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하반기 5나노 본격 양산
초미세 제품 수요에 적극 대응"
삼성전자가 21일 “평택에 EUV 파운드리 라인을 새롭게 구축한다”며 10조원대 투자를 발표한 것은 비전 2030의 연장선상으로 분석된다. 이 부회장은 “어려울 때일수록 미래를 위한 투자를 멈춰서는 안 된다”며 임직원들을 격려했다. 업계에선 TSMC와 삼성전자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00조원 파운드리 시장 공략
삼성전자가 파운드리를 집중적으로 키우는 것은 팹리스(반도체 설계전문 업체)와 함께 시스템반도체 사업의 ‘양대 축’이기 때문이다. 파운드리는 미국 애플, 퀄컴 같은 팹리스의 주문을 받아 반도체를 생산하는 사업이다. 팹리스가 아무리 뛰어난 제품을 개발해도 파운드리의 기술력이 받쳐주지 않으면 생산이 불가능하다. 미국 정부가 대만 파운드리업체 TSMC에 “중국 화웨이의 주문을 받지 말라”고 압박한 것도 같은 이유다.
삼성전자는 파운드리의 중요성을 꿰뚫어봤다. 지난해 기준 세계 시장 규모는 약 100조원에 달한다. 올해도 6~7% 성장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최근 5G(5세대)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등 첨단 기술이 발전하면서 저전력·고성능의 작은 반도체에 대한 수요가 커지고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 최초로 선폭(반도체 회로의 폭) 7㎚ 공정에서 반도체를 양산하며 팹리스들의 이목을 끌었다. 이번에 투자한 평택 EUV 라인은 더 작고 성능이 뛰어난 반도체를 생산할 수 있는 5㎚ 공정이 중심이 될 전망이다.
신규 투자로 첨단 제품 수요에 대응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것도 대규모 투자의 배경으로 꼽힌다. 삼성전자가 2019년 이후 세계 2위를 지키고 있지만, 1위 TSMC와의 격차를 못 좁히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TSMC의 1분기 점유율은 54.1%다. 삼성전자(15.9%)와의 격차가 38.2%포인트에 달한다.
중국 SMIC의 추격도 만만치 않다. 미국과 반도체 패권을 놓고 다투고 있는 중국은 ‘파운드리 자립’을 시도하고 있다. 최근 중국 정부는 SMIC에 2조7700억원을 투자한다고 발표했다. SMIC의 기술력은 14㎚ 수준이지만 머지않아 7㎚ 미만 공정 경쟁에 참여할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전자는 5㎚ 공정에 대한 투자로 TSMC와 기술 경쟁을 벌이는 동시에 후발주자와의 격차를 벌리겠다는 전략이다. 업계에선 삼성전자가 평택 EUV 전용라인에 10조원을 투자할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보유 현금의 10%에 달하는 적지 않은 자금이다. 정은승 사장은 “5㎚ 이하 공정 제품의 생산규모를 확대해 EUV 기반 초미세시장 수요에 적극 대응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파운드리 서비스 역량 강화해야
삼성전자의 과제는 적지 않다. ‘서비스 역량 강화’가 최우선 과제로 꼽힌다. 삼성전자는 공정 미세화와 관련해선 TSMC에 뒤지지 않는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파운드리 전·후 공정과 연계해 제공하는 서비스와 관련해선 다르다. 33년 파운드리 한우물을 판 TSMC는 기술력이 뛰어난 협력사들과 끈끈한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삼성전자보다 고품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고객을 다변화하는 것도 과제다.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 물량의 다수는 삼성전자 시스템LSI사업부에서 나온다. 퀄컴 등을 고객사로 확보했지만 TSMC에 비해 주문받는 물량이 적고 중저가 제품 중심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스템LSI사업부와 경쟁하는 퀄컴, 애플로선 삼성전자에 물량을 주는 게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TSMC는 ‘고객과 경쟁하지 않는다’는 슬로건을 내세우며 삼성전자를 집중 견제하고 있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비전 2030 발표 이후 1~2년 만에 TSMC를 따라잡는 건 과한 욕심”이라며 “장기적인 관점에서 서두르지 않고 경쟁력을 강화하는 전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황정수/이수빈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