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 통행금지는 미군정 때인 1945년에 시작돼 1982년까지 37년간 이어졌다. 조선시대만 해도 치안유지의 방편이었지만 분단과 전쟁을 거치면서 국가안보 요소가 더해졌다. 서양에서는 화재 예방 등 안전을 위한 성격이 강했다. 영어로 통행금지(curfew)의 어원은 프랑스어 ‘불을 덮어서 끈다(couvre-feu)’는 뜻의 소등(消燈)이다.
미국에서는 폭동이나 격렬 시위 때만 야간 통금을 단행한다. 1943년 뉴욕 할렘의 소요사태가 대표적이다. 당시 소요는 백인 경찰관의 흑인 병사 총격사건으로 촉발됐다. 그로부터 77년 만에 뉴욕에 야간 통금이 다시 등장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미네소타주의 백인 경찰관이 흑인 남성을 체포하다 숨지게 한 사건이다. 항의 시위가 격화되고, 많은 도시가 통금 조치를 취했다. 뉴욕에서도 폭력과 약탈이 잇따르자 빌 드 블라지오 시장이 지난 1일 첫 통금령을 내렸다. 그러나 시위는 밤늦게까지 계속됐고 수많은 상점과 건물이 파괴됐다.
일부 과격분자들은 메이시스 백화점과 노드스트롬 등 대형 유통업체를 습격하고 소규모 매장을 닥치는 대로 털었다. 미국 언론은 이 상황을 “전쟁보다 더하다”고 표현했다. 결국 뉴욕시는 “통금령을 1주일 연장한다”고 선포했다.
‘세계의 수도’ 뉴욕에서 벌어진 폭력과 통금 조치를 보면서 이성과 합리, 광기와 폭력의 이면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직접적인 원인은 경찰의 강경 진압이지만 그 배경에는 인종 차별에 따른 흑인들의 분노와 경제적 어려움, 코로나 충격파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전쟁은 국가 간에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 분노와 증오의 불씨가 갈등의 뇌관을 건드리면 ‘전쟁’이 격발된다. 이 와중에 희망을 보여 준 것은 “비폭력”을 외치며 평화를 촉구하는 시민들의 움직임이다. 피해자의 동생이 “방화와 파괴를 멈추고, 투표로 말하자”며 시위대를 진정시키는 장면도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