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맥] 증세, 꼭 필요하다면 부가가치세 인상 검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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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I·조세硏 등 증세론 제기…靑 부인에도 가능성 커
부가가치세 인상이 보편성 원칙 맞고 역진성도 없어
재정지출 효율 제고가 우선…그래야 국민 동의할 것
차병석 수석논설위원
부가가치세 인상이 보편성 원칙 맞고 역진성도 없어
재정지출 효율 제고가 우선…그래야 국민 동의할 것
차병석 수석논설위원
재정 확대 속 고개 드는 증세론
가속화하는 정부의 재정 확대가 도마에 오른 가운데 증세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막대한 재정 지출을 위해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데도 한계가 있는 만큼 세금을 올려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청와대는 당장의 증세 가능성은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관변 연구기관이 나서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군불을 지피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섣불리 증세를 추진하기에 앞서 재정 지출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지출 구조조정을 하고도 더 돈이 필요해 증세를 해야 한다면 법인세 소득세 등 직접세보다는 부가가치세와 같은 간접세를 올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최근 증세론을 가장 먼저 제기한 곳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지난달 19일 언론 브리핑에서 “재정 지출 확대 수요가 있는 만큼 그에 준해 재정 수입도 확대해야 하는데 중장기적으로 증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원장도 ‘재정포럼’ 5월호에 실은 특별기고에서 “현재와 같은 재난 시기에는 증세를 미루지 말고 적절한 규모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최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도 증세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증세 가능성은 높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코로나 충격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전시(戰時) 재정’ 운운하며 돈을 쏟아붓기로 작정한 데다, 빠른 고령화에 따른 복지 수요를 감안하면 재정 지출이 가파르게 늘 수밖에 없어서다.
정부는 증가하는 재정 지출을 적자국채로 충당하고 있다. 그러나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올해 1, 2차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한 관리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4대 사회보장성기금 수지)는 89조4000억원 적자다.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적자 규모(54조4000억원)를 이미 넘어섰다. 여기에 30조원을 넘을 것으로 보이는 3차 추경도 적자국채로 메우면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30조원에 육박한다. 법인세·소득세 인상은 부작용 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작년 말 38%에서 올해 45%를 넘을 게 확실시된다. 한 해 사이에 이 비율이 5%포인트 이상 늘어나는 건 과속이다. 추가 적자국채 발행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경기침체기에 세수가 증가할 일도 없다. 정부로선 인위적으로 세율을 인상해 세수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만약 증세를 한다면 어떤 세금을 올릴 것인가. 국세 중 비중이 큰 순서로 따지면 소득세(작년 기준 28.5%) 법인세(24.6%) 부가가치세(24.1%)다. 이 세 가지 세금 비중이 전체 국세의 77%를 넘는다. 이 세목들이 우선 증세 대상이 될 수 있다.
정부 여당 쪽에선 법인세와 소득세 등 직접세를 올려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과 부자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저소득층의 복지를 늘려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법인세와 소득세 인상은 득(得)보다 실(失)이 크다고 지적한다.
법인세는 2017년 말 세법을 고쳐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올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1.9%)을 웃돌고, 35개 국가 중 여덟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게다가 미국 독일 등 주요국은 거꾸로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우리만 올리면 한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이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기업의 투자 여력을 위축시키는 부작용도 있다.
소득세도 마찬가지다. 소득이 높을수록 누진적으로 많이 내는 소득세를 올리면 부자들의 세금 회피, 해외 자본 이탈을 부추겨 자원배분을 왜곡할 우려가 크다. 이미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세의 80% 가까이를 내고 있기도 하다. 또 우리나라에선 근로소득세 면세자가 10명 중 4명(2018년 귀속 소득 기준 38.9%)에 달한다. 미국(30.7%) 영국(2.1%) 일본(15.5%) 등 주요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
전문가들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살 때 내는 부가가치세를 올리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모든 소비 행위에 같은 세율로 물리는 세금이기 때문에 조세의 보편성 원칙에 맞을뿐더러, 약간의 세율 인상으로도 큰 세수 증대 효과를 거둘 수 있어서다. 국내 부가가치세는 1977년 도입 이후 10%인 세율을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OECD 국가들이 1960년대 말부터 평균 15% 수준의 부가가치세(소비세)를 도입한 뒤 꾸준히 세율을 인상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들 국가의 부가가치세율은 현재 20% 안팎이다.
