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엔 유가 하락에 배팅했지만…가격 상승으로 무더기 손실 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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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유가 급락으로 손실을 봤던 국내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 투자자들이 이번달에는 만기를 앞두고 유가 하락에 큰 돈을 걸었다. 이번달에도 선물 만기 직전에 가격이 폭락할 거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최근 유가는 계속 오르고 있다. 하락에 배팅한 투자자들은 유가가 오르면 손실을 입는다. 선물 만기가 며칠 남지 않은 상황이어서 대규모 손실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커졌다.
◆원유 선물 매도한 투자자
1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은 7개 대형 증권사와 선물회사(NH선물, 삼성선물, KB증권, 메리츠증권, 신한금융투자, 하나금융투자, 유안타증권)를 통해 미니WTI선물 6월 인도분을 83단위 매도(지난 15일 기준)한 상태다. 선물을 ‘매도했다’(매도포지션을 취했다)는 건 ‘이 계약을 맺을 당시 가격으로 미래에 해당 선물을 매도하겠다’는 약정을 맺어놨다는 뜻이다. 미니선물이 아닌 일반 선물 매도량은 얼마나 되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보다 훨씬 클 가능성이 높다. 계약 1단위는 미니선물이 500배럴이고 일반 선물이 1000배럴이어서 단위당 투자 금액도 일반 선물이 크다.
선물 매도자는 기초자산 가격이 오르면 손실을 본다. 기초자산이 20달러일 때 매도했는데 30달러가 됐다면, 매도자는 청산할 때 이를 30달러에 산 뒤 20달러에 계약 상대에게 넘겨야 한다. 청산은 만기 전에 꼭 해야 한다. 6월 인도분 만기는 미니WTI선물이 오는 19일 새벽 3시30분(한국시간), 일반 WTI선물이 20일 아침 6시다.
원유 선물을 매수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들 증권사를 통한 미니WTI선물 6월 인도분 매수는 5단위에 불과하다. 매수 투자자는 기초자산의 가격이 오르면 수익을 본다. 매수보다 매도 투자가 훨씬 많은 건 지난달 만기를 앞두고 벌어진 유가 폭락 사태가 이번달에도 재현될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으로 손실 위기
투자자들의 기대와 달리 최근 유가는 오르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WTI선물 6월 인도분 가격은 지난달 22일 13.78달러에서 이달 15일 29.43달러로 113.57% 올랐다. 지난달 유가가 계속 떨어졌던 것과 반대다. 유가 폭락의 주범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정점을 지났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원유 수요 예측량을 올려잡았고, 주요 산유국도 감산량을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매도 투자자가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선물 투자자는 거래 전에 증거금을 증권사 계좌에 미리 넣어놓는다. 손실을 보면 증권사는 증거금에서 손실분을 뺀다. 최근 미니WTI선물 거래를 위한 증거금은 1단위당 5500달러 선이다. 83단위면 증거금만 45만6500달러(약 5억6000만원)다. 파악되지 않은 다른 증권사의 증거금과 일반 WTI선물 증거금(1만1000달러)까지 더하면 투자금액은 이보다 훨씬 클 가능성이 높다.
무더기 반대매매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증권사는 평가손실이 증거금의 일정 비중을 넘으면 투자자에게 증거금 보충을 요구하는 ‘마진콜’을 한다. 그래도 보충이 안되면 강제 청산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유가가 30달러를 넘으면 매도 물량에 대한 반대매매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기 코앞…리스크 간과 우려”
물론 만기 직전에 원유 가격이 또 다시 폭락할 가능성은 있다. 존 켐프 로이터 수석연구원은 지난 15일 자신의 트위터에 “WTI 6월 인도분이 만기가 됐을 때 인도돼야 하는 현물(선물 미청산 물량)은 1억3800만배럴 남았다”며 “청산 속도가 빨라져야 지난달 같은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만기가 비슷하게 남은 시기에 2억배럴 정도가 미청산 상태였다. 이번달에는 지난달보다 양이 적지만 그렇다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반대 전망도 있다. 아비 라젠드란 미국 콜롬비아대 세계에너지연구소(CGEP) 부교수는 “이번달에는 원유 선물에 대한 투기적 수요가 많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이 완충작용을 해 지난달처럼 (만기 직전 물량 밀어내기에 따른) 유가 급락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김찬영 삼성자산운용 ETF컨설팅팀장은 “위험회피(헤지) 목적이 아닌 투기목적으로 선물을 매도하는 건 위험(리스크)이 커 해외에서는 잘 하지 않는다”며 “최근 마이너스 유가 사태는 매우 이례적이고 일반적으로는 최저가가 0달러지만, 올라갈 때는 끝도 없이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국내에서 원자재 투자 리스크를 과소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어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양병훈/선한결 기자 hun@hankyung.com
◆원유 선물 매도한 투자자
17일 증권업계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은 7개 대형 증권사와 선물회사(NH선물, 삼성선물, KB증권, 메리츠증권, 신한금융투자, 하나금융투자, 유안타증권)를 통해 미니WTI선물 6월 인도분을 83단위 매도(지난 15일 기준)한 상태다. 선물을 ‘매도했다’(매도포지션을 취했다)는 건 ‘이 계약을 맺을 당시 가격으로 미래에 해당 선물을 매도하겠다’는 약정을 맺어놨다는 뜻이다. 미니선물이 아닌 일반 선물 매도량은 얼마나 되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보다 훨씬 클 가능성이 높다. 계약 1단위는 미니선물이 500배럴이고 일반 선물이 1000배럴이어서 단위당 투자 금액도 일반 선물이 크다.
