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가족부 실태조사…성폭력 피해 경험자 "정신적 고통, 타인 못 믿게 돼" 호소
불법 촬영 가해자 대부분은 '모르는 사람'…성폭행 가해자는 '지인' 답변 많아


성 착취 영상물 제작·유포 사건인 'n번방 사건'이나 성추행과 같은 성폭력을 방지하려면 남성과 여성 모두 '가해자에 대한 처벌 강화'가 가장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여성 대부분은 성폭력 피해를 본 후 정신적 고통을 당했으며,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되는 등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폭력 대책 1순위는…남녀 모두 '가해자 처벌 강화' 꼽아
여성가족부는 지난해 8∼11월 전국의 19세 이상 64세 이하 남녀 1만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2019 성폭력 안전실태조사' 결과를 21일 발표했다.

성폭력을 막기 위해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남녀 모두 가해자 처벌 강화를 1순위로 꼽았다.

두 번째로 필요한 정책에 대해서도 '신속한 수사와 가해자 검거'라고 답해 남녀가 동일한 인식을 나타냈다.

세 번째로 시급한 대책부터는 남성과 여성 사이에 순위가 조금씩 달랐는데 여성 응답자는 '가해자 교정치료를 통한 재범방지 강화'를, 남성 응답자는 '안전한 생활환경 조성'을 골랐다.

여성은 '안전한 생활환경 조성'을 네 번째로, '불법 촬영과 유포에 한정된 처벌 대상의 범위 확대'를 다섯번째로 필요한 정책으로 꼽았다.

남성 응답자들 사이에서는 처벌 대상 범위 확대와 가해자 교정치료가 4·5순위 정책으로 매겨졌다.
성폭력 대책 1순위는…남녀 모두 '가해자 처벌 강화' 꼽아
살면서 한 번이라도 성폭력 피해를 본 적이 있는지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9.6%가 성추행·성폭행 등 신체 접촉을 동반한 성폭력을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비접촉 성폭력 중에는 가해자의 성기노출(12.1%)로 인한 피해 경험이 가장 많았다.

다음으로 음란전화(10.5%), 성희롱(5.6%), 불법촬영(0.3%), 불법촬영물 유포(0.1%)의 순으로 나타났다.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는 여성을 대상으로 성폭력 유형별 피해 실태를 조사한 결과 불법 촬영은 19세 이상 35세 미만에 첫 피해를 봤다는 응답이 64.6%로 가장 많았다.

이 경우, 응답자의 3명 중 1명꼴인 74.9%가 '모르는 사람에게 당했다'고 답했다.
성폭력 대책 1순위는…남녀 모두 '가해자 처벌 강화' 꼽아
성범죄 피해가 발생한 장소로는 '야외, 거리, 등산로, 산책로, 대중교통 시설 등'을 고른 비율이 65.0%로 가장 높았다.

다음으로 '인구 밀집 상업지'(24.2%), '주택가나 그 인접한 도로'(7.5%) 순으로 나타났다.

불법 촬영물을 유포한 범죄를 당한 경험이 있는 응답자들은 69.3%가 19∼35세 때 첫 범죄를 경험한 것으로 조사됐다.

피해 유형으로는 동의 없는 유포(49.0%)와 유포 협박(45.6%)이 가장 많았다.

불법 촬영은 주로 온라인 메신저(55.2%)와 사회관계망서비스(38.5%), 블로그(33.1%)를 통해 퍼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추행이나 성폭행(강간)도 19∼35세 사이에 첫 피해를 봤다는 응답이 각각 68.4%와 59.0%로 가장 높은 비율을 보였다.

피해 횟수별로 '한 번'이라는 응답은 성추행 50.2%, 강간 58.9%로 나타났다.

3회 이상 피해를 봤다는 응답도 20.0%에 달했다.

성추행이나 강간 중 폭행과 협박이 동반된 범죄를 당한 경우, 가해자가 친인척 이외의 아는 사람이라는 응답은 성추행 81.8%, 강간 80.9%에 이르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런 범죄가 빈발한 발생 장소로에 대해서는 성추행이 '인구 밀집 상업지'(46.7%), 강간은 '주거지'(45.2%)가 지목됐다.
성폭력 대책 1순위는…남녀 모두 '가해자 처벌 강화' 꼽아
한 번이라도 성폭력을 당한 경우 여성은 24.4%가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응답해 남성(7.1%)보다 3배 이상 높은 응답률을 보였다.

특히 여성들은 피해 유형별로 강간을 당했을 때 86.8%가 정신적으로 고통을 겪었다고 응답했다.

이어 강간미수(71.5%), 불법 촬영(60.6%), 폭행과 협박을 수반한 성추행(58.1%), 성희롱(47.0%)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성폭력을 당한 여성 중에는 삶이 이전과 달라졌다는 응답도 많았다.

'다른 사람을 믿지 못하게 됐다'는 응답이 34.4%(중복응답)로 가장 많았고, '가해자와 동일한 성별에 대한 혐오감이 생겼다'(28.3%), '누군가가 나를 해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다'(27.3%)는 응답이 뒤를 이었다.

아울러 "주변에 알려봐야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거나 "성폭력 피해는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말을 듣는 등 2차 가해를 당한 비율도 각각 6.3%와 6.2%로 조사됐다.

성폭력 발생 당시 여성들은 '자리를 옮기거나 뛰어서 도망쳤다'는 응답이 64.1%로 가장 많았다.

성폭력 당시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여성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44.0%) 또는 '피해 당시 성폭력인지 몰라서'(23.9%)를 이유로 꼽았다.

남성과 여성 모두를 대상으로 수사기관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를 물은 결과 '피해가 심하지 않아서'라는 답이 가장 많았는데 여성은 32.4%, 남성은 44.7%였다.

이어 여성 29.5%, 남성 29.0%가 '신고해도 소용없을 것 같아서'라고 답했다.

이번 조사에서는 응답자들이 성폭력 관련 법률이나 제도를 알고 있는 비율이 2016년 조사 때 보다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응답자들은 성적수치심을 유발하는 영상물 등을 전달만 해도 범죄가 된다는 점에 대해서는 86.5%가 알고 있다고 답해 2016년의 84.0%보다 늘어났다.
성폭력 대책 1순위는…남녀 모두 '가해자 처벌 강화' 꼽아
성폭력 사건을 전담하는 경찰, 검사, 판사가 있다는 정보에 대해서도 2016년에는 55.6%가 알고 있다고 했지만 이번 조사에서는 63.7%가 알고 있다고 했다.

응답자들은 성폭력 제도나 법률 지식을 얻는 통로에 대해 TV(63.5%)와 인터넷·사회관계망서비스(26.4%), 성폭력 예방 교육(4.5%) 등을 꼽았다.

이정옥 여성가족부 장관은 "가해자 처벌 등 관련 법·제도 개선에 대한 요구가 어느 때보다 높은 상황"이라며 "법·제도를 개선하고 피해자의 관점에서 지원체계를 강화하는 등 성폭력으로부터 안전한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조사는 성폭력 피해와 대응 실태 등을 조사하기 위해 여성가족부가 2007년부터 3년마다 실시하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