부가가치세 역진성 검증 안돼
부가가치세를 인상한다고 할 때 가장 큰 비판 포인트는 역진성(逆進性)이다. 누가 소비하든 똑같은 세금을 매기기 때문에 세율을 올릴수록 저소득층이 더 많은 부담을 진다는 논리다. 그동안 부가가치세 인상론은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말 한마디에 맥을 못 췄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결과들은 부가가치세 인상이 결코 역진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성명재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부가가치세율 조정의 소득재분배 효과’(2012년 10월)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성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부가가치세를 인상하면 소득재분배 차원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것이란 우려는 사실과 다르다”며 “부가가치세 실효세부담률을 조사한 결과 세 부담이 대체로 소득 수준에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는 2010년 가계동향 조사자료를 활용해 소득계층별 부가가치세 실효세부담률을 조사했다. 총소득 대비 실효세부담률은 최하위 소득계층(하위 10%)인 1분위가 3.6%, 3분위 3.6%, 5분위 4.0%, 7분위 3.7%, 9분위 3.5% 등 비슷한 분포를 보였다. 부가가치세가 역진세라면 고소득층일수록 실효세부담률이 크게 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는 저소득층이 많이 소비하는 쌀 등 생활필수품은 면세인 반면 고가품은 예외 없이 과세 대상이기 때문이다.
부가가치세 인상으로 늘어난 세입을 저소득층 복지에 사용하면 오히려 소득재분배에 긍정적이라고 성 연구위원은 강조했다. 서구 선진국들이 부가가치세를 인상해 온 이유도 여기 있다. 물론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악영향은 감수해야 한다. 부가가치세를 올리면 인상분이 그대로 물건과 서비스 가격에 전가될 수밖에 없어서다.
세금을 올리는 것은 인기 없는 정책이다. 모든 소비자가 내야 하는 부가가치세를 올리면 정권에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부가가치세를 섣불리 올렸다가는 정권이 바뀐다는 게 정설처럼 돼 있기도 하다. 역대 정권이 부가가치세 인상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시도하지 못한 이유다.
증세는 공감대 형성이 최우선
재정이 한계 상황에 도달해 부가가치세 인상을 추진한다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 왜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는지, 올린다면 왜 부가가치세가 우선인지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국민이 낸 세금을 정부가 꼭 필요한 곳에 효율적으로 쓰고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이런 믿음이 없다면 국민이 증세에 동의할 리 없다. 또 증세에 앞서 정부의 뼈를 깎는 지출 구조조정이 선행돼야 한다. 불요불급한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정부가 국민 세금을 자기 돈처럼 아껴 쓴다는 점을 국민이 인정할 때라야 증세가 가능할 것이다.
chabs@hankyung.com
가속화하는 정부의 재정 확대가 도마에 오른 가운데 증세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막대한 재정 지출을 위해 적자국채를 발행하는 데도 한계가 있는 만큼 세금을 올려 재원을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청와대는 당장의 증세 가능성은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관변 연구기관이 나서 세금을 올려야 한다고 군불을 지피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섣불리 증세를 추진하기에 앞서 재정 지출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힘써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지출 구조조정을 하고도 더 돈이 필요해 증세를 해야 한다면 법인세 소득세 등 직접세보다는 부가가치세와 같은 간접세를 올리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한다.
최근 증세론을 가장 먼저 제기한 곳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개발연구원(KDI)이다. 정규철 KDI 경제전망실장은 지난달 19일 언론 브리핑에서 “재정 지출 확대 수요가 있는 만큼 그에 준해 재정 수입도 확대해야 하는데 중장기적으로 증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유찬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원장도 ‘재정포럼’ 5월호에 실은 특별기고에서 “현재와 같은 재난 시기에는 증세를 미루지 말고 적절한 규모로 시행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며 “최근 열린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도 증세는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증세 가능성은 높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코로나 충격에 빠진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전시(戰時) 재정’ 운운하며 돈을 쏟아붓기로 작정한 데다, 빠른 고령화에 따른 복지 수요를 감안하면 재정 지출이 가파르게 늘 수밖에 없어서다.
정부는 증가하는 재정 지출을 적자국채로 충당하고 있다. 그러나 거의 한계에 다다랐다. 올해 1, 2차 추가경정예산을 포함한 관리재정수지(총수입-총지출-4대 사회보장성기금 수지)는 89조4000억원 적자다. 사상 최대였던 지난해 적자 규모(54조4000억원)를 이미 넘어섰다. 여기에 30조원을 넘을 것으로 보이는 3차 추경도 적자국채로 메우면 올해 관리재정수지 적자는 130조원에 육박한다. 법인세·소득세 인상은 부작용 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도 작년 말 38%에서 올해 45%를 넘을 게 확실시된다. 한 해 사이에 이 비율이 5%포인트 이상 늘어나는 건 과속이다. 추가 적자국채 발행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경기침체기에 세수가 증가할 일도 없다. 정부로선 인위적으로 세율을 인상해 세수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만약 증세를 한다면 어떤 세금을 올릴 것인가. 국세 중 비중이 큰 순서로 따지면 소득세(작년 기준 28.5%) 법인세(24.6%) 부가가치세(24.1%)다. 이 세 가지 세금 비중이 전체 국세의 77%를 넘는다. 이 세목들이 우선 증세 대상이 될 수 있다.
