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렸던 ‘중국발 대규모 경기부양책’은 없었다. 대신 ‘중국발 지정학적 리스크’가 시장을 덮쳤다. 지난 22일 개막한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결과다. 경기 부양 강도가 약한 건 아니었다. 그렇다고 시장이 환호할 정도로 강하지도 않았다. 투자자들은 중국 효과를 기대했던 철강, 화학, 자동차, 화장품주를 다시 내던졌다. 전문가들은 “중국 정부가 점진적인 경기 회복에 무게를 둔 것”이라고 평가했다. 국내 중국 관련주도 하반기 중국 경기 회복에 따라 서서히 오를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물거품 된 '중국發 호재'…中수출·소비주 회복 '산넘어 산'
‘서프라이즈’ 없었던 경기 부양책

지난 22일 코스피지수는 1.41%(28.18포인트) 내린 1970.14에 거래를 마쳤다. 투자자들은 이날 개막한 중국 전인대에서 기다리던 소식이 나오지 않자 실망 매물을 쏟아냈다. 박수현 KB증권 연구원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과 미·중 무역 갈등으로 경제가 타격을 받은 만큼 시장에선 중국 정부가 예상을 뛰어넘는 부양책을 발표할 것으로 예상했다”고 말했다.

중국 정부는 이날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발표하지 않아 인위적으로 성장률을 끌어올리지는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재정적자 비율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3.6%, 도시 지역 신규 고용 목표는 900만 명으로 잡았다. 증권사 예상 범위 수준이다. 증권가는 이 목표치를 경제성장률로 환산하면 연 3~4%대 성장률이 될 것으로 추정했다.

재정정책과 통화정책 합산 부양책 규모는 GDP 대비 8%였다. 여기에 특별국채, 지방특수채, 감세, 금융 지원 등을 더한 총액 기준 부양책 규모는 GDP 대비 14% 수준이다. 김경환 하나금융투자 연구원은 “딱 시장이 예상한 대로 나왔다”고 말했다.

중국 관련주에 실망 매물

이날 중국 상하이종합지수는 1.89% 내렸다. 주류 업종이 3.3% 급락했고 제약(-2.7%), 건자재(-2.6%), 식품(-2.5%) 등 내수 업종이 많이 내렸다. 기대했던 강력한 내수 부양책이 나오지 않자 실망 매물이 쏟아졌다. 올 들어 전날까지 15.5% 올랐던 중국 주류업체 구이저우마오타이주는 이날 2.8% 하락했다.

국내 증시에서도 중국 수혜주로 꼽히는 철강, 화학, 자동차, 기계, 화장품주가 모두 하락했다. 굴삭기를 파는 두산인프라코어는 이달 들어 21일까지 34.8% 오르다 22일 5.4% 급락했다. 포스코(-2.8%), 롯데케미칼(-3.2%), 현대차(-2.8%), 아모레퍼시픽(-2.9%) 등도 하락폭이 컸다.

대규모 부양책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에 중국 수출주·소비주의 주가 회복엔 좀 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다시 커지는 미·중 갈등 우려

중국 정부의 ‘국가안전법’도 악재였다. 홍콩과 마카오 등 특별행정구 내 반정부 활동을 처벌하는 법안이다. 중국 정부가 홍콩 의회를 거치지 않고 전인대에서 이 법안을 처리하기로 하자 투자 심리가 급속히 악화했다. 미·중 갈등을 키울 요인이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중국이 이 법을 제정하면 강력하게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미·중 갈등 재점화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국내 산업은 정보기술(IT)이다. 노근창 현대차증권 리서치센터장은 “화웨이가 스마트폰을 못 팔게 되고, 이에 반발해 중국인들이 애플 아이폰을 안 사면 삼성전자 스마트폰이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화웨이와 애플이 장사가 안되면 삼성전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부문이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