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당장 車뿌리 썩는데 정부는 미래차…"사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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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동차 생태계 '뿌리' 부품업계 고사 위기
▽ 일감 없어 출근도 못해…'공장 가동률 30%'
▽ 정부, 미래차 기술전환 해답으로 내놨지만
▽ 줄도산부터 막아야 미래 기술전환도 가능
▽ 일감 없어 출근도 못해…'공장 가동률 30%'
▽ 정부, 미래차 기술전환 해답으로 내놨지만
▽ 줄도산부터 막아야 미래 기술전환도 가능
국내 자동차 생태계가 부품 협력사로 얼키고설킨 뿌리부터 썩어가기 시작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국내 자동차 생태계의 뿌리인 부품업계는 그야말로 고사 위기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으로 완성차 업계 수출길이 막히며 협력사인 부품업체들의 가동률도 대폭 내려간 탓이다.
부품업계는 당장 줄도산을 막아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정부는 친환경차와 자율주행 등 미래차 기술로 체질을 전환하자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일선 현장의 우려가 높다.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차로의 전환은 필수적이라는데 이견은 없다. 문제는 당장 도산이 우려되는 부품업계가 장기적인 위기를 감내하기 벅차다는데 있다. 한 부품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사치"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 1위 만도도 2차 구조조정
현대차그룹 계열사를 제외한 국내 1위 자동차 부품사 만도는 지난달 생산직 희망퇴직을 받았다. 지난해 7월 임원을 20% 이상 감원하고 대규모 사무직 희망퇴직을 받는 1차 구조조정에 이은 2차 구조조정이다. 가뜩이나 국내 자동차 생산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여파가 겹치며 경영 환경이 악화한 데 따른 조치였다.
만도와 같은 1차 협력업체들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에서 1차 협력업체는 약 350곳이며, 1차 협력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2·3차 협력업체는 약 5000곳이다. 2·3차 협력업체에 설비와 원자재 등을 공급하는 일반 협력업체도 3000여곳에 달한다. 문제는 2·3차 협력업체와 일반 협력업체들이다.
업계에서는 2·3차 협력사들은 줄도산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제기된다. 대부분 중소·중견기업인 2·3차 협력업체들은 대기업에 비해 기초 체력이 약하기도 하지만, 지난해 완성차 업계에 연이은 파업과 올 초 코로나19로 인한 완성차 업체 생산차질을 겪으며 가뜩이나 부족한 체력이 더 줄었기 때문이다. 부품업계 2차 협력업체 종사자 A씨는 이달 들어 출근한 날이 4일에 그쳤다. A씨는 "연차를 의무적으로 모두 소진하라더니 이달 들어서는 근무일도 주3일로 줄었다. 예전에는 일감이 많아 잔업도 잦았지만, 이제는 그 반대가 됐다"고 푸념했다. 이어 "회사가 자력으로 버틸 수 있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며 정부 지원이 없을 경우 유동성 위기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1차 협력업체 종사자 B씨는 최근 긴 휴식 기간을 가졌다. 원해서가 아니라 연차를 모두 소진하라고 떠밀려서 가진 휴가였다. B씨는 "코로나19 시국에 갈 곳도 없는데 쉬라기에 집에서만 있었다"며 "최근 출근해 며칠만에 (2차) 협력업체 사장님을 만났는데 얼굴이 급격히 수척해져 있었다. 3차 협력업체는 휴업에 들어간 곳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 부품업계 상황 더 악화 전망
자동차산업연합회는 최근 '코로나19 기업애로지원센터' 조사를 통해 2차 협력업체 가운데 공장 가동률이 30% 수준까지 떨어진 업체가 속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사 대상이었던 24개 협력업체 가운데 절반은 현재 휴무를 하고 있거나 완성차업체 휴무 일정에 따라 휴무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5월 한달을 휴무하는 업체도 있었다. 매출도 60%가량 줄어 이달 유동성 문제로 존립이 어려운 회사들이 줄지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달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자동차업계 간담회에서도 같은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부품업계는 4대 보험 납부가 어려울 정도의 유동성 위기를 겪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다며 "은행 대출을 이용하려 해도 추가 담보를 요구하고 신용등급마저 따져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 발표와 금융권간의 현실적 괴리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부품업계 상황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우선 국내 자동차 생산량이 감소 추세에 있다. 지난해 생산량은 395만대로 4년 전인 2015년 455만대에 비해 약 60만대 감소했다. 업계는 올해 생산량을 350만대 수준으로 전망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겹쳤다. 유럽과 미국 수출이 급감하면서 지난달 국내 자동차 수출량은 전년 대비 44.3% 감소했고, 생산량도 22% 이상 줄었다. 유럽 등의 경우 여름휴가 기간이 한달 가량 되기에 일러야 8월에나 소비가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유동성 필요한데 정부는 미래차
업계는 당장 고사하는 업체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긴급운영자금 지원 △자동차 취득세 70% 감면 등의 조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업계의 체질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부품업계를 친환경차와 자율주행 등 미래차 부품 생산이 가능하도록 체질전환을 시켜 위기 상황을 넘어선다는 구상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미래차 산업 발전전략'의 후속조치로 '자동차 부품기업 혁신지원 사업'을 최근 공고했다. 미래차로의 사업전환을 준비 중이거나 추진 중인 70개 내외 자동차 부품기업을 선정해 기업당 7000만원 이내 지원을 하는 내용이 담겼다. 산업부는 올해 390억원을 들여 '시장자립형 3세대 xEV(전기구동차) 산업육성사업'도 진행 중이다.
