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말라붙은 세수 걱정이 국가 간, 국가와 기업 간 분쟁으로 확산할 조짐이다. 영국 등이 ‘구글세’로 통칭되는 디지털 세금을 매기기 시작하자 미국이 이들 국가를 겨냥한 보복관세를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유럽은 이에 개의치 않고 다국적기업을 대상으로 새로운 법인세를 거두겠다는 계획을 내놨다. 코로나19로 쓸 돈이 많은데 들어올 세금은 적다 보니 각국 정부가 본격적으로 ‘세금 전쟁’에 돌입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美 구글세 보복 vs EU 법인세 신설…코로나發 '세금전쟁'
미, 디지털세엔 관세로 보복

미 무역대표부(USTR)는 디지털 세금을 부과하는 국가들을 집중 조사하기로 했다고 2일(현지시간) 발표했다. 디지털 세금은 디지털 기업들의 매출에 부과하는 조세다. USTR은 영국을 비롯해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체코, 스페인 등 유럽 국가와 브라질, 터키, 인도, 인도네시아가 조사 대상국이라고 설명했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USTR 대표는 “미국은 자국 기업을 차별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모든 적절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말했다. 적절한 조치엔 ‘슈퍼 301조’ 발동이 포함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미국의 이익을 침해하는 불공정행위를 하는 국가에 징벌적 관세를 매기겠다는 것이다.

미국이 디지털 세금에 예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과세 대상기업 상당수가 미국 회사기 때문이다. 이 세금을 구글세 또는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의 머리글자를 따 ‘GAFA 세금’이라고 부르는 배경이다. 미 공화당과 민주당도 일제히 USTR 조치를 지지하고 나섰다.

올초에도 미국은 영국이 디지털 세금을 부과하면 영국산 자동차에 보복관세를 매기겠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영국은 연간 5억파운드의 세수 확보를 기대하며 지난 4월부터 디지털 세금을 부과하기 시작했다. 재정 적자가 심해지고 있어서다. 다만 미국은 와인, 치즈 등에 대한 관세를 높이겠다고 압박한 끝에 프랑스에선 디지털세 도입 시도를 철회시켰다.

미국이 보복관세를 매길 경우 국가 간 무역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디지털 세금 관련 논의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OECD는 정보기술(IT) 기업들의 ‘세금 회피’ 논란과 관련해 올해 말까지 관련 합의를 도출하기로 했었다.

EU는 ‘새로운 법인세’ 만지작

미국이 보복관세를 거론하며 주시하고 있는 국가들은 세금 한 푼이 아쉬운 처지다. 유럽연합(EU)은 총 7500억유로에 달하는 코로나19 기금을 추후 변제하기 위해 세금을 신설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는 7억5000만유로 이상 매출을 올리는 유럽 내 다국적기업에 단일시장세(single market tax) 명목의 법인세를 신설할 계획이라고 이날 발표했다.

요하네스 한 EU 예산담당 집행위원은 “늦어도 2027년 말까지 연 100억유로의 단일시장세 징수가 목표”라며 “궁극적으로는 연 150억~200억유로 징수를 계획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국적기업들이 EU의 역내 무관세 혜택을 받고 있다는 점이 과세 근거다.

지난달 27일 EU는 코로나19 사태로 충격을 받은 회원국의 경제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7500억유로 규모의 기금 조성 계획을 내놨다. 금융시장에서 7500억유로를 빌려 회원국을 지원한 뒤 2028년부터 30년 동안 분할 상환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변제할 수단은 결국 세금 신설이 유일한 상황이다. 코로나19 기금 조성에 미온적 반응을 보이는 회원국에까지 부담을 지우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아서다. 한 집행위원도 “특정 국가의 예산에 의존하는 방식으로는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룰 수 없다”며 “단일시장세가 도입되면 회원국의 분담금에 대한 의존도를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세금을 신설하려면 EU 내 27개 회원국 전체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EU는 단일시장세가 큰 부담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위원회는 “연간 100억유로는 다국적기업이 EU에서 벌어들이는 매출의 0.2%에도 못 미친다”며 “단일시장세 총 징수 규모도 이들 기업 매출의 0.2% 미만을 목표로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고운 기자/런던=강경민 특파원 cca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