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후항쟁 역사적 장소…문 대통령 "오늘의 패배, 내일의 승리로"
5·18 기념식 열린 옛 전남도청…과거·미래 잇는 시공간으로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이 40주년을 맞아 역사상 처음으로 옛 전남도청 앞 5·18 민주광장에서 열렸다.

민주화를 외치며 군사 정권에 끝까지 저항하다 목숨을 잃은 시민의 숭고한 희생을 기억하고, 여전히 미완으로 남아있는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데 5·18 민주광장은 부족함이 없었다.

기념식장은 이러한 의미를 담아 참석자들이 옛 전남도청을 바라볼 수 있도록 좌석이 배치됐다.

무대 역시 도청의 모습이 가려지지 않도록 열린 무대로 마련됐다.

도청 본관 건물 옥상에는 대형 태극기가 내걸리며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한 획을 그은 역사적 장소로서의 의미를 더했다.

기념 공연도 옛 전남도청 건물을 활용해, 최후까지 도청을 지키며 계엄군의 총탄에 쓰러져간 시민군을 표현했다.

공연 참가자들이 도청 경비실로 쓰였던 건물과 본관 옥상에 올라 '님을 위한 행진곡'을 힘차게 불렀다.

옛 전남도청과 5·18 민주광장은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 이어진 5월 항쟁의 중심지이다.
5·18 기념식 열린 옛 전남도청…과거·미래 잇는 시공간으로
항쟁의 마지막 날인 27일 전남도청에 남아있던 시민군은 진압 작전에 나선 계엄군과 최후 항쟁을 벌이다 목숨을 잃었다.

이때 생포된 사람들은 모두 군 당국의 가혹한 조사를 받아야 했고, 평생을 '살아남은 자'로서 죄책감에 시달려야 했다.

계엄군의 집단 발포가 자행된 곳도 전남도청 앞이다.

민주화를 외치며 가두시위를 벌이던 시위대가 총으로 무장한 시민군으로 바뀌게 된 계기가 된 곳이다.

5월 21일 전남도청을 거점으로 삼고 있었던 계엄군은 그 앞에 모여있던 시위대를 향해 집단 발포했다.

수많은 시위대가 총에 맞아 사망하거나 다쳤지만 누가 발포 명령을 내렸는지, 최종 책임자는 누구인지 40년이 지나도록 밝혀지지 않았다.

전두환 등 당시 군 당국 책임자들은 '자위권을 발동한 것'이라며 발포 책임을 부인하고 있지만, 이 주장을 뒤엎을만한 결정적인 증거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다.

특별법에 따라 최근 조사를 개시한 5·18 진상규명조사위원회가 찾아야 할 구멍 난 진실의 퍼즐 조각이기도 하다.

5월 항쟁 당시 계엄군의 헬기 사격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전일빌딩도 옛 전남도청을 마주 보고 서 있다.
5·18 기념식 열린 옛 전남도청…과거·미래 잇는 시공간으로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017년 전일빌딩 탄흔이 헬기 사격에 의한 것이라고 결론 내린 바 있다.

하지만 전씨는 자서전에서 헬기 사격을 목격했다고 증언한 고(故) 조비오 신부를 '파렴치한 거짓말쟁이'라고 했다가 사자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돼 재판을 받고 있다.

당시 헬기 사격이 있었는지 여부가 재판의 쟁점이 되는 등 여전히 진상 규명이 필요한 사안으로 남았다.

이 외에도 계엄군의 민간인 학살과 진실을 은폐·왜곡하려고 했던 국가 폭력의 진상을 밝혀내는 것이 5·18진상조사위의 과제다.

전남도청은 2005년 10월 전남 무안군으로 이전한 뒤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전시 공간으로 리모델링 되면서 별관이 훼손되고 탄흔이 제거되기도 하는 등 부침을 겪다 지난해 원형 복원을 시작했다.

기념식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은 기념사에서 "계엄군의 총칼에 이곳 전남도청에서 쓰러져간 시민들은 살아남은 이들이 더 나은 세상을 열어갈 것이라 믿었다"며 "오늘의 패배가 내일의 승리가 될 것이라 확신했다"고 말했다.

이어 "산 자들은 죽은 자들의 부름에 응답하며 민주주의를 실천했다"며 "광주의 진실을 알리는 것이 민주화 운동이 되었고 5·18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위대한 역사가 됐다"고 평가했다.
5·18 기념식 열린 옛 전남도청…과거·미래 잇는 시공간으로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