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용자산 어느새 1137조…脫국내·脫주식으로 수익률 '점프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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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대표 자산 운용사
저금리 길어지며 갈길 잃은 돈
국내 인버스 펀드에 3조4593억 유입
원자재·파생상품 펀드에도 뭉칫돈
200조원 돌파한 퇴직연금 시장
자산운용사 재평가 받을 기회로
저금리 길어지며 갈길 잃은 돈
국내 인버스 펀드에 3조4593억 유입
원자재·파생상품 펀드에도 뭉칫돈
200조원 돌파한 퇴직연금 시장
자산운용사 재평가 받을 기회로
올해 자산운용업계는 재도약의 기회를 맞고 있다. 저금리 시대가 길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식·채권·대체자산 등에 투자해 은행 정기예금보다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는 운용업계로 돈이 들어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주식 투자에 새로 눈을 뜬 투자자가 늘어난 것도 기회 요인이다. 하지만 증시에 유입된 신규 투자 자금을 펀드로 끌어들이기 위해선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저조한 펀드 수익률과 각종 사건·사고가 한때 뭉칫돈을 들고 펀드에 가입했던 투자자들이 펀드를 멀리하게 된 원인이기 때문이다. 운용업계는 기본에 충실한 소비자 중심 경영으로 올해를 재도약의 원년으로 삼겠다는 계획이다.
운용자산 1000조원 시대
자산운용업계에서 굴리는 돈은 계속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자산운용사 전체 운용자산은 1137조원으로, 2018년(1019조원)보다 118조원(11.6%) 증가했다. 2015년 818조원이던 운용자산은 2018년 처음 1000조원을 돌파했다. 은행 예금에 넣어두기보다 주식·채권 등에 투자해 적극적으로 돈을 굴리고 싶은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개인들이 펀드 투자를 기피하고 있지만 기관 자금은 계속 유입되는 점도 운용자산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공모펀드 운용자산은 지난해 말 237조원으로 1년 전보다 19조원(8.9%), 사모펀드는 412조원으로 같은 기간 79조원(23.8%) 증가했다. 사모펀드는 기관투자가와 고액 자산가들이 주로 투자한다. 연기금과 보험사 등 큰손들이 돈을 맡기는 투자일임 운용자산도 487조원으로 19조원(4.1%) 늘었다.
운용자산이 커지면서 운용사들이 수수료 등으로 벌어들인 돈도 늘었다. 지난해 운용사들이 벌어들인 순이익은 모두 8454억원으로 전년(5962억원)보다 41.8% 증가했다. 다만 모든 운용사가 돈을 번 건 아니었다. 292개 자산운용사 가운데 191개는 흑자를 냈지만, 101개사는 적자를 냈다. 몇몇 대형사가 순이익 대부분을 가져가는 양극화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자산운용사 마케팅 담당 임원은 “신규 자금을 끌어오기 위해선 판매 채널이 탄탄하거나 연기금·보험사 등 기관을 상대로 영업할 수 있어야 한다”며 “금융지주 소속이거나 대형 운용사 외에는 돈 벌기 어려운 구조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주식 대안을 찾아라”
자산운용업계는 ‘탈(脫)국내·탈주식’에 힘쓰고 있다. 국내 증시에만 투자해선 펀드 투자자를 만족시킬 만한 수익률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은 펀드 대신 직접 투자하겠다는 투자자가 급증한 것도 원인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5월 22일까지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4조9822억원이 빠져나갔다. 이 기간 유가증권시장 개인 순매수 금액이 28조3205억원인 것과 대비된다. 개인들이 펀드 대신 직접 투자로 국내 주식 투자에 나선 것이다.
대신 개인이 직접 투자로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에선 펀드에 기회가 남아 있다. 올 들어 해외 주식형 펀드에는 8398억원의 신규 자금이 유입됐다. 해외 주식도 개인의 직접 투자가 늘고 있지만 정보가 국내 주식보다 많지 않은 만큼 펀드 투자가 활발한 편이다. 최근 1년 기준 해외 주식형 펀드 수익률이 5.18%로, 국내 주식형(-1.61%)보다 높은 점도 작용했다.
부동산 펀드나 원자재 펀드, 파생상품 펀드도 인기를 끌었다. 시장 하락에 베팅하는 국내 인버스 펀드에는 올해 3조4593억원이 새로 들어왔다. 해외 원자재 펀드에도 7조7385억원이 유입됐다.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이 사상 처음 마이너스로 떨어지면서 유가 반등에 베팅한 자금이 흘러든 것이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지나친 투기성 거래로 우려를 낳기도 했지만 인버스 펀드나 원자재 펀드 등의 인기는 그만큼 투자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며 “운용업계는 다양한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투자자의 선택권을 넓혀 준다는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퇴직연금에 거는 기대
운용업계가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또 다른 분야로 퇴직연금이 있다. 직장인과 기업이 퇴직금을 쌓으면서 퇴직연금 시장으로 계속 자금이 흘러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126조원이던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해 221조원으로 처음 200조원을 돌파했다.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원금 보전을 최우선시하면서 아직은 상당 부분이 은행 예금이나 보험사 이율 보증형 상품에 들어가 있지만 점점 퇴직연금을 펀드로 굴리는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홍원구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연 1%대에 불과한 퇴직연금 수익률로는 노후 보장이 어렵다”며 “앞으로 주식형 펀드나 채권형 펀드 등에 돈을 넣어 수익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폴트 옵션(자동투자제도)이나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이 논의되는 점도 운용업계로선 기대 요인이다. 디폴트 옵션은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가입자가 일정 기간 운용 지시를 내리지 않으면 미리 정해진 포트폴리오로 퇴직연금 자산을 운용한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외부의 전문위탁기관에 맡겨 운용하는 제도다. 두 제도 모두 지금보다 위험자산 비중을 높여 운용하게 돼 퇴직연금 펀드로 자금 이동을 촉진할 전망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
운용자산 1000조원 시대
자산운용업계에서 굴리는 돈은 계속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국내 자산운용사 전체 운용자산은 1137조원으로, 2018년(1019조원)보다 118조원(11.6%) 증가했다. 2015년 818조원이던 운용자산은 2018년 처음 1000조원을 돌파했다. 은행 예금에 넣어두기보다 주식·채권 등에 투자해 적극적으로 돈을 굴리고 싶은 수요가 계속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업계 관계자는 “개인들이 펀드 투자를 기피하고 있지만 기관 자금은 계속 유입되는 점도 운용자산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공모펀드 운용자산은 지난해 말 237조원으로 1년 전보다 19조원(8.9%), 사모펀드는 412조원으로 같은 기간 79조원(23.8%) 증가했다. 사모펀드는 기관투자가와 고액 자산가들이 주로 투자한다. 연기금과 보험사 등 큰손들이 돈을 맡기는 투자일임 운용자산도 487조원으로 19조원(4.1%) 늘었다.