자동차 부품업체가 모여있는 지자체들도 관련 사업을 내놓고 있다. 울산시는 내연기관 자동차 부품 기업들이 미래차 분야로 기술을 전환하도록 연구개발(R&D)과 컨설팅 등을 돕는 ‘내연기관 부품기업의 전력·전자 융합기술 전환 지원사업’을 추진한다. 경북도와 경남도, 전북도, 아산시, 광주시 등도 관련 사업을 내놓고 관내 자동차 부품업체의 기술 전환 지원에 나섰다.
다만 업계에서는 장기적 기술 전환과 별개로 단기 유동성 공급 지원이 절실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만기 자동차산업연합회장은 "글로벌 생산차질과 수요위축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중소협력업체들의 줄도산이 우려된다"며 "향후 몇 달간의 글로벌 수요 급감을 내수가 대체해주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달라"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차로의 전환은 필수적이지만, 당장 도산이 우려되는 부품업계가 장기적 관점을 갖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 코로나19로 인해 촉발된 눈 앞의 경영위기를 넘겨야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부품업계는 당장 줄도산을 막아달라고 호소하고 있지만 정부는 친환경차와 자율주행 등 미래차 기술로 체질을 전환하자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고 일선 현장의 우려가 높다.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차로의 전환은 필수적이라는데 이견은 없다. 문제는 당장 도산이 우려되는 부품업계가 장기적인 위기를 감내하기 벅차다는데 있다. 한 부품업계 관계자는 이 같은 상황을 두고 "사치"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 1위 만도도 2차 구조조정
현대차그룹 계열사를 제외한 국내 1위 자동차 부품사 만도는 지난달 생산직 희망퇴직을 받았다. 지난해 7월 임원을 20% 이상 감원하고 대규모 사무직 희망퇴직을 받는 1차 구조조정에 이은 2차 구조조정이다. 가뜩이나 국내 자동차 생산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코로나19 여파가 겹치며 경영 환경이 악화한 데 따른 조치였다.
만도와 같은 1차 협력업체들의 사정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계에서 1차 협력업체는 약 350곳이며, 1차 협력사에 부품을 납품하는 2·3차 협력업체는 약 5000곳이다. 2·3차 협력업체에 설비와 원자재 등을 공급하는 일반 협력업체도 3000여곳에 달한다. 문제는 2·3차 협력업체와 일반 협력업체들이다.
업계에서는 2·3차 협력사들은 줄도산을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도 제기된다. 대부분 중소·중견기업인 2·3차 협력업체들은 대기업에 비해 기초 체력이 약하기도 하지만, 지난해 완성차 업계에 연이은 파업과 올 초 코로나19로 인한 완성차 업체 생산차질을 겪으며 가뜩이나 부족한 체력이 더 줄었기 때문이다. 부품업계 2차 협력업체 종사자 A씨는 이달 들어 출근한 날이 4일에 그쳤다. A씨는 "연차를 의무적으로 모두 소진하라더니 이달 들어서는 근무일도 주3일로 줄었다. 예전에는 일감이 많아 잔업도 잦았지만, 이제는 그 반대가 됐다"고 푸념했다. 이어 "회사가 자력으로 버틸 수 있는 시기는 지난 것 같다"며 정부 지원이 없을 경우 유동성 위기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관측했다.
