외한 한국의 주요 도시 가운데 광주를 기억했다.

'폭발'은 국가지정기록물 제13호로 지정된 고려인 문화예술 기록물 23권에 속한다.

해당 기록물을 모아온 김 연구가는 "'폭발'은 5·18을 시대 상황과 거시적으로 겹치는 중요 사건 가운데 하나로 다룬다"고 말했다.

김 연구가는 "한진 작가가 냉전이라는 장막에 갇혔어도 광주 상황을 심도 있게 전한 언론 뉴스를 통해 5·18 문제를 크게, 가슴 아프게 느껴 작품으로 남긴 듯하다"고 덧붙였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