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석 칼럼] 국가신용등급이 떨어지는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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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위기 방아쇠 된 신용하락
무디스 등급 강등에 외자 탈출
눈덩이 국가채무로 신용 다시 위태
빚 상환능력 의심받으면 가차없어
나라 곳간 열되 마구 퍼줘선 안돼
차병석 수석논설위원
무디스 등급 강등에 외자 탈출
눈덩이 국가채무로 신용 다시 위태
빚 상환능력 의심받으면 가차없어
나라 곳간 열되 마구 퍼줘선 안돼
차병석 수석논설위원
1997년 말 외환위기의 기폭제는 국가신용등급 강등이었다. 그해 초부터 한보철강이 부도나고 금융사의 해외 차입에 비상등이 켜졌지만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을 떠나지는 않았다. 외국인들이 짐을 싸기 시작한 건 국제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10월 28일 한국의 단기국채 신용등급을 P-1에서 P-2로 한 단계 낮춘 날부터였다. 이날 주가는 6.6%의 사상 최대 하락폭을 기록했고, 환율은 급등했다.
무디스는 이어 11월 28일부터 12월 21일 사이 A1이던 한국의 장기국채 신용등급을 세 차례에 걸쳐 Ba1으로 여섯 단계나 끌어내렸다. S&P, 피치 등 다른 신용평가사들도 뒤를 따랐다.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낮출 때마다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과 채권을 팔아치우고 달러로 바꿨다. 외자의 한국 탈출이었다. 외환보유액은 금세 바닥났고 국가부도의 벼랑까지 갔다. 국가신용등급의 추락은 한국 경제에 사형선고였던 셈이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다시 위태로워지고 있다. 국가채무가 너무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3년간 ‘퍼주기 복지’에 코로나를 빌미로 한 재정 확대로 나랏빚은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작년 말 38%에서 올해 45%를 넘길 게 확실시된다. 일본보다 빠른 고령화를 감안하면 이 비율이 100%를 돌파하는 건 시간문제다.
기업 도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위험 요소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기업의 평균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반토막 났다. 최근 20년 사이 가장 큰 감소율이다. 소득주도성장에 따른 기저질환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기업들을 덮친 코로나는 치명적이다. 기업 연쇄 부도를 막으려면 정부의 정책자금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적자 재정에 또 돈을 써야 한다면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은 더 커진다.
무디스 등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린다면 위기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신용등급 한 단계 떨어지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지난 5년간 변함없던 신용등급을 떨어뜨린다는 건 외국인들이 한국을 불안하게 보기 시작했다는 징조다.
그것이 재정건전성 악화라는 만성적 요인 때문이라면 더욱 그렇다. 신용등급 하락이 재정을 압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 말 한국의 외채 총액은 4670억달러다. 신용등급 강등으로 외채 이자가 100bp(1%포인트)만 올라도 한 해 이자 부담이 46억7000만달러(약 5조8000억원) 늘어난다. 외채 이자가 증가하면 재정은 더 나빠지고, 부채 상환 능력은 더 떨어진다. 신용등급을 끌어내리는 요인이다.
이 악순환 고리에 걸리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한 번 나빠진 재정건전성이 회복되기 힘들듯이 국가신용등급이란 것도 떨어지긴 쉽지만 올라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외환위기 때 무디스 신용등급이 A1에서 Ba1으로 하락하는 데 23일이 걸렸지만 원상회복하는 데는 꼬박 13년이 필요했다.
지금은 코로나 사태에 따른 수출입 급감으로 실물경제마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 위기가 금융으로 옮겨가지 않게 정부가 정책자금으로 ‘반창고’를 잔뜩 붙여놓은 꼴이다.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 국가신용등급 하락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을 떠날 좋은 핑곗거리다.
지금은 1997년과 다르다고들 말한다. 물론 다르다. 경제 규모는 세 배로 커졌고 위기방파제인 외환보유액도 4000억달러까지 쌓아놨다. 하지만 이게 안심할 이유는 못 된다. 환율 변동에 따라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국내 증시의 외국인 자금만 450조원(약 3700억달러)으로 외환보유액의 90%를 넘는다.
