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20일 검찰의 강압 수사 비리 의혹이 제기된 한명숙 전 총리 뇌물수수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사진=연합뉴스
더불어민주당 지도부가 20일 검찰의 강압 수사 비리 의혹이 제기된 한명숙 전 총리 뇌물수수 사건에 대한 재조사를 촉구하고 나섰다. 사진=연합뉴스
대법원이 2015년 유죄를 확정한 한명숙 전 국무총리의 정치자금 9억원 수수 사건의 재심 가능성을 두고 여야가 공방을 벌이고 있다. 실제 한 전 총리의 판결이 다시 번복될 수 있을 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한 전 총리는 2015년 대법원에서 징역 2년과 함께 추징금 8억8000만원 확정판결을 받았다. 최근 언론 보도를 통해 '한 전 총리에게 뇌물을 줬다'고 허위 진술을 했다는 고(故)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의 옥중 '비망록'이 재조명되면서 민주당을 중심으로 재조사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비망록' 새로운 증거 아냐…법조계 "재심 청구 어려워"

형사소송법 제420조에 따르면 유죄를 확정판결 받은 경우 재심을 청구할 수 있는 경우는 7가지다. △유죄 판결에 쓰인 증거물이 위조·변조이거나 △유죄 판결에 쓰인 증언, 감정 등이 허위일 때 △원판결의 증거된 재판이 확정재판에 의해 변경된 때 등이다. 무고로 인해 유죄 선고를 받은 경우, 무고죄가 증명됐을 때에도 재심 사유가 된다. 이에 따르면 형사소송법상 한씨나 다른 증인의 허위 증언 등이 확실하게 증명돼야만 재심이 가능하다.

만약 새로운 증거를 발견해 재심을 청구하더라도, 그 증거는 기존 판결의 유·무죄를 뒤집을 만큼 명백해야 한다. 그러나 검찰의 회유와 압박 때문에 '한 전 총리에게 불법정치자금을 줬다'고 허위진술을 했다는 주장을 담은 한씨의 비망록은 이미 기존 재판에서 증거로 쓰였다. '새로운 증거'가 아니므로 재심의 사유가 될 수 없다.

다만 공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가 한 전 총리 사건을 수사한다면 시나리오는 다르게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 공수처의 수사대상은 대통령과 국회의장, 대법원장, 헌법재판소장, 국무총리, 중앙선거관리위원장 등 6부 요인을 비롯해 △국회의원 △판사 △검사 △3급 이상 공무원 등이다. 한 전 총리를 수사하고 재판했던 검사와 판사에게 범죄 혐의점이 있다면, 그들은 공수처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공소시효 7년' 직권남용죄…공수처 수사 대상 될 수 있을까

그러나 공수처 수사가 개시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붙는다. 우선 공수처가 수사할 수 있는 범죄의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은 상태여야 한다. 한 전 총리 사건을 다룬 검사와 판사에게 물을 수 있는 죄는 직권남용이다. 직권남용죄는 공소시효가 7년이다. 검찰은 2010년 7월 21일 한 전 총리를 기소했다. 공수처법에 따르면 검사는 공수처 수사대상에 들어가지만, 공소시효가 완성돼 한 전 총리 사건과 관련해선 수사 대상이 될 수 없다. 한 전 총리에게 2011년 10월 31일 무죄를 선고한 1심 판결도 마찬가지다.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년과 추징금 8억8000만원을 선고한 2심 판결(2013년 9월 16일) 및 이를 확정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2015년 8월 20일)과 관련해서는 이야기가 조금 복잡해진다. 우선 이 판결들의 경우 공수처에서 정한 공소시효가 남아있다. 공소시효가 끝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공수처가 한 전 총리 사건과 관련된 판·검사들을 집권남용으로 수사하기 위해선 아직 절차가 남아있다. 판·검사들이 먼저 기소된 뒤, 법원으로부터 '유죄'라고 확정판결을 받는 게 먼저다. 즉 공수처가 이들을 공소시효 만료 전까지 수사 대상으로 포함시키기에는 시간이 빠듯할 수 있다는 의미다.

이미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받은 사안을 공수처 수사 대상으로 올리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전망이 나온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공수처가 직권남용죄 적용 범위에 판사들의 판결까지 포함하는 것은 법치주의를 부정하는 행위"라며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에까지 직권남용 여부를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계속되는 여야 공방

더불어민주당은 한 전 총리의 재조사를 주장하며 공수처를 통한 수사 가능성을 내비치고 있다.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은 21일 MBC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한 전 총리 사건을 두고 "공수처가 설치된다면 공수처 수사 범위에 들어가는 것은 맞다"며 "공수처는 독립성을 가지기 때문에, 공수처 판단에 달린 문제"라고 말했다.

미래한국당은 더민주의 한 전 총리 재조사 촉구에 '친문 대모 구명 운동'이라고 규정하며 반발에 나섰다. 조수진 한국당 대변인은 20일 성명을 통해 "민주당과 추 장관의 한 전 총리 구명 시도는 예상됐던 것"이라며 "법치를 위임받은 집권 세력이 법치를 허물어뜨리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또 "윤미향 당선자에 대한 각종 논란이 일파만파 퍼지고 있지만, 여당 지도부와 법무부 장관이 내놓은 것은 친노와 친문의 대모라는 한 전 총리 구명이었다"고 했다.

대법원은 2015년 한신건영 대표인 한씨로부터 9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한 전 총리에게 징역 2년형을 확정 판결했다. 한 전 총리는 2017년 8월 의정부교도소에서 만기 출소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