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앞줄 왼쪽부터)과 최정우 포스코 회장,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이 지난 15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산업전략회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앞줄 왼쪽부터)과 최정우 포스코 회장,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이 지난 15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산업전략회의’에 참석해 대화하고 있다. /김영우 기자 youngwoo@hankyung.com
한국의 ‘액화천연가스(LNG)선 독주’가 흔들리고 있다. 카타르 LNG프로젝트에 이어 러시아 LNG프로젝트마저 절반을 중국에 내줬다. 반도체, 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조선과 철강 등 제조업 전반에서 중국 기업들의 공세가 거세지고 있다.

22일 외신과 조선업계에 따르면 러시아 국영에너지회사 노바텍이 발주한 LNG선 10척 중 중국 후둥중화조선소가 5척을 따냈다.

대우조선해양도 5척을 받았지만 전량 수주를 자신하고 있던 한국 조선업계는 충격에 빠졌다. 2014년 1차 프로젝트 때는 한국이 15척을 모두 수주했다. 후둥중화조선소는 지난달에도 한국이 싹쓸이 수주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카타르페트롤리엄(QP)과 16척 규모의 LNG선 건조 계약을 맺었다.

LNG선 시장은 최근 수년간 한국이 점유율 80~90%를 유지하며 사실상 독점하다시피 했다. 한국 조선사들은 유조선 등을 중국에 내주고 척당 가격이 약 2억달러(약 2500억원)에 달하는 고부가 LNG선에 집중해왔지만 이 시장까지 중국이 파고든 것이다.

철강업계도 마찬가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포스코 등이 감산을 검토하고 있는데 중국 철강사들은 생산량을 늘리며 ‘치킨게임’에 나섰다. 현대제철은 세 분기 연속 적자가 예상된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이 정부의 경기 부양 기대에 생산량을 늘리고 있다”며 “코로나19로 글로벌 경쟁사들의 체력이 약해진 틈을 노린 것이어서 더 위협적”이라고 말했다.
철강·조선 CEO들의 절규…"中 물량 공세로 생존위기 내몰려"
위기의 철강·조선산업…중국 업체만 증산 나서

“한국 철강사들에 가장 큰 위협은 중국의 물량공세입니다.”

지난 15일 서울 세종대로 대한상공회의소에서 비공개로 열린 포스트 코로나 산업전략 회의에서 최정우 포스코 회장, 안동일 현대제철 사장 등 철강업계 최고경영자(CEO)들은 “최근 철강업계의 가장 큰 고민은 중국”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CEO들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 세계 철강사들이 감산에 나선 상황에서 중국만 생산을 늘리고 있다. 이대로 가면 한국 철강사들의 생존이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어느새 中이 야금야금…韓 'LNG선 독주' 끝났다
물량공세에 감산효과 물거품

코로나19로 철강업계의 생태계가 다시 흔들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자동차 생산과 선박 발주가 줄어들면서 철강 수요가 급감하자 세계 주요 철강사는 잇따라 감산에 들어갔다. 포스코도 12년 만에 감산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가장 먼저 코로나19 타격에서 벗어난 중국이 생산량을 늘리자 감산효과는 물거품이 됐다. 세계철강협회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중국의 조강생산량은 전년 동기 대비 1.4% 증가한 2만3367t을 기록했다. 지난달 중국의 철광석 수입도 전년 동기 대비 18.5% 증가했다. 중국 정부가 코로나19로 인한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고강도 부양책을 내놓을 것으로 예상하고 생산량을 대폭 늘린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은 건설 및 인프라가 전체 철강 수요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개발도상국가인 만큼 정책 효과로 철강 수요가 늘어날 수 있지만 한국은 상황이 다르다. 한국이 강점을 가진 자동차 강판의 수요 반등은 아직 가늠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중국 제철소들의 증산에 원재료 가격까지 치솟고 있다. 현재 철광석 가격은 t당 97.5달러로 9개월 만에 100달러 돌파를 눈앞에 두고 있다. 코로나19가 본격적으로 유행하기 시작한 1월 말보다 22.6% 올랐다. 포스코와 현대제철은 올해 초 철강 가격 인상을 예고했지만 자동차 조선사들은 ‘내 코가 석 자’라며 난색을 보이고 있다. 현대제철은 “올해 2월 자동차 강판가격을 t당 3만원 인상해달라고 요구했지만 답보 상태”라고 밝혔다. 철강업계 관계자는 “국내 시장에도 곧 값싼 중국산 철강제품이 밀려들 것”이라며 “국내 업체들의 협상력이 약해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스프레드(제품과 원재료 가격의 차)가 악화되면서 국내 철강사들은 올해 2분기 최악의 실적을 예고하고 있다. 작년 4분기 20년 만에 첫 분기 적자를 기록한 현대제철은 3개 분기 연속 적자를 기록할 전망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포스코의 2분기 영업이익 전망치는 4392억원으로 2015년 4분기 이후 가장 적을 것으로 예상된다.

철강업체들은 비상경영에 들어갔다. 현대제철은 서울 잠원동 사옥을 매각하기로 했고 강관사업부 매각, 단조사업 분사 등을 검토하고 있다.

조선도 중국 추격에 초비상

조선업계도 중국의 공세에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작년까지 세계 1위의 반도체처럼 ‘액화천연가스(LNG)선 초격차’를 자신했지만 올해 잇따라 중국에 대규모 LNG선 수주를 내주자 긴장하는 분위기다.

글로벌 조선·해운 분석기관인 클락슨에 따르면 중국 조선사들은 올해 272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를 수주해 한국(73만CGT)과 일본(49만CGT)을 멀찌감치 따돌리고 1위를 달리고 있다. 한국은 기대했던 LNG선 수주에 실패하며 중국에 뒤처져 있다.

중국이 카타르 LNG프로젝트에 이어 러시아 LNG프로젝트를 따낸 배경에는 막강한 자본력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은 대기오염을 줄이기 위해 석탄발전을 줄이고 대신 꾸준히 LNG를 늘리고 있다. 가스전을 개발해 LNG를 팔아야 하는 카타르와 러시아가 최대 고객인 중국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조선업계는 중국의 LNG선 건조 능력에 한계가 있다며 올해 나머지 물량 수주를 자신했다. 중국 조선사들은 몇 년 전부터 한국을 따라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기술력에서 한계를 드러내고 있다는 분석에 따른 것이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중국이 꾸준히 LNG선 건조 경험을 쌓는다면 한국과 기술력 격차가 예상보다 빨리 좁혀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