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치매 치료만큼 중요한 돌봄의 가치
“시계 말고 레고 사줄게.” 말문을 겨우 연 노모가 말했다. 마흔이 훌쩍 넘은 아들은 의아했다. 과거를 돌이켜봤다. 열두 살에 생일선물로 받은 시계가 너무 싫어 레고를 사달라고 떼 쓴 날이 생각났다. 그는 현관문 앞에서 한참을 울었다. 치매에 걸린 어머니를 모시는 아들이 SNS에 올린 에피소드다. 치매는 누구나 걸릴 수 있는 질병이다. 어떻게 해야 가족들은 일상을 지키고, 환자는 존엄성을 유지할 수 있을까.

미국 정신의학자 아서 클라인먼이 10년 동안 알츠하이머(치매)에 걸린 아내 조앤의 곁을 지키며 얻은 통찰을 《케어》에서 풀어냈다. 40여 년 동안 하버드대에서 학생들에게 정신의학을 가르친 저자에게 비극은 느닷없이 찾아왔다. 아내가 자신을 몰라보기 시작했다. 그는 “나는 훈련받은 정신과 의사지만 보호자 입장이 되자 ‘돌봄’의 중요함을 뼛속 깊이 깨달았다”고 했다.

보호자의 하루는 늘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것처럼 불안했다. 의학 이론과 실제 생활은 달랐다. 저자는 “환자가 겪는 질병은 칼로 자르듯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다”며 “알츠하이머는 시시각각 심각해졌다 풀어졌다를 반복했고, 당장 내일도 예측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간병은 보호자가 일방적으로 베푸는 행동이 아니었다. 저자는 처음에 여생을 책임지는 ‘남편’이란 의무감에 아내를 돌봤다. 어느 날 아내 조앤이 거실 바닥에 배변하자 그도 폭발했다. 아이처럼 울고 있는 그를 위로한 건 아내였다. 저자는 “모든 간병에는 상호성이 존재한다. 환자의 역할도 중요하다”며 “그때 아내가 날 위로하고 응원하지 않았다면 더 이상 돌보지 못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간병의 실체를 마주한 그는 의료계의 문제점을 꼬집는다. 의사들은 진단과 치료에만 몰두할 뿐 환자의 곁을 가장 오래 지키는 보호자의 일상은 무시한다고 지적한다. 그는 “누구든 존엄하게 늙을 권리가 있다”며 “개인에게 간병을 떠맡기는 사회는 누구에게도 안전하지 않다. 돌봄의 가치를 다시 일깨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