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논설실] 정유株의 시대가 다시 올까
-
기사 스크랩
-
공유
-
댓글
-
클린뷰
-
프린트
1분기 국제유가 급락으로 '4조원대 손실' 현실화
언택트 트렌드 확산에 석유수요 부진 고착화 우려
"2015년부터 3년간 이어진 상승세 재연 쉽지 않아"
SK이노 배터리, 에쓰오일 油化 성패가 '레벨업' 열쇠
언택트 트렌드 확산에 석유수요 부진 고착화 우려
"2015년부터 3년간 이어진 상승세 재연 쉽지 않아"
SK이노 배터리, 에쓰오일 油化 성패가 '레벨업' 열쇠
‘코로나19 쇼크’가 본격화된 1분기에 가장 큰 타격을 받은 업종을 꼽으라면 정유업종이 첫 손에 꼽힐 것입니다. 국제 원유가격이 서부텍사스원유(WTI) 기준으로 1분기에 67.0% 급락해 SK이노베이션(-1조7751억원) GS칼텍스(-1조318억원) 에쓰오일(-1조72억원) 현대오일뱅크(-5631억원)가 모두 대규모 적자를 봤습니다.
이로 인해 주가도 급락했지요.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의 1분기 주가 하락률은 각각 40.6%와 40.0%로,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하락률(20.1%)의 두 배를 웃돕니다. 2010년을 전후로 차(자동차)‧화(화학)‧정(정유) 시대의 한축을 형성했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투자자들의 관심은 ‘정유주가 과연 코로나19 이전의 수준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쏠려 있을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유기업들의 실적전망에서부터 찾아봐야겠지요.
재고손실은 회복되겠지만…
정유사 실적은 크게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좌우됩니다. 석유제품 가격에서 생산 비용을 뺀 정제마진과 정제설비에 투입되기 수개월 전 구입해 쌓아둔 재고의 평가손익이 실적을 결정짓는 변수들입니다.
지난해까지 약 2년간 이어진 미‧중 무역전쟁 등의 요인으로 정제마진은 이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올해 1분기엔 유가급락으로 수개월 전 비싸게 사둔 원유 재고평가손실까지 확대돼 ‘역대급’ 손실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정유 4사의 1분기 재고평가손실은 전체의 70∽80%를 차지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2분기에는 재고평가손실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국제유가가 지난달 중순 ‘바닥’을 치고 완만한 상승궤적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싼 값에 비축해 둔 원유가 실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2분기 정제마진 회복 난망
문제는 정제마진입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항공유 휘발유 등 석유제품 수요가 급냉하면서 정제마진이 좀처럼 마이너스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5월 둘째 주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1.6달러로 9주 연속 마이너스를 나타냈습니다. 정유업계가 손익분기점으로 생각하는 4달러를 한참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이에 따라 증권업계는 2분기에도 정유사들의 영업손실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에 대한 유진투자증권의 영업손실 전망치는 각각 4610억원과 2950억원입니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사실 지금 정유 및 에너지 업계의 주된 관심사는 2분기, 혹은 올해 실적에 머무는 게 아닙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원유, 혹은 석유제품 수요가 코로나19 쇼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에 쏠려 있지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등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한 대로 “코로나 이전의 세상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예측이 현실화된다면, 정유업계 입장에서도 완전히 다른 생존방식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예측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입니다.
글로벌 석유메이저로 꼽히는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의 신임 최고경영자(CEO) 버나드 루니의 최근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도 이에 대한 고민이 읽힙니다. 루니 CEO는 “코로나19로 인한 여행금지와 봉쇄조치들로 이번 사태 이전 하루 1억 배럴에 달했던 원유 소비가 3분의 1이나 줄어 들었다”며 “향후 몇 년간 석유업계가 처할 도전을 가중시켰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재택근무, 여행수요 감소 등 생활패턴의 변화 가능성을 석유제품 수요의 구조적 감소요인으로 꼽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는 “여행수요는 줄어들고, 재택근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은 앞으로도 오래 지속될 것”이라며 “원유수요가 이미 정점에 도달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봉쇄 정책이 비교적 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영국에서는 석유와 디젤 수요가 코로나 위기 이전에 비해 40∼45% 적은 수준(영국 석유소매협회 추정치)에 머물러 있습니다. 영국 내비게이션 업체 톰톰에 따르면 최근 런던 교통량은 작년 이맘때의 40%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루니 CEO의 예측이 현실화된다면 국내 정유사들의 이익규모도 앞으로 상당 기간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 어려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겠지요. 정유주 투자자들이나, 예비 투자자들 입장에서 이런 변화들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투자에 나서야할 것입니다.
