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날 5언더파 몰아쳐
임희정·배선우 1타차로 제쳐
데뷔 2년 만에 생애 첫 승
짜릿한 역전으로 생애 첫 승
‘밀레니얼 소녀’ 박현경이 ‘신데렐라 스토리’의 주인공이 됐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이후 세계적으로 가장 먼저 열린 골프 대회에서 생애 첫 승을 ‘메이저대회’로 신고했다. 이 대회는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올해 첫 대회이자 메이저대회로 호주와 일본 등 10여 개국에 생중계되며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박현경은 “꿈꿔왔던 순간이 오늘 이뤄져서 행복하다. 이 순간만을 생각하며 훈련해왔다. 대회가 열리기 전에 다섯 번 대회장을 찾아 코스 공략법을 연구한 게 좋은 결과로 이어진 것 같다”고 소감을 전했다. 박현경은 이날 버디 6개, 보기 1개를 묶어 5언더파 67타를 쳤다. 최종합계 17언더파 271타, 박현경은 우승상금 2억2000만원을 받았다.
배선우(26)와 공동 2위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한 박현경의 기세가 초반부터 좋았던 것은 아니다. 3타 차 선두로 라운드를 시작한 ‘사막여우’ 임희정(20)이 1번홀(파5)과 3번홀(파4)에서 버디를 몰아치자 타수는 5타까지 벌어졌다. 2번홀(파3)에서 배선우가 버디를 잡자 순위도 한 단계 주저앉았다.
박현경은 흔들리지 않고 자신만의 템포로 플레이를 이어갔다. 박현경은 4번홀(파4) 버디에 이어 6번홀(파4), 7번홀(파5)을 몰아치면서 임희정을 압박했다. 7번홀에서 임희정이 보기를 범하자 둘의 타수는 한 타 차로 좁혀졌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9번홀(파4)에서 1m 파 퍼팅을 놓치며 보기를 기록한 것. 꾸준한 기량으로 3억900만원의 상금을 벌어들였지만 우승이 없었던 지난해 모습이 다시 나오는 듯했다. 박현경은 공격적인 플레이로 위기를 탈출했다. 승부처는 13번홀(파4). 11번홀(파5), 12번홀(파3)에서 연속 버디를 잡아낸 박현경은 약 2.5m 거리의 버디 퍼트를 홀에 떨궈 한 타 차 단독 선두로 치고 올라갔다. 공동 선두였던 임희정은 이보다 짧은 약 1m짜리 파 퍼트를 놓쳐 2타 차 공동 2위로 뒷걸음질쳤다.
임희정은 15번홀(파5)에서 버디를 추가하며 재역전을 노렸으나 기세가 오른 박현경을 넘어서지 못했다. 마지막까지 타수를 지킨 그는 생애 첫 우승을 짜릿한 역전승으로 장식했다. 임희정과 배선우는 박현경에게 한 타 모자란 16언더파로 공동 2위에 머물렀다.
루키 동기들 8승 거둘 때 무승
박현경은 지난해 데뷔 때부터 “언제든 우승할 재목”이란 평가를 받은 유망주다. 2013년 국가대표 상비군에 뽑힌 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국가대표를 지냈다. 16세이던 2016년 세계 아마추어골프 선수권 대회 단체전 우승을 따내기도 했다. 2017년 송암배 대회에서 나흘 합계 29언더파 259파로 아마추어 72홀 최소타를 기록하며 독보적인 존재로 떠오르기도 했다.
프로 데뷔 이후엔 속앓이가 이어졌다. 임희정, 조아연(20), 이승연(22) 등 동기들이 8승을 거두는 동안 우승컵을 한 번도 들어 올리지 못했다. 2019 시즌 신인상에서도 동갑내기 조아연, 임희정에게 밀려 3위에 그쳤다. 박현경은 “티를 안 냈지만 지난해 우승이 없어 속앓이를 많이 했다”며 “올해 목표였던 첫 승 달성에 성공했으니, 평균타수상을 받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겠다”고 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에서 활약하는 베테랑들은 이날 무서운 뒷심을 보여줬다. 김효주(25)는 이날 보기 없이 버디 8개를 쓸어담아 14언더파 공동 4위로 대회를 마무리했다. 1언더파로 최종 라운드를 시작한 이정은(24)도 보기 없이 8언더파를 몰아쳐 9언더파 공동 15위를 기록했다.
김효주는 “오늘 이렇게 잘 치지 않았으면 얻어가는 것이 없었을 텐데 그래도 오늘 호성적으로 자신감을 많이 얻었다”고 말했다. 이정은은 “코로나19라는 위기 속에서 이렇게 대회를 할 수 있게 된 것만으로도 모든 분에게 감사하다”며 “몇 가지 적응이 잘 되지 않은 부분도 있었지만 집에서 혼자 연습하는 것보다 대회에 나오니 훨씬 좋다”고 말했다.
양주=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