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펀드’를 판매한 농협은행에 과징금을 부과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하지만 과징금 부과 규모는 20억원으로 금융감독원이 당초 책정한 100억원 대비 5분의 1 수준으로 크게 줄였다. 업계에서는 “OEM펀드 제재를 둘러싼 여러 논란에 당국이 절충안을 제시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OEM펀드 과징금 100억→20억으로
3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는 이날 정례회의에서 농협은행의 자본시장법 위반 혐의에 대해 20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하기로 의결했다. 이번 과징금 부과안은 오는 24일 열리는 금융위 정례회의를 거쳐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농협은행은 2016~2018년 파인아시아자산운용과 아람자산운용에 OEM 방식으로 회사채펀드를 주문·제작한 뒤 이를 투자자 수 49명 이하인 사모펀드로 쪼개(시리즈펀드) 팔아 공모 규제를 회피한 혐의를 받고 있다. 2018년 5월 개정된 자본시장법은 동일한 증권을 두 개 이상으로 쪼개 발행할 경우 증권신고서 제출 등 공모펀드의 공시 규제를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농협은행 검사 과정에서 시리즈펀드 판매 사실을 확인한 금감원은 농협은행에 100억원의 과징금을 통보했다. 현행 자본시장법상 OEM펀드 판매사를 직접 처벌할 수 있는 근거 조항은 없다. 농협은행은 펀드증권을 쪼개 발행한 주체도 아니었다. 이에 금감원은 펀드 판매사인 농협은행이 증권발행 주선인의 지위에서 발행사인 운용사와 함께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를 진다고 해석했다. 주선인은 공시 의무 위반에 따른 과징금 제재 대상이다.

이후 증선위는 지난해 11월부터 무려 7개월여 동안 농협은행 과징금 제재안을 놓고 고심을 거듭했다. 주선인인 농협은행에 증권신고서 제출 의무가 있는지가 쟁점으로 떠오르자 증선위는 작년 말 유사 사건인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 유상증자 주선인에 대한 과징금 부과 취소 소송 1심 결과를 지켜보고 논의를 재개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지난 4월 서울행정법원은 바이오인프라생명과학 주선인 과징금 소송에서 금융당국의 손을 들어줬다.

농협은행은 이번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관련 규정이 최근 변경된 점을 근거로 다시 반론을 제기했다. SEC가 지난 3월 시리즈펀드 규제와 비슷한 거래통합지침을 폐기한 만큼 국내에서도 관련 논의가 이뤄질 필요가 있다는 취지다. 학계에서도 농협은행에 대한 과징금 부과를 우려하는 주장이 나왔다. 김홍기 한국경제법학회장(연세대 교수)은 “농협은행 펀드에서 투자자 피해가 없었는데 당국이 무리한 해석으로 과징금을 부과하는 건 법률 불소급 및 확대해석 금지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업계 한 관계자는 “농협은행을 처벌하자니 무리한 법해석을 했다는 논란이 제기되고, 처벌을 안 하면 OEM펀드 판매사에만 면죄부를 줬다는 비판이 부담이었을 것”이라며 “증선위가 고심 끝에 처벌은 하되 과징금은 대폭 줄이는 쪽으로 절충점을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증선위는 농협은행 지시로 OEM펀드를 실제 설정한 파인아시아운용과 아람운용의 과징금도 당초 각각 60억원과 40억원에서 10억원으로 크게 깎았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