운용자산이 커지면서 운용사들이 수수료 등으로 벌어들인 돈도 늘었다. 지난해 운용사들이 벌어들인 순이익은 모두 8454억원으로 전년(5962억원)보다 41.8% 증가했다. 다만 모든 운용사가 돈을 번 건 아니었다. 292개 자산운용사 가운데 191개는 흑자를 냈지만, 101개사는 적자를 냈다. 몇몇 대형사가 순이익 대부분을 가져가는 양극화가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한 자산운용사 마케팅 담당 임원은 “신규 자금을 끌어오기 위해선 판매 채널이 탄탄하거나 연기금·보험사 등 기관을 상대로 영업할 수 있어야 한다”며 “금융지주 소속이거나 대형 운용사 외에는 돈 벌기 어려운 구조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주식 대안을 찾아라”
자산운용업계는 ‘탈(脫)국내·탈주식’에 힘쓰고 있다. 국내 증시에만 투자해선 펀드 투자자를 만족시킬 만한 수익률을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국내 주식은 펀드 대신 직접 투자하겠다는 투자자가 급증한 것도 원인이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올 들어 5월 22일까지 국내 주식형 펀드에서 4조9822억원이 빠져나갔다. 이 기간 유가증권시장 개인 순매수 금액이 28조3205억원인 것과 대비된다. 개인들이 펀드 대신 직접 투자로 국내 주식 투자에 나선 것이다.
대신 개인이 직접 투자로 접근하기 어려운 분야에선 펀드에 기회가 남아 있다. 올 들어 해외 주식형 펀드에는 8398억원의 신규 자금이 유입됐다. 해외 주식도 개인의 직접 투자가 늘고 있지만 정보가 국내 주식보다 많지 않은 만큼 펀드 투자가 활발한 편이다. 최근 1년 기준 해외 주식형 펀드 수익률이 5.18%로, 국내 주식형(-1.61%)보다 높은 점도 작용했다.
부동산 펀드나 원자재 펀드, 파생상품 펀드도 인기를 끌었다. 시장 하락에 베팅하는 국내 인버스 펀드에는 올해 3조4593억원이 새로 들어왔다. 해외 원자재 펀드에도 7조7385억원이 유입됐다. 서부텍사스원유(WTI) 선물이 사상 처음 마이너스로 떨어지면서 유가 반등에 베팅한 자금이 흘러든 것이다. 오광영 신영증권 연구원은 “지나친 투기성 거래로 우려를 낳기도 했지만 인버스 펀드나 원자재 펀드 등의 인기는 그만큼 투자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사례”라며 “운용업계는 다양한 자산에 투자할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해 투자자의 선택권을 넓혀 준다는 측면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퇴직연금에 거는 기대
운용업계가 재도약의 발판으로 삼을 수 있는 또 다른 분야로 퇴직연금이 있다. 직장인과 기업이 퇴직금을 쌓으면서 퇴직연금 시장으로 계속 자금이 흘러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2015년 126조원이던 퇴직연금 적립금은 지난해 221조원으로 처음 200조원을 돌파했다.
퇴직연금 가입자들이 원금 보전을 최우선시하면서 아직은 상당 부분이 은행 예금이나 보험사 이율 보증형 상품에 들어가 있지만 점점 퇴직연금을 펀드로 굴리는 비중이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홍원구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연 1%대에 불과한 퇴직연금 수익률로는 노후 보장이 어렵다”며 “앞으로 주식형 펀드나 채권형 펀드 등에 돈을 넣어 수익률을 높이는 방향으로 바뀔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폴트 옵션(자동투자제도)이나 기금형 퇴직연금 제도 도입이 논의되는 점도 운용업계로선 기대 요인이다. 디폴트 옵션은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 가입자가 일정 기간 운용 지시를 내리지 않으면 미리 정해진 포트폴리오로 퇴직연금 자산을 운용한다. 기금형 퇴직연금은 외부의 전문위탁기관에 맡겨 운용하는 제도다. 두 제도 모두 지금보다 위험자산 비중을 높여 운용하게 돼 퇴직연금 펀드로 자금 이동을 촉진할 전망이다.
임근호 기자 eig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