1차 협력업체 종사자 B씨는 최근 긴 휴식 기간을 가졌다. 원해서가 아니라 연차를 모두 소진하라고 떠밀려서 가진 휴가였다. B씨는 "코로나19 시국에 갈 곳도 없는데 쉬라기에 집에서만 있었다"며 "최근 출근해 며칠만에 (2차) 협력업체 사장님을 만났는데 얼굴이 급격히 수척해져 있었다. 3차 협력업체는 휴업에 들어간 곳도 적지 않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 부품업계 상황 더 악화 전망
자동차산업연합회는 최근 '코로나19 기업애로지원센터' 조사를 통해 2차 협력업체 가운데 공장 가동률이 30% 수준까지 떨어진 업체가 속출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사 대상이었던 24개 협력업체 가운데 절반은 현재 휴무를 하고 있거나 완성차업체 휴무 일정에 따라 휴무계획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5월 한달을 휴무하는 업체도 있었다. 매출도 60%가량 줄어 이달 유동성 문제로 존립이 어려운 회사들이 줄지을 것으로 내다봤다.
지난달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자동차업계 간담회에서도 같은 주장이 제기된 바 있다. 이 자리에서 부품업계는 4대 보험 납부가 어려울 정도의 유동성 위기를 겪는 업체가 늘어나고 있다며 "은행 대출을 이용하려 해도 추가 담보를 요구하고 신용등급마저 따져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부 발표와 금융권간의 현실적 괴리가 크다"고 입을 모았다.
부품업계 상황은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우선 국내 자동차 생산량이 감소 추세에 있다. 지난해 생산량은 395만대로 4년 전인 2015년 455만대에 비해 약 60만대 감소했다. 업계는 올해 생산량을 350만대 수준으로 전망했다. 여기에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겹쳤다. 유럽과 미국 수출이 급감하면서 지난달 국내 자동차 수출량은 전년 대비 44.3% 감소했고, 생산량도 22% 이상 줄었다. 유럽 등의 경우 여름휴가 기간이 한달 가량 되기에 일러야 8월에나 소비가 회복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 유동성 필요한데 정부는 미래차
업계는 당장 고사하는 업체가 늘어날 것으로 보고 △긴급운영자금 지원 △자동차 취득세 70% 감면 등의 조치를 요구하고 있지만, 정부는 보다 장기적 관점에서 업계의 체질 전환을 추진하고 있다. 부품업계를 친환경차와 자율주행 등 미래차 부품 생산이 가능하도록 체질전환을 시켜 위기 상황을 넘어선다는 구상이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자동차연구원은 지난해 10월 발표한 '미래차 산업 발전전략'의 후속조치로 '자동차 부품기업 혁신지원 사업'을 최근 공고했다. 미래차로의 사업전환을 준비 중이거나 추진 중인 70개 내외 자동차 부품기업을 선정해 기업당 7000만원 이내 지원을 하는 내용이 담겼다. 산업부는 올해 390억원을 들여 '시장자립형 3세대 xEV(전기구동차) 산업육성사업'도 진행 중이다.
자동차 부품업체가 모여있는 지자체들도 관련 사업을 내놓고 있다. 울산시는 내연기관 자동차 부품 기업들이 미래차 분야로 기술을 전환하도록 연구개발(R&D)과 컨설팅 등을 돕는 ‘내연기관 부품기업의 전력·전자 융합기술 전환 지원사업’을 추진한다. 경북도와 경남도, 전북도, 아산시, 광주시 등도 관련 사업을 내놓고 관내 자동차 부품업체의 기술 전환 지원에 나섰다.
다만 업계에서는 장기적 기술 전환과 별개로 단기 유동성 공급 지원이 절실하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만기 자동차산업연합회장은 "글로벌 생산차질과 수요위축이 동시에 발생하면서 중소협력업체들의 줄도산이 우려된다"며 "향후 몇 달간의 글로벌 수요 급감을 내수가 대체해주도록 정부가 적극 나서달라"고 말했다.
다른 업계 관계자는 "장기적 관점에서 미래차로의 전환은 필수적이지만, 당장 도산이 우려되는 부품업계가 장기적 관점을 갖는 것은 사치에 가깝다. 코로나19로 인해 촉발된 눈 앞의 경영위기를 넘겨야 가능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오세성 한경닷컴 기자 ses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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