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수도권 지역으로 주택수요가 몰리고 있다. 수원 아파트 전경. 연합뉴스
정부의 '12·16 부동산 대책' 이후 수도권 지역으로 주택수요가 몰리고 있다. 수원 아파트 전경. 연합뉴스
정부의 강남 때리기 정책에 수도권 집주인들이 웃게 됐다. 잇단 규제책에 올해 서울 집값은 내렸지만 수도권 아파트값은 폭등했기 때문이다. 주택담보대출이 막히면서 서울에서 집을 사기 어려운 수요자들이 수도권으로 밀려났고, 이는 수도권 집값을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

27일 한국감정원 통계를 분석해보면 올 들어 5월 중순까지 서울 아파트값은 –0.12% 내렸다. 이 기간 전국 매매가가 1.92% 상승했지만 서울 집값은 정반대의 흐름을 보인 것이다. 전국 집값을 끌어올린 것은 경기, 인천 등 수도권 아파트였다. 수도권 집값은 3.20% 폭등했다. 지방 아파트값이 0.70% 오른 것과 비교해도 높은 수준이다.

서울 집값이 마이너스를 기록한 데에는 강남 아파트값 하락세가 가팔라진 탓이 크다. 서초(-2.35%) 강남(-2.35%) 송파(-1.69%) 등 강남 3구의 가격 하락폭이 매우 컸다. 이밖에 강동구(-0.09%) 광진구(-0.07%) 양천구(-0.01%) 등도 값이 떨어졌다. 반면 비교적 6억원 이하의 저렴한 주택이 많은 구로(1.34%) 강북(0.90%) 노원(0.85%) 도봉(0.80%) 관악(0.62%) 등은 되레 집값이 뛰었다.

전문가들은 서울에서 집을 사기 어려운 실수요자들이 이동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을 내놓는다. 서울에 대출 규제가 거의 없는 6억원 이하 아파트가 씨가 마르면서 수도권으로 밀려났다는 얘기다. 지난해 12·16 대책으로 강남을 중심으로 9억원 초과 고가 아파트 가격은 떨어졌지만, 이른바 '갭 메우기' 장세로 인해 대출 규제가 거의 없는 6억원 이하 아파트 가격이 치솟았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는 “서울에서 비교적 저렴한 곳에서 거주하던 젊은 층이 이젠 외곽지역에서도 집을 사기 힘들어 경기도나 인천으로 옮겨가고 있다”며 “서울 지역 집값이 많이 내리긴 했지만 실수요자들이 많은 외곽에서도 소형이나 중소형 위주의 주택은 여전히 높은 수요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지은 지 20~30년이 된 노후 아파트 밀집 지역인 서울 노원구는 올해 서울 집값이 내리는 와중에도 되레 값이 올랐다. 노원구의 한 주공아파트 전경. 한경DB
지은 지 20~30년이 된 노후 아파트 밀집 지역인 서울 노원구는 올해 서울 집값이 내리는 와중에도 되레 값이 올랐다. 노원구의 한 주공아파트 전경. 한경DB
실제로 서울 지역에선 대형 면적을 위주로 아파트값이 내리고 있지만, 오히려 소형 면적 주택 값은 오름세다. 102㎡ 초과 135㎡ 이하(-0.05%) 아파트나 135㎡ 초과(–1.24%) 집값은 마이너스 변동률을 나타냈지만 40㎡ 초과 60㎡ 이하(0.35%)는 상승했다.

4억원대 아파트는 5억원대로, 또 6억원대로 상승세가 순차적으로 이루어지는 모양새다. 올해 서울에서 가장 가격이 많이 오른 지역인 구로구 구로동 두산위브아파트의 경우 전용 57㎡ 기준 지난해 하반기 5억원대 초반이던 것이 최근 6억1000만원에 팔렸다. 몇개월 사이에 1억원 넘게 가격이 오른 것이다. 강북구 미아동 현대아파트는 지난해 말까지 전용 84㎡가 4억5000만원이었는데 올해 들어선 5억원대를 넘어서 4월엔 5억1000만원에 거래됐다. 노원구 중계동 신일아파트 전용 84㎡ 역시 4억원대 초중반에서 올해 4월 5억원을 기록했다.

이에 자금력이 적은 30~40대 젊은 층이 '서울집 마련'을 포기하고 경기도나 인천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종잣돈과 서울 내 LTV 70%(최대 한도 3억원)까지 대출해주는 보금자리론을 통해 4억~5억원대 아파트를 사려는 젊은 층의 수요가 경기지역으로 넘어가고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기준 서울에선 급등한 집값 등의 여파로 5만명이 순유출(전입<전출)됐지만, 경기 인구는 13만 5000명이나 순유입(전입>전출)됐다.

경기 남양주시 도곡리 덕소한강우성 전용 84㎡는 올 초 이후 8000만원 가량 오른 3억초중반대에 거래되고 있다. 호가는 3억6000만원 이상 올랐다. 인근 K중개업소 대표는 "단지 근처에 약 30분 만에 강남과 잠실로 갈 수 있는 광역버스가 지나 서울에 직장을 둔 신혼부부들이 많이 찾는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비규제지역인 경기 시흥도 마찬가지다. 목감한양수자인 전용 59㎡는 최근 4억1500만원에 새주인을 찾았다. 지난해 말 3억 초반대에 팔렸지만 몇개월새 1억원 넘게 상승했다. 고속도로를 타면 구로나 영등포 사당 강남 등 서울 업무지구로의 이동이 편리하다.

경기 의왕시는 지난 2월 조정대상지역에 포함됐지만, 저가매물들은 여전히 강세다. 포일동 동부새롬 전용 59㎡는 지난해 말 2억9800만원에 팔렸지만 최근 3억7000만~3억8000만원에 손바뀜했다. 포일동 A공인 관계자는 "4호선 인덕원역이 멀지 않아 사당으로 금방 이동할 수 있고 서울이나 과천에 비해서는 가격이 저렴한 편이라 30대 젊은 직장인 부부들이 많이 찾는다"며 "이 정도 가격대면 서울에선 빌라 가격이지만 여기선 아파트를 살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공공기관에서 일을 하는 직장인 박모 씨(34)도 최근 결혼을 앞두고 서울에서 집을 알아보다가 고민에 빠졌다. 직장이 강남에 있어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할 수 있는 낙성대역이나 서울대입구역 인근 아파트를 알아보고 있는데 아파트값 대부분이 6억원을 넘어서 대출을 받기 어려워서다. 박 씨는 이제 안양지역에서까지 집을 알아보고 있다.

박 씨는 “고가 아파트를 사는 사람들은 대출이 있든 없든 집을 구입할 만한 자금을 어떻게든 마련하겠지만 나같은 서민층은 대출이 없으면 집을 사기 어려운데 왜 일률적으로 대출을 막았는지 모르겠다”며 “지금 가진 자금으로는 도저히 서울에서 집을 사긴 어려워 경기도 지역 아파트까지 알아보고 있지만 매일매일 어떻게 출퇴근을 할지 엄두가 안난다”고 푸념했다.

안혜원 한경닷컴 기자 an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