염두에 둘만한 투자 아이디어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꼽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① 구조적 상승세는 어려울 것이다.
국제 원유가격은 WTI를 기준으로 2014년 6월 배럴 당 100달러대에서 2016년 2월 26달러로 수직 낙하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때도 재고평가손실 급증으로 상당수 정유기업들이 적자를 내는 등 어려움을 겪었죠.
하지만 이 기간의 조정은 미국의 셰일오일 공급 확대로 인한 문제였지 원유 수요 자체엔 문제가 없었습니다. 상당 기간 원유수요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금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이후 재고평가손실이 축소되면서 정유기업들의 실적도 회복이 됐고, 증시에서 주요 정유주들은 3배 가까이 급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돼 정제마진이 부진한 흐름을 이어간 2018년 이후 지난해 말까지는 박스권에서 오르내리는 지리한 흐름을 이어갔지요.
실적의 완전 회복이 요원한 만큼 2015년 하반기부터 2018년 하반기까지 3년간 이어진 정유주의 구조적 상승세가 재연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코로나 위기 직전 박스권보다 낮은 수준에서 박스권 흐름을 이어가지 않을까 점쳐집니다.
② 배당 눈높이도 낮춰야
영업이익의 절대 규모가 크게 축소된 만큼 배당의 기준이 되는 순이익이라고 견딜 재간은 없을 것입니다. ‘정유주=고배당주’라는 인식도 어느 정도 수정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전통적 고배당주로 대접받아온 에쓰오일만하더라도 지난해 ‘배당쇼크’를 내는 등 배당기조에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주주가치 제고를 강조하는 그룹 방침에 따라 최근 수년간 배당을 크게 늘려왔지만, 올해는 그럴 시기는 아닐 것입니다.
③ 사업구조 변화에 주목
‘정제사업에 의존하다가는 천수답 경영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정유업계의 변신을 자극해왔습니다. 돌파구로 찾았던 게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전기차 배터리, 에쓰오일은 석유화학 사업이지요.
이 같은 비(非)정유 사업의 비중이 높아져 이들 종목들이 ‘더 이상 정유주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시장에 확산돼야 비로소 주가의 ‘레벨업’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해보인다는 게 증권업계의 시각입니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
이로 인해 주가도 급락했지요. 상장사인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의 1분기 주가 하락률은 각각 40.6%와 40.0%로, 같은 기간 코스피지수 하락률(20.1%)의 두 배를 웃돕니다. 2010년을 전후로 차(자동차)‧화(화학)‧정(정유) 시대의 한축을 형성했던 것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투자자들의 관심은 ‘정유주가 과연 코로나19 이전의 수준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쏠려 있을 것입니다.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정유기업들의 실적전망에서부터 찾아봐야겠지요.
재고손실은 회복되겠지만…
정유사 실적은 크게 두 가지 요인에 의해 좌우됩니다. 석유제품 가격에서 생산 비용을 뺀 정제마진과 정제설비에 투입되기 수개월 전 구입해 쌓아둔 재고의 평가손익이 실적을 결정짓는 변수들입니다.
지난해까지 약 2년간 이어진 미‧중 무역전쟁 등의 요인으로 정제마진은 이미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습니다. 올해 1분기엔 유가급락으로 수개월 전 비싸게 사둔 원유 재고평가손실까지 확대돼 ‘역대급’ 손실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지요. 정유 4사의 1분기 재고평가손실은 전체의 70∽80%를 차지합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2분기에는 재고평가손실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국제유가가 지난달 중순 ‘바닥’을 치고 완만한 상승궤적을 그리고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싼 값에 비축해 둔 원유가 실적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얘기입니다.
2분기 정제마진 회복 난망
문제는 정제마진입니다. 이번 사태로 인해 항공유 휘발유 등 석유제품 수요가 급냉하면서 정제마진이 좀처럼 마이너스에서 벗어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5월 둘째 주 싱가포르 복합정제마진은 배럴당 –1.6달러로 9주 연속 마이너스를 나타냈습니다. 정유업계가 손익분기점으로 생각하는 4달러를 한참 못 미치는 수준입니다.
이에 따라 증권업계는 2분기에도 정유사들의 영업손실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과 에쓰오일에 대한 유진투자증권의 영업손실 전망치는 각각 4610억원과 2950억원입니다.
