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생적 빈부差 갈수록 확대
누적된 분노, 코로나로 폭발
인종 차별에 대항하는 이번 시위의 근저에는 제도적 인종 간 빈부 차가 있었다는 분석(찰스 블로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이 나온다. 뿌리 깊은 인종 간 불평등을 겪어온 흑인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여파로 더 큰 경제적 어려움에 몰린 상황에서 플로이드 사건으로 분노가 폭발했다는 지적이다.
미 중앙은행(Fed) 통계에 따르면 미국 백인 가구의 순자산(2016년 기준)은 중간값이 17만1000달러지만, 흑인 가구는 그 10분의 1인 1만7600달러에 불과하다. 백인과 흑인 가구의 순자산 중간값 격차는 2013년 13만2800달러에서 2016년 15만3400달러로 더 확대됐다.
이는 기본적으로 부모에게서 물려받는 상속액이 차이 나기 때문으로 분석됐다. 여기에 근로소득의 차이를 만드는 주요 원인인 학력 격차도 뚜렷하다. 미 싱크탱크 경제정책연구소(EPI)에 따르면 2016년 기준 25~29세 성인 가운데 흑인의 최종학력은 고교 졸업 92.3%, 대학 졸업 22.8%로, 백인의 95.6%, 42.1%에 비해 크게 낮다.
이는 높은 실업률로 이어지는 원인이 된다. 게다가 학력이 같다 해도 흑인의 실업률이 높다. 2017년 기준으로 고교 졸업자 중 흑인의 실업률은 9.5%로 백인(4.6%)의 두 배에 달한다. 대학 졸업자도 흑인 실업률은 4.1%로 백인의 2.3%보다 크게 높다.
어렵게 취업한다 해도 더 낮은 임금을 받는 게 보통이다. 흑인의 임금 수준은 고교 졸업자의 경우 같은 학력을 보유한 백인의 78.1%에 불과했다. 대학 졸업자도 78.7%에 그친다. 특히 1979년(86.9%, 87.2%)과 비교하면 격차가 더 벌어졌다.
EPI 측은 “흑인들의 학력 수준이 과거보다 높아졌지만 모든 학력그룹에서 임금 격차는 더욱 커졌다”며 이는 흑인이 임금 상승이 더딘 중저임금 업종에 많이 종사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고용, 임금 및 승진 기회에서도 인종적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흑인 등 소수 민족은 상대적으로 더 큰 어려움을 겪는다.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한 2007~2013년 흑인 가구의 순자산 감소폭(중간값)은 44.3%에 달했지만 백인 가구는 26.1%로 훨씬 적었다.
이번 코로나19에 따른 경기침체 상황에서도 마찬가지다. 코로나19 감염률은 흑인이 백인의 두 배에 달하고 있다. 직접 손님을 응대하면서 중저임금을 받는 소위 ‘프런트라인(frontline)’ 업종에 흑인이 많이 종사하고 있어서다. 뉴욕타임스는 흑인이 미국 노동인구의 11.9%를 차지하지만 프런트라인 노동자의 17%를 차지한다고 보도했다.
또 지난 4월 미국의 실업률이 14.7%로 폭등한 가운데 백인의 실업률은 14.2%였지만, 흑인은 16.7%로 더 높았다. 이렇게 경제적으로 어렵지만 흑인들은 월세 부담도 더 지고 있다. 백인 가구의 74%는 자가 소유 주택에 살지만, 흑인은 44%에 그쳐 소득이 끊긴 시기에 월세 부담이 훨씬 큰 것으로 나타났다.
제롬 파월 Fed 의장은 4월 말 기자회견에서 “실업률은 소수 민족과 저소득층에서 훨씬 빠르게 증가하는 경향이 있다”며 “모든 사람이 코로나19로 고통받고 있지만 가장 취약한 사람은 일자리와 소득을 잃은 뒤 이 시기를 견뎌낼 여력이 거의 없는 이들”이라고 말했다.
2018년 기준 미국 전체 인구(3억2400만 명) 가운데 백인은 60.4%다. 이어 히스패닉 18.4%, 흑인 13.4%, 아시아인 5.9% 순이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