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여백이 있는 생활
얼마 전 큰맘 먹고 집안 정리를 했다. 말이 정리지, 대규모 구조조정이었다. 처음부터 마음을 먹은 건 아니었다. 작은 물건 하나를 찾다가 벌어진 일이었다. 화장대, 옷장, 서랍장, 책장, 선반, 주방, 급기야 베란다 창고로까지 일이 커졌다. 문을 여는 곳마다 왜 이리 쓸데없이 쟁여둔 물건이 많던지. 건어물 널어놓듯 거실에 꺼내놓은 잡동사니들이 마치 ‘어떻게 하나 보자’는 식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법정 스님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스님이 난초 두 분을 받아 정성스레 기른 적이 있었다. 비료도 주고, 여름철이면 그늘로 자리를 옮겨주며 애지중지 보살폈다. 그러던 여름 어느 날 잠시 집을 비운 사이 난초를 햇볕 드는 뜰에 내놓은 것이 생각나 허겁지겁 돌아가 보니 난초가 잎을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급히 물을 부어준 뒤에야 난은 겨우 생기를 되찾았다. 이때 스님은 ‘집착이 곧 괴로움’임을 깨달았다고 한다.

잡동사니는 집착과 욕망의 파생상품이다. 그 대상이 물질이든 정신이든 마찬가지다. 마음속 잡동사니란 쓸데없는 걱정들이다. 많은 사람이 걱정을 입에 달고 산다. 걱정 없는 날이 없다. 걱정이 없으면 걱정을 일부러라도 만든다. 잘 안 되면 어쩌지, 실패하면 어쩌지, 거절당하면 어쩌지, 손해 보면 어쩌지…. 불필요한 걱정은 하루에도 수없이 우리 마음속에 일어난다.

우리가 하는 걱정의 40%는 일어나지도 않을 일에 대한 걱정이란다.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고, 22%는 사소한 걱정이고, 4%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걱정이고, 나머지 4%는 우리가 바꿔 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라고 어니 젤린스키라는 사람이 말했다. 그러니까 걱정과 불안을 마음속 여기저기에 쌓아 놓는 것이다. 쓰지도 않는 잡동사니를 집안 구석구석에 쌓아두듯이.

필요해서 산 물건 때문에 마음이 쓰일 때가 많다. 새로 산 자동차가 긁힐까 봐, 신형 휴대폰을 잃어버릴까 봐, 처음 들고나온 가방이 비에 젖을까 봐. 무엇인가를 소유한다는 것은 결국 그 무엇에 얽매이는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내가 이 물건을 가진 것일까. 이 물건이 내 마음을 가진 것일까. 많이 가졌다는 것이 때로는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겠으나, 그만큼 많이 얽매여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물질이 주는 즐거움은 분명 있다. 그러나 그 물질이 곧 자아는 아니다. 진정한 자아는 소유물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이런 잡동사니는 욕망의 군더더기에서 생겨나고, 그것들이 곧 마음속 잡동사니, 즉 쓸모없는 걱정거리를 생산한다. 그러니 필요 있는 것과 필요 없는 것, 남길 것과 버릴 것, 비울 것과 채울 것들을 정리해 보자. 집안뿐 아니라 마음속에 있는 온갖 잡동사니도 과감하게 정리하자. 걱정만 없애도 마음속 면적이 넓어지고 환해진다. 불안해하지만 않아도 다른 일에 쏟을 에너지가 비축된다. 여백이 있는 생활이 여유 있는 삶을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