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웨이, 삼성에 통신반도체도 손 벌릴 듯
중국 화웨이가 하반기 삼성전자에 스마트폰용 반도체 ‘엑시노스’(사진) 공급을 요청할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강화된 반도체 수출 규제가 오는 9월부터 시행되면 화웨이가 스마트폰용 반도체를 자체 조달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산업계에선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어느 편에도 서기 어려운 삼성전자의 입장이 갈수록 난처해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24일 외신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화웨이는 삼성전자에 엑시노스 공급을 요청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엑시노스는 삼성전자의 이동통신용 SoC(통합칩셋), AP(애플리케이션프로세서) 제품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 22일 덕 풀러 홍콩중문대 교수의 발언을 인용해 “화웨이가 반도체 개발을 위한 투자를 늘리는 한편 삼성이 독자 개발한 통신용 반도체를 구매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화웨이의 엑시노스 구매 검토는 미국 정부가 최근 발표한 ‘대(對)화웨이 수출 규제’ 영향이 크다. 미국 상무부는 14일 미국의 기술 및 장비를 활용해 화웨이 또는 자회사가 설계한 반도체를 생산, 공급하는 업체는 9월부터 수출 면허(라이선스)를 받으라고 발표했다.

화웨이는 자회사 하이실리콘이 설계한 스마트폰용 SoC ‘기린(KIRIN)’을 대만의 파운드리(반도체 수탁생산) 업체인 TSMC에서 제조해 자사 스마트폰과 네트워크장비에 넣고 있다. 미국의 추가 제재 조치로 TSMC와의 거래가 금지되면 화웨이는 통신반도체를 조달할 길이 끊긴다. 상황이 급변하자 고성능 SoC와 AP 생산 능력이 있는 삼성전자에 손을 벌리게 될 것이란 얘기다. 쉬즈쥔 화웨이 순환회장도 지난 3월 말 실적설명회에서 “미국의 규제가 강화되면 한국 삼성전자 또는 대만 미디어텍 등에서 5G 칩을 공급받으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산업계에선 화웨이의 요청이 오더라도 삼성전자가 엑시노스를 공급하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우세하다. 반도체 매출을 늘리는 것보다 화웨이의 스마트폰, 네트워크장비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게 더 큰 이익이 된다는 점에서다. 화웨이는 2019년 기준 세계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7.6%로 1위 삼성전자(21.6%)를 맹추격하고 있다. 삼성이 화웨이에 미국의 제재를 피해갈 수 있는 ‘우회로’를 제공한다는 논란에 직면할 수도 있다.

업계 관계자는 “삼성이 과거에도 화웨이의 엑시노스 공급 요청을 거부한 적이 있다는 얘기가 들린다”며 “납품을 안 할 가능성이 크지만 공개적으로 밝히기엔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말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