정부 여당 쪽에선 법인세와 소득세 등 직접세를 올려야 한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과 부자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어 저소득층의 복지를 늘려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법인세와 소득세 인상은 득(得)보다 실(失)이 크다고 지적한다.
법인세는 2017년 말 세법을 고쳐 최고세율을 22%에서 25%로 올렸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21.9%)을 웃돌고, 35개 국가 중 여덟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게다가 미국 독일 등 주요국은 거꾸로 법인세 인하를 추진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우리만 올리면 한국에 진출한 외국 기업이 이탈할 가능성이 크다. 국내 기업의 투자 여력을 위축시키는 부작용도 있다.
소득세도 마찬가지다. 소득이 높을수록 누진적으로 많이 내는 소득세를 올리면 부자들의 세금 회피, 해외 자본 이탈을 부추겨 자원배분을 왜곡할 우려가 크다. 이미 소득 상위 10%가 전체 소득세의 80% 가까이를 내고 있기도 하다. 또 우리나라에선 근로소득세 면세자가 10명 중 4명(2018년 귀속 소득 기준 38.9%)에 달한다. 미국(30.7%) 영국(2.1%) 일본(15.5%) 등 주요국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
전문가들은 물건이나 서비스를 살 때 내는 부가가치세를 올리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한다. 모든 소비 행위에 같은 세율로 물리는 세금이기 때문에 조세의 보편성 원칙에 맞을뿐더러, 약간의 세율 인상으로도 큰 세수 증대 효과를 거둘 수 있어서다. 국내 부가가치세는 1977년 도입 이후 10%인 세율을 한 번도 올리지 않았다. OECD 국가들이 1960년대 말부터 평균 15% 수준의 부가가치세(소비세)를 도입한 뒤 꾸준히 세율을 인상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들 국가의 부가가치세율은 현재 20% 안팎이다.
부가가치세 역진성 검증 안돼
부가가치세를 인상한다고 할 때 가장 큰 비판 포인트는 역진성(逆進性)이다. 누가 소비하든 똑같은 세금을 매기기 때문에 세율을 올릴수록 저소득층이 더 많은 부담을 진다는 논리다. 그동안 부가가치세 인상론은 ‘양극화를 부추긴다’는 말 한마디에 맥을 못 췄다.
그러나 최근 연구 결과들은 부가가치세 인상이 결코 역진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성명재 조세재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의 ‘부가가치세율 조정의 소득재분배 효과’(2012년 10월)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성 연구위원은 보고서에서 “부가가치세를 인상하면 소득재분배 차원에서 부정적인 영향이 클 것이란 우려는 사실과 다르다”며 “부가가치세 실효세부담률을 조사한 결과 세 부담이 대체로 소득 수준에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그는 2010년 가계동향 조사자료를 활용해 소득계층별 부가가치세 실효세부담률을 조사했다. 총소득 대비 실효세부담률은 최하위 소득계층(하위 10%)인 1분위가 3.6%, 3분위 3.6%, 5분위 4.0%, 7분위 3.7%, 9분위 3.5% 등 비슷한 분포를 보였다. 부가가치세가 역진세라면 고소득층일수록 실효세부담률이 크게 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 이는 저소득층이 많이 소비하는 쌀 등 생활필수품은 면세인 반면 고가품은 예외 없이 과세 대상이기 때문이다.
부가가치세 인상으로 늘어난 세입을 저소득층 복지에 사용하면 오히려 소득재분배에 긍정적이라고 성 연구위원은 강조했다. 서구 선진국들이 부가가치세를 인상해 온 이유도 여기 있다. 물론 물가 상승을 부추기는 악영향은 감수해야 한다. 부가가치세를 올리면 인상분이 그대로 물건과 서비스 가격에 전가될 수밖에 없어서다.
세금을 올리는 것은 인기 없는 정책이다. 모든 소비자가 내야 하는 부가가치세를 올리면 정권에 큰 부담이 될 수도 있다. 부가가치세를 섣불리 올렸다가는 정권이 바뀐다는 게 정설처럼 돼 있기도 하다. 역대 정권이 부가가치세 인상 필요성을 인정하면서도 시도하지 못한 이유다.
증세는 공감대 형성이 최우선
재정이 한계 상황에 도달해 부가가치세 인상을 추진한다면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 왜 세금을 올릴 수밖에 없는지, 올린다면 왜 부가가치세가 우선인지를 국민에게 설명하고 이해를 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국민이 낸 세금을 정부가 꼭 필요한 곳에 효율적으로 쓰고 있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 이런 믿음이 없다면 국민이 증세에 동의할 리 없다. 또 증세에 앞서 정부의 뼈를 깎는 지출 구조조정이 선행돼야 한다. 불요불급한 지출을 최대한 줄이고, 정부가 국민 세금을 자기 돈처럼 아껴 쓴다는 점을 국민이 인정할 때라야 증세가 가능할 것이다.
chab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