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제약사 머크의 최고경영자(CEO)인 케네스 프레지어는 보기 드문 흑인 CEO다. 그는 1일(현지시간) CNBC와의 인터뷰에서 “실업이 절망으로 이어지고, 절망은 우리가 지금 거리에서 보는 사태로 나타난다”며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대규모 유혈 폭동 시위에 대해 말했다. 1960년대 인종 차별이 심했던 필라델피아에서 자란 그는 학교에 가기 위해 한 시간 이상 떨어진 곳으로 흑인만 타는 버스를 타고 다녔던 얘기를 하면서 “기회의 차이는 여전히 존재한다”고 덧붙였다.

인종 차별에 대항하는 이번 시위의 근저에는 제도적 인종 간 빈부 차가 있었다는 분석(찰스 블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이 나온다. 뿌리 깊은 인종 간 불평등을 겪어온 흑인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더 큰 경제적 어려움에 몰린 상황에서 플로이드 사건으로 분노가 폭발했다는 지적이다.

미 중앙은행(Fed) 통계에 따르면 미국 백인 가구의 순자산(2016년 기준)은 중간값이 17만1000달러지만, 흑인 가구는 그 10분의 1인 1만7600달러에 불과하다. 백인과 흑인 가구의 순자산 중간값 격차는 2013년 13만2800달러에서 2016년 15만3400달러로 더 확대됐다.

이는 기본적으로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상속액이 차이 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여기에 근로소득의 차이를 만드는 주요 원인인 학력 격차도 뚜렷하다. 미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소(EPI)에 따르면 2016년 기준 25~29세 성인 가운데 흑인의 최종학력은 고교 졸업 92.3%, 대학 졸업 22.8%로, 백인의 95.6%, 42.1%에 비해 크게 낮다.

이는 높은 실업률로 이어지는 원인이 된다. 게다가 학력이 같다 해도 흑인의 실업률이 높다. 2017년 기준으로 고교 졸업자 중 흑인의 실업률은 9.5%로 백인(4.6%)의 두 배에 달한다. 대학 졸업자도 흑인 실업률은 4.1%로 백인의 2.3%보다 크게 높다.

어렵게 취업한다 해도 더 낮은 임금을 받는 게 보통이다. 흑인의 임금 수준은 고교 졸업자의 경우 같은 학력을 보유한 백인의 78.1%에 불과했다. 대학 졸업자도 78.7%에 그친다. 특히 1979년(86.9%, 87.2%)과 비교하면 격차가 더 벌어졌다.

EPI 측은 “흑인들의 학력 수준이 과거보다 높아졌지만 모든 학력그룹에서 임금 격차는 더욱 커졌다”며 이는 흑인이 임금 상승이 더딘 중저임금 업종에 많이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고용, 임금 및 승진 기회에서도 인종적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흑인 등 소수 민족은 상대적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7~2013년 흑인 가구의 순자산 감소폭(중간값)은 44.3%에 달했지만 백인 가구는 26.1%로 훨씬 적었다.

이번 코로나19에 따른 경기침체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감염률은 흑인이 백인의 두 배에 달하고 있다. 직접 손님을 응대하면서 중저임금을 받는 소위 ‘프런트라인(frontline)’ 업종에 흑인이 많이 종사하고 있어서다. 뉴욕타임스는 흑인이 미국 노동인구의 11.9%를 차지하지만 프런트라인 노동자의 17%를 차지한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 4월 미국의 실업률이 14.7%로 폭등한 가운데 백인의 실업률은 14.2%였지만, 흑인은 16.7%로 더 높았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흑인들은 월세 부담도 더 지고 있다. 백인 가구의 74%는 자가 소유 주택에 살지만, 흑인은 44%에 그쳐 소득이 끊긴 시기에 월세 부담이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4월 말 기자회견에서 “실업률은 소수 민족과 저소득층에서 훨씬 빠르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모든 사람이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지만 가장 취약한 사람은 일자리와 소득을 잃은 뒤 이 시기를 견뎌낼 여력이 거의 없는 이들”이라고 말했다.

2018년 기준 미국 전체 인구(3억2400만 명) 가운데 백인은 60.4%다. 이어 히스패닉 18.4%, 흑인 13.4%, 아시아인 5.9% 순이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