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쿠팡이 진정한 위너가 되려면
2010년 8월. 세 명의 하버드대 졸업생이 자본금 30억원으로 온라인 공동구매 할인 서비스 업체를 설립했다. 그로부터 10년. 이 업체는 매출 7조원에 직원이 3만 명에 달하는 한국에서 ‘가장 파워풀한’ 유통 기업이 됐다. 10년째 내리 적자고, 파산설·매각설이 끊이지 않지만 롯데 신세계 등 거대 유통회사들이 벤치마킹하는 그런 회사. 쿠팡 얘기다.

쿠팡은 단순한 기업이 아니다. 하나의 ‘현상’이 됐다. 시쳇말로 ‘안 써 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써 본 사람은 없다’는 중독성 짙은 서비스를 제공한다. 임모 교수의 얘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쿠팡이 누적 적자와 경쟁 심화, 수익 모델 부재로 1년을 못 버틸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온라인 강의를 위해 밤 10시에 주문한 마이크를 다음날 새벽 6시에 받아보고 생각이 바뀌었어요. 없어지기 힘든, 아니 없어서는 안 될 기업이 됐구나라고.”

유통개념 바꾼 혁신 주도했지만

쿠팡은 한국에서 ‘유통’의 개념을 바꿔 놨다. 무릇 유통 회사라면 가장 싼 제품을 총알처럼 배송해 줄 수 있어야 한다는 인식을 만들어 놨다. 매출 100조원의 롯데가 그룹 계열사 온라인 채널 통합 작업에 나선 것도, 여러 유통 업체들이 ‘새벽 배송’ ‘당일 배송’ 등 유사 서비스를 시작한 것도 다 쿠팡 때문이다. 이 회사의 진가는 코로나19 위기에서 더 빛을 발하고 있다. 언택트(비대면) 소비 바람에 연초 월 200만 건이던 주문량이 300만 건 안팎으로 치솟았다. 쿠팡은 어느덧 ‘대세 기업’으로 자리잡았다.

그렇다면 쿠팡의 앞날엔 꽃길만 펼쳐져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아 보인다는 게 전문가들 얘기다. 우선 자금이 문제다. 쿠팡의 지난해 적자 규모는 7000억원이다. 이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아직 안심할 단계는 아니다. 한 경쟁회사 임원은 “회사 사람들에게 쿠팡을 더 많이 사용하라고 독려하고 있다”고 귀띔했다. 배달을 많이 할수록 적자가 커지는 구조여서 직접 나서서 경쟁사를 홍보하고 있다고 했다. 쿠팡으로서는 돈이 떨어지기 전에 시장을 장악하든지, 새로운 캐시카우를 찾아야 하지만 둘 다 여의치 않다. 경쟁사들은 죽기는커녕 돈과 기술로 무장하고 계속 진입하고 있다. 신규 투자 유치나 상장 등으로 버틸 자금을 마련해야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로 그마저 어려워지고 있다.

배민 트라우마부터 해소해야

돈보다 더 중요한 게 ‘비전’이다. 쿠팡은 설립 이후 줄곧 확장 전략을 써 왔다. 목표는 하나다. 유통시장을 장악한 뒤 압도적 지배력으로 사업을 물류, 미디어, 콘텐츠 등으로 확장해 기업 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이른바 ‘아마존 모델’이다.

시장에선 쿠팡이 그 후 어떻게 변할지 우려하는 목소리가 많다. ‘배달의민족 트라우마’다. 배달 서비스 1위 업자인 배민은 업계 2위 요기요와의 합병 결정으로 압도적 시장지배자가 되자마자 수수료 인상 카드를 내밀었다. 여론의 지탄을 받고 계획을 철회했지만 배민을 보는 눈은 싸늘해졌다. 한 유통 대기업 고위 임원은 “쿠팡이 지금은 최저가 보장과 총알배송으로 서비스하지만 결국 값비싼 청구서를 들이밀 것”이라며 “과연 누구를 위한 혁신인지 잘 지켜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범석 쿠팡 대표는 과거 자신이 설립한 회사를 키워 두 번 매각한 경험이 있다. ‘결국 지배력을 키운 뒤 가격을 올려 매각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그는 “한국에서 100년 이상 가는 기업으로 키울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가 일각의 우려를 일소하고 한국 소비자 편의와 유통산업 발전에 기여하는 ‘진정성 있는’ 혁신을 해 주길 바란다.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