청와대는 전시(戰時)재정 총동원령을 내리고 나라 곳간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상당액의 돈이 경기 진작 효과는 불확실하지만 정치적 이익은 확실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 등으로 뿌려지고 있다. 그리스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들이 방만 재정으로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린 게 남의 얘기라고만 할 수 없다. 한국의 든든한 버팀목 중 하나였던 재정건전성이 순식간에 무너지듯이 국가신용등급이 추락하는 것도 일순간이다. 그런 날이 닥친 뒤에는 후회해도 소용없다.
chabs@hankyung.com
무디스는 이어 11월 28일부터 12월 21일 사이 A1이던 한국의 장기국채 신용등급을 세 차례에 걸쳐 Ba1으로 여섯 단계나 끌어내렸다. S&P, 피치 등 다른 신용평가사들도 뒤를 따랐다. 무디스가 신용등급을 낮출 때마다 외국인들은 한국 주식과 채권을 팔아치우고 달러로 바꿨다. 외자의 한국 탈출이었다. 외환보유액은 금세 바닥났고 국가부도의 벼랑까지 갔다. 국가신용등급의 추락은 한국 경제에 사형선고였던 셈이다.
한국의 국가신용등급이 다시 위태로워지고 있다. 국가채무가 너무 빠르게 늘고 있어서다. 문재인 정부의 지난 3년간 ‘퍼주기 복지’에 코로나를 빌미로 한 재정 확대로 나랏빚은 눈덩이처럼 불고 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은 작년 말 38%에서 올해 45%를 넘길 게 확실시된다. 일본보다 빠른 고령화를 감안하면 이 비율이 100%를 돌파하는 건 시간문제다.
기업 도산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는 것도 위험 요소다. 지난해 유가증권시장 기업의 평균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반토막 났다. 최근 20년 사이 가장 큰 감소율이다. 소득주도성장에 따른 기저질환으로 면역력이 떨어진 기업들을 덮친 코로나는 치명적이다. 기업 연쇄 부도를 막으려면 정부의 정책자금이 투입될 수밖에 없다. 가뜩이나 적자 재정에 또 돈을 써야 한다면 신용등급 하락 가능성은 더 커진다.
무디스 등이 한국의 신용등급을 떨어뜨린다면 위기의 도화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국가신용등급 한 단계 떨어지는 게 뭐 그리 대수냐고 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지난 5년간 변함없던 신용등급을 떨어뜨린다는 건 외국인들이 한국을 불안하게 보기 시작했다는 징조다.
그것이 재정건전성 악화라는 만성적 요인 때문이라면 더욱 그렇다. 신용등급 하락이 재정을 압박할 것이기 때문이다. 작년 말 한국의 외채 총액은 4670억달러다. 신용등급 강등으로 외채 이자가 100bp(1%포인트)만 올라도 한 해 이자 부담이 46억7000만달러(약 5조8000억원) 늘어난다. 외채 이자가 증가하면 재정은 더 나빠지고, 부채 상환 능력은 더 떨어진다. 신용등급을 끌어내리는 요인이다.
이 악순환 고리에 걸리면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한 번 나빠진 재정건전성이 회복되기 힘들듯이 국가신용등급이란 것도 떨어지긴 쉽지만 올라가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외환위기 때 무디스 신용등급이 A1에서 Ba1으로 하락하는 데 23일이 걸렸지만 원상회복하는 데는 꼬박 13년이 필요했다.
지금은 코로나 사태에 따른 수출입 급감으로 실물경제마저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이 위기가 금융으로 옮겨가지 않게 정부가 정책자금으로 ‘반창고’를 잔뜩 붙여놓은 꼴이다. 이런 불안한 상황에서 국가신용등급 하락은 외국인 투자자들이 한국을 떠날 좋은 핑곗거리다.
지금은 1997년과 다르다고들 말한다. 물론 다르다. 경제 규모는 세 배로 커졌고 위기방파제인 외환보유액도 4000억달러까지 쌓아놨다. 하지만 이게 안심할 이유는 못 된다. 환율 변동에 따라 언제든지 빠져나갈 수 있는 국내 증시의 외국인 자금만 450조원(약 3700억달러)으로 외환보유액의 90%를 넘는다.
청와대는 전시(戰時)재정 총동원령을 내리고 나라 곳간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상당액의 돈이 경기 진작 효과는 불확실하지만 정치적 이익은 확실한 전 국민 재난지원금 등으로 뿌려지고 있다. 그리스 이탈리아 등 남유럽 국가들이 방만 재정으로 신용등급이 떨어지고 국가 부도 위기에 몰린 게 남의 얘기라고만 할 수 없다. 한국의 든든한 버팀목 중 하나였던 재정건전성이 순식간에 무너지듯이 국가신용등급이 추락하는 것도 일순간이다. 그런 날이 닥친 뒤에는 후회해도 소용없다.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