선물 매도자는 기초자산 가격이 오르면 손실을 본다. 기초자산이 20달러일 때 매도했는데 30달러가 됐다면, 매도자는 청산할 때 이를 30달러에 산 뒤 20달러에 계약 상대에게 넘겨야 한다. 청산은 만기 전에 꼭 해야 한다. 6월 인도분 만기는 미니WTI선물이 오는 19일 새벽 3시30분(한국시간), 일반 WTI선물이 20일 아침 6시다.
원유 선물을 매수한 사람은 별로 없었다. 이들 증권사를 통한 미니WTI선물 6월 인도분 매수는 5단위에 불과하다. 매수 투자자는 기초자산의 가격이 오르면 수익을 본다. 매수보다 매도 투자가 훨씬 많은 건 지난달 만기를 앞두고 벌어진 유가 폭락 사태가 이번달에도 재현될 거라고 봤기 때문이다.
◆유가 상승으로 손실 위기
투자자들의 기대와 달리 최근 유가는 오르고 있다. 시카고상품거래소(CME)에서 WTI선물 6월 인도분 가격은 지난달 22일 13.78달러에서 이달 15일 29.43달러로 113.57% 올랐다. 지난달 유가가 계속 떨어졌던 것과 반대다. 유가 폭락의 주범인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정점을 지났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올해 원유 수요 예측량을 올려잡았고, 주요 산유국도 감산량을 늘리고 있다.
이에 따라 매도 투자자가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선물 투자자는 거래 전에 증거금을 증권사 계좌에 미리 넣어놓는다. 손실을 보면 증권사는 증거금에서 손실분을 뺀다. 최근 미니WTI선물 거래를 위한 증거금은 1단위당 5500달러 선이다. 83단위면 증거금만 45만6500달러(약 5억6000만원)다. 파악되지 않은 다른 증권사의 증거금과 일반 WTI선물 증거금(1만1000달러)까지 더하면 투자금액은 이보다 훨씬 클 가능성이 높다.
무더기 반대매매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증권사는 평가손실이 증거금의 일정 비중을 넘으면 투자자에게 증거금 보충을 요구하는 ‘마진콜’을 한다. 그래도 보충이 안되면 강제 청산한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유가가 30달러를 넘으면 매도 물량에 대한 반대매매가 나오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만기 코앞…리스크 간과 우려”
물론 만기 직전에 원유 가격이 또 다시 폭락할 가능성은 있다. 존 켐프 로이터 수석연구원은 지난 15일 자신의 트위터에 “WTI 6월 인도분이 만기가 됐을 때 인도돼야 하는 현물(선물 미청산 물량)은 1억3800만배럴 남았다”며 “청산 속도가 빨라져야 지난달 같은 상황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달에는 만기가 비슷하게 남은 시기에 2억배럴 정도가 미청산 상태였다. 이번달에는 지난달보다 양이 적지만 그렇다고 안전한 것은 아니다.
반대 전망도 있다. 아비 라젠드란 미국 콜롬비아대 세계에너지연구소(CGEP) 부교수는 “이번달에는 원유 선물에 대한 투기적 수요가 많지 않았다”며 “이런 상황이 완충작용을 해 지난달처럼 (만기 직전 물량 밀어내기에 따른) 유가 급락이 나올 가능성은 낮다”고 전망했다.
김찬영 삼성자산운용 ETF컨설팅팀장은 “위험회피(헤지) 목적이 아닌 투기목적으로 선물을 매도하는 건 위험(리스크)이 커 해외에서는 잘 하지 않는다”며 “최근 마이너스 유가 사태는 매우 이례적이고 일반적으로는 최저가가 0달러지만, 올라갈 때는 끝도 없이 올라갈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 국내에서 원자재 투자 리스크를 과소 평가하는 분위기가 있어 우려스럽다”고 덧붙였다.
양병훈/선한결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