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재정 총동원령을 내림에 따라 재원 문제가 화두로 떠올랐다. 재정건전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는 와중에 ‘전시 재정’에 들어가는 막대한 돈을 어떻게 충당할 것이냐 하는 현실적인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주변에서는 증세론이 솔솔 나오고 있지만 청와대는 일단 부정하고 나섰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증세는 어렵다”며 “25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도 증세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문 대통령은 정부의 뼈를 깎는 지출 구조조정을 여러 번 강조했다”고 설명했다. ‘증세 없는 재정 동원’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증세 군불때기’는 계속되고 있다.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은 ‘재정포럼’ 5월호 기고에서 “현재 같은 재난 시기에는 증세를 미루지 말고 적절한 규모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앞서 한국개발연구원(KDI)도 증세 필요성을 거론했다.

증세론이 대두되고 있는 것은 아무리 지출을 구조조정해도 3차 추가경정예산까지 합해 570조원에 달하는 돈을 모두 충당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청와대가 ‘증세’를 금기시하는 것은, 이 와중에 세금을 더 걷겠다고 했다가는 엄청난 조세저항은 물론 민심 이반까지 우려되기 때문일 것이다. 주목할 것은 2018년 법인세와 소득세 최고 세율을 올린 것 말고도 사실상 증세는 거의 매년 이뤄져 왔다는 점이다.

부동산 보유세가 대표적이다. 정부는 세법 개정을 하지 않고도 주택 공시가격을 끌어올리는 방식으로 해마다 증세를 해왔다. 올해 시세 9억원 이상 공동주택 공시가격 현실화율은 70~80%까지 올라갔다. ‘12·16 대책’으로 불리는 종합부동산세 강화법안은 올해 처리가 불투명하지만 재산세 인상만으로도 보유세 부담이 계속 급증하는 추세다.

종합소득세(종소세) 과세 대상이 계속 늘어나는 것도 사실상 증세나 다름없다. 올해 신규 종소세 납세자가 3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기타소득의 필요경비 인정비율이 80%에서 60%로 낮아진 데다 2000만원 이하 주택임대소득에 대한 비과세 혜택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자영업자의 경우 카드 결제 고객이 늘면서 결과적으로 세부담이 계속 무거워지고 있고, 의사 변호사 등 전문직의 세부담도 증가일로다.

대대적인 세법 개정이나 세율 인상 없이도 꾸준한 증세가 이뤄져 온 셈이다. 건강보험 사회보장기여금 등 세금과 다름없는 국민부담액이 매년 크게 늘고 있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문제는 이런 식의 증세가 세금을 내던 사람들의 부담만 가중시킨다는 점이다. 소득상위 10%가 소득세의 78%를, 근로소득자의 4.3%가 전체 근로소득세의 55%를 부담하는 상황에서 이 같은 ‘꼼수 증세’는 어떤 이유로도 합리화될 수 없다.

정부·여당은 ‘증세는 어렵다’고 무조건 쉬쉬할 게 아니라 ‘넓은 세원, 낮은 세율’의 원칙 아래 제대로 된 증세 논의를 떳떳하게 해야 한다. 성실 납세자만 계속 ‘봉’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