코로나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사실 지금 정유 및 에너지 업계의 주된 관심사는 2분기, 혹은 올해 실적에 머무는 게 아닙니다. 보다 근본적으로 ‘원유, 혹은 석유제품 수요가 코로나19 쇼크 이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에 쏠려 있지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등 많은 전문가들이 예측한 대로 “코로나 이전의 세상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예측이 현실화된다면, 정유업계 입장에서도 완전히 다른 생존방식에 대해 고민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코로나 이전과 이후가 완전히 달라질 것”이라는 예측에 힘이 실리는 분위기입니다.
글로벌 석유메이저로 꼽히는 브리티시 페트롤리엄(BP)의 신임 최고경영자(CEO) 버나드 루니의 최근 파이낸셜타임스 인터뷰에서도 이에 대한 고민이 읽힙니다. 루니 CEO는 “코로나19로 인한 여행금지와 봉쇄조치들로 이번 사태 이전 하루 1억 배럴에 달했던 원유 소비가 3분의 1이나 줄어 들었다”며 “향후 몇 년간 석유업계가 처할 도전을 가중시켰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재택근무, 여행수요 감소 등 생활패턴의 변화 가능성을 석유제품 수요의 구조적 감소요인으로 꼽아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는 “여행수요는 줄어들고, 재택근무를 가능하게 하는 기술은 앞으로도 오래 지속될 것”이라며 “원유수요가 이미 정점에 도달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봉쇄 정책이 비교적 강하게 유지되고 있는 영국에서는 석유와 디젤 수요가 코로나 위기 이전에 비해 40∼45% 적은 수준(영국 석유소매협회 추정치)에 머물러 있습니다. 영국 내비게이션 업체 톰톰에 따르면 최근 런던 교통량은 작년 이맘때의 40%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루니 CEO의 예측이 현실화된다면 국내 정유사들의 이익규모도 앞으로 상당 기간 코로나 이전 수준을 회복하기 어려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겠지요. 정유주 투자자들이나, 예비 투자자들 입장에서 이런 변화들을 충분히 염두에 두고 투자에 나서야할 것입니다.
염두에 둘만한 투자 아이디어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꼽아볼 수 있을 것입니다.
① 구조적 상승세는 어려울 것이다.
국제 원유가격은 WTI를 기준으로 2014년 6월 배럴 당 100달러대에서 2016년 2월 26달러로 수직 낙하했던 적이 있습니다. 이 때도 재고평가손실 급증으로 상당수 정유기업들이 적자를 내는 등 어려움을 겪었죠.
하지만 이 기간의 조정은 미국의 셰일오일 공급 확대로 인한 문제였지 원유 수요 자체엔 문제가 없었습니다. 상당 기간 원유수요 회복을 기대하기 어려운 지금과는 비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이후 재고평가손실이 축소되면서 정유기업들의 실적도 회복이 됐고, 증시에서 주요 정유주들은 3배 가까이 급등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미‧중 무역전쟁이 시작돼 정제마진이 부진한 흐름을 이어간 2018년 이후 지난해 말까지는 박스권에서 오르내리는 지리한 흐름을 이어갔지요.
실적의 완전 회복이 요원한 만큼 2015년 하반기부터 2018년 하반기까지 3년간 이어진 정유주의 구조적 상승세가 재연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됩니다. 코로나 위기 직전 박스권보다 낮은 수준에서 박스권 흐름을 이어가지 않을까 점쳐집니다.
② 배당 눈높이도 낮춰야
영업이익의 절대 규모가 크게 축소된 만큼 배당의 기준이 되는 순이익이라고 견딜 재간은 없을 것입니다. ‘정유주=고배당주’라는 인식도 어느 정도 수정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요.
전통적 고배당주로 대접받아온 에쓰오일만하더라도 지난해 ‘배당쇼크’를 내는 등 배당기조에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습니다.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주주가치 제고를 강조하는 그룹 방침에 따라 최근 수년간 배당을 크게 늘려왔지만, 올해는 그럴 시기는 아닐 것입니다.
③ 사업구조 변화에 주목
‘정제사업에 의존하다가는 천수답 경영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다’는 문제의식은 이미 수년 전부터 정유업계의 변신을 자극해왔습니다. 돌파구로 찾았던 게 SK이노베이션의 경우 전기차 배터리, 에쓰오일은 석유화학 사업이지요.
이 같은 비(非)정유 사업의 비중이 높아져 이들 종목들이 ‘더 이상 정유주가 아니다’라는 인식이 시장에 확산돼야 비로소 주가의 ‘레벨업’이 가능할 것입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많이 필요해보인다는 게 증권업계의 시각입니다
송종현 논설위원 screa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