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
연극 영상화한 '스테이지 무비'
'싹 온 스크린' 사업 대폭 강화
극장 상영·VOD로 유료화 추진
오는 28일 개막하는 전주국제영화제엔 독특한 장르의 작품이 출품됐다. 지난해 예술의전당 자유소극장 무대에 오른 연극 ‘늙은 부부 이야기’ 공연 영상이다. 공연 실황이 영화제에 출품된 것은 이례적이다. 그런데 일반 공연 영상과는 사뭇 다르다. 공연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대사가 빠른 속도로 쏟아질 땐 속도를 늦추기도 하고, 인물들이 특정 장소를 언급하는 장면에선 대사를 빼고 배경을 찍어 넣기도 했다. 공연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편집을 해 영화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예술의전당이 공연 실황을 고스란히 담은 ‘아카이빙 버전’과 별도로 제작한 ‘스테이지 무비(Stage Movie)’다. ‘늙은 부부 이야기’에 이어 지난 2월 공연한 연극 ‘여자만세2’ 영상도 영화처럼 편집하고 있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출품도 검토하고 있다.
국내 대표 공연장인 예술의전당이 코로나19 위기에 대응해 다양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영상화 사업, 레퍼토리 개발, 기부 캠페인 등이다. 지난 22일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만난 유인택 예술의전당 사장은 “코로나19를 계기로 공연계에 수천 년 동안 존재했던 고정관념이 깨지고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며 “공연은 공연대로 잘 만들면서 새로운 돌파구를 찾아야만 한다”고 강조했다.
“지속 가능한 작품 있어야만 생존”
예술의전당도 코로나19 사태로 큰 타격을 입었다. 국가 보조금 120억원을 제외하고, 올 한 해 동안 320억원을 자체적으로 벌어야 하는데 공연·전시가 잇달아 취소되며 120억원 대관료 수입을 벌지 못하게 됐다. 오는 7월이면 직원들에게 줄 급여 통장도 고갈될 위기다. “유례없는 위기에도 ‘힘들다’ ‘어렵다’고 얘기하진 않습니다. 공공극장이며 덩치가 큰 예술의전당에 비해 민간단체들은 더 어렵지 않습니까. 일단 은행 대출을 이용하고, 수익 사업도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예술의전당은 2013년부터 공연 영상화 사업 ‘싹 온 스크린(SAC on Screen)’을 해왔다. 이번 코로나19 위기엔 그동안 찍은 영상 중 수작을 골라 온라인으로 21회 상영했다. 반응은 뜨거웠다. 누적 조회 수는 73만 건에 달했다. 유 사장은 “이전처럼 지역 문예회관 등에서 무료로 상영하는 한편 일부 작품은 극장 개봉이나 주문형비디오(VOD) 출시 등 유료화를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레퍼토리 개발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 지난 2월 선보인 클래식 공연 ‘굿모닝 독도’를 동명의 뮤지컬로도 제작해 오는 27일까지 자유소극장에서 공연한다. 창작 오페라 ‘춘향아’, 창작 뮤지컬 ‘김염’ 제작도 추진한다. 유 사장은 “지속 가능한 레퍼토리가 있어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 예로 뮤지컬 ‘빨래’를 들었다. 2005년 초연된 이 작품은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위기에도 관객들의 사랑을 받았다. “코로나19 이후 정상화가 되면 당장 내놓을 작품이 있어야 하잖아요. 그런데 문을 닫은 동안 창작 준비를 제대로 못해 선보일 게 없으면 무대를 열 수가 없어요. 경쟁력 있는 레퍼토리를 갖고 있어야 잠깐 공연을 멈췄다가도 재개할 수 있습니다.”
무대 예술가 위한 기부 캠페인도
예술의전당 자체의 재정난에도 공연계 ‘맏형’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지난 22일부터 기부 캠페인을 시작했다. 일정 금액이 모이면 무대를 잃은 예술가들에게 무대를 만들어 준다. 기부금은 전액 공연 제작에만 사용한다. “예술가에게 무대는 곧 일자리입니다. 무대를 만들어 준 뒤 공연이 끝나고 나면 출연진과 스태프들에게 출연료를 줄 겁니다. 돈이 모이는 대로 소소하게라도 무대를 만들어, 더 많은 분이 공연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코로나19 위기를 계기로 공공 부문과 민간 부문의 매개 역할도 더욱 적극적으로 해 나갈 방침이다. “공연예술이 산업화되기 위해선 민간 부문이 활성화돼야 합니다. 각 예술가와 민간단체에 지역 문예회관 등을 연결해 주는 역할을 충실히 하겠습니다.”
김희경 기자 hk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