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反시장·반자유 정책의 종착점
17세기 프랑스는 재정이 악화되고 많은 국민이 식료품 부족을 겪는 심각한 경제 문제에 시달렸다. 루이 14세의 방만한 재정지출과 재무부 장관을 지낸 장바스티스 콜베르가 중상주의에 입각해 무역을 비롯한 각종 부문에 대해 세세하게 규제한 탓이었다.

한 정부 관리가 경제 문제의 해결 방안을 구하기 위해 당시 유명한 상인이었던 토마 르 장드르를 만났다. 그가 해준 조언은 “레세 누 페르(Laissez-nous faire: 우리를 가만히 놔두세요)”였다. 그 유명한 ‘레세 페르(Laissez-faire)’가 여기서 유래했다. 정부 관리는 그 조언을 콜베르에게 전했다. 그러나 콜베르는 되레 규제를 더 강화했다. 경제가 더 악화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던 콜베르가 지병으로 죽자 프랑스 전체가 환호했다.

정부 지출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올해 정부는 512조원이라는 슈퍼 예산을 편성했다. 이도 모자라 세 차례에 걸쳐 추가경정예산을 내놓았다. 그 액수가 79조원이나 된다. 이로 인해 국가 채무가 작년 말 728조8000억원에서 120조3000억원이 더 늘어날 전망이다. 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45%를 초과할 것 같다. 그런데도 경제위기를 돌파한다는 명분으로 ‘한국형 뉴딜’ ‘그린 뉴딜’을 꺼내고 있으니 정부 지출이 또 얼마나 늘어날지 모르겠다.

재정뿐만 아니다. 국민의 삶이 대단히 피폐해졌다. 많은 사람이 일자리와 소득이 줄어 생활고에 시달리고, 폐업하는 자영업자가 늘어나고, 인력난과 인건비 급등을 견디지 못해 사업을 줄이거나 해외로 떠나는 기업이 늘고 있다. 소득격차는 더 심해졌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1.6%까지 추락할 수 있다고 한다.

경제가 이렇게까지 망가지게 된 데는 지난 3년간 문재인 정부가 시행한 반(反)기업·반시장·반자유 정책 때문이다. 소득주도성장이라는 정책기조 하에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근로시간 단축 등 기업과 개인의 활동을 옥죄는 조치를 취했고, 기업과 기업인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반기업 정책과 정부가 기업 경영에 간섭할 수 있는 제도들을 만들어냈다. 이런 정책들로 인해 경제가 추락하는 가운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의 충격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정부는 모든 실정을 코로나19 탓으로 돌리려고 한다. 이는 근본적인 정책 기조의 변화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 데서 나타난다. 게다가 총선 이후 여권 인사들은 ‘이익공유제’와 ‘토지공개념’의 법제화를 추진하겠다고 한다. 반기업·반시장·반자유 정책을 더욱 강화하겠다는 의지가 여실히 드러난다.

이런 정책들의 종착점은 불문가지다. 개인의 자유와 선택 대신 정부의 강제와 강요에 따라 우리의 삶이 결정되는 체제는 대다수 국민이 아니라 정치권력을 잡은 소수를 위한 체제다. 이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부 통제와 지시 그리고 중앙계획이 필수다. 개인은 성향도, 기호도, 능력도 다르다. 이렇게 고유한 특성을 가진 개인을 국가적 목표와 계획에 따르도록 만들기 위해서는 개인의 특성을 억누를 수 있는 정치권력이 필요하다. 결국 사람들은 그 정치권력을 차지한 사람들의 명령과 지시에 따라야 한다. 권력을 차지한 통치자는 통치를 받는 사람들의 물질적·문화적 향상보다는 정치권력을 이용해 자신의 이념, 힘 그리고 특권을 추구하게 된다. 개인은 정치권력을 잡은 사람들과 한편이 되거나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야 부와 지위, 권력을 누릴 수 있게 될 뿐이다.

정말 그런 사회로 가야 하겠는가. 그런 사회는 모두가 불행해지는 길이다. 지금 그 길로 가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다. 당장은 이익을 볼지 모르지만, 결국은 부메랑이 돼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해치게 된다. 시간이 흘러 정권은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만들어야 하는 사회는 이런 정치 리스크가 만연하는 사회가 아니다. 국가와 정부 권력이 작은, 그래서 개인의 자유 그리고 자발적인 교환과 협력에 따라 움직이는 사회다. 그것이 바로 ‘레세 페르’의 의미다. 콜베르와 같은 비극을 피할 수 있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