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목 잡힌 명품황제…루이비통, 티파니 인수 좌초되나 [김정은의 명품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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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과 디올, 펜디, 셀린느, 로에베, 마크 제이콥스(패션 잡화), 메이크업포에버와 겔랑, 프레시, 베네피트(화장품), 불가리와 쇼메, 태그호이어, 위블로(시계 보석), 모에샹동과 돔페리뇽, 헤네시(주류), 봉마르쉐 백화점과 DFS면세점, 세포라(유통) 등.
세계 최대 명품업체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가 갖고 있는 75개 브랜드 중 우리가 알 만한 것들이다. LVMH는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세를 확장한 회사다. 웬만한 업체들은 다 사들였으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성에 안 찼다. 명품업계에서 급성장하는 보석분야를 좀 더 보강해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고 싶었다.
그래서 장고 끝에 지난해 말 미국 보석회사 티파니를 인수하기로 했다. 인수금액은 역대 최대 규모인 162억달러(약 17조7500억원). 훈훈하게 마무리되는가 싶더니 최근 잡음이 나고 있다. ‘세기의 인수’로 불리는 이번 M&A가 불발될 가능성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루이비통과 티파니의 만남 불발되나
아르노 회장이 지난 2일 밤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티파니 인수 관련 재협상 방안을 모색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지난해 11월 두 회사는 재협상을 통해 인수가를 주당 135달러(16만원 상당)로 확정했다. 하지만 아르노 회장은 이 가격을 좀 더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문 등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댄 것으로 알려졌다. 또 티파니가 안고 있는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서 티파니가 협상 의무를 위반하고 있는지 등을 면밀하게 검토 중이다.
반면 티파니 측의 생각은 다르다. M&A 협정에 따른 금융 계약 등을 준수하고 있으며 2주 전 분기배당을 한 후에도 이 기조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재협상을 해야 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두 회사의 M&A는 아직 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인수거래가 마무리돼야 한다.
M&A를 발표할 때만 해도 장밋빛 미래를 함께 꿈꿨던 두 회사 간 분위기는 최근 급속도로 냉랭해졌다. 이처럼 갑작스러운 기류 변화가 생긴 건 거대 변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전세계를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명품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사정은 급변했다.
로이터는 “LVMH는 인수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여서 부담을 덜고 싶어하는 반면 티파니 측은 합의대로 인수가를 받고 싶어해 양측의 의견 차를 좁히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명품업계의 상황은 좋지 않다. LVMH의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5% 줄어든 105억9600유로(14조3415억원)이었다.
전세계 패션 명품업계는 이같은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세계적인 속옷업체 빅토리아 시크릿 인수에 나섰던 미국 사모펀드 시커모어 파트너스가 최근 인수 계획을 철회한 데 이어 대형 M&A가 또 불발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시커모어 파트너스는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이전엔 지난 2월 5억2500만달러(6401억원)에 지분 55%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으나 지난 22일 빅토리아 시크릿이 계약을 위반했다면서 인수 철회 소송을 냈고 결국 두 회사 간 합병은 파기됐다. ○전세계 명품시장 평정한 황제의 꿈
유럽 최고 부호로 꼽히는 아르노 회장은 현대 명품산업의 ‘대부’로 불린다. 1949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건설회사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의 전통적인 명품에 눈을 돌렸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유럽 명품업체들은 창업자에게서 물려받은 단일 브랜드를 운영하는 가족기업 형태였다.
아르노 회장은 상류층 소비자 대상 맞춤 제작 위주였던 유럽 명품에 미국식 경영기법을 접목해 대중 브랜드로 재탄생시켰다. 특히 1985년 파산 직전인 크리스챤 디올의 모기업 부삭 그룹을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수십 개 명품 브랜드를 사들여 거대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1989년에는 루이비통을 대상으로 적대적 인수합병을 벌여 ‘캐시미어 코트를 입은 늑대’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아르노 회장은 명품 산업 진출 계기에 대해 “1980년대 미국 뉴욕에서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몰라도 디올은 안다’는 택시 운전사를 만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LVMH의 시가총액은 2000억유로(272조원)로 석유기업 로열더치셸에 이어 유럽 2위다. 구찌와 발렌시아가, 보테가 베네타 등을 거느린 또다른 명품업체 케링의 시가총액은 LVMH의 3분의 1도 안 된다. 아르노 회장의 재산은 1068억달러(130조원)로 추산된다.
아르노 회장은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의 절친한 친구이며 에마뉘엘 마크롱 현 프랑스 대통령이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등과도 가까운 사이다. 최근엔 프랑스의 미디어회사 라가데르그룹의 CEO인 아르노 라가르데르가 보유한 지분 중 25%를 1억유로(1364억원)에 매입했다. 라가르데르 CEO는 창업주인 고(故) 장 뤽 라가르데르의 아들이다. 창업주의 막역한 친구였던 아르노 회장은 “라가르데르 CEO가 먼저 지분 매입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
세계 최대 명품업체 LVMH(루이비통모에헤네시)가 갖고 있는 75개 브랜드 중 우리가 알 만한 것들이다. LVMH는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세를 확장한 회사다. 웬만한 업체들은 다 사들였으나 베르나르 아르노 회장은 성에 안 찼다. 명품업계에서 급성장하는 보석분야를 좀 더 보강해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하고 싶었다.
그래서 장고 끝에 지난해 말 미국 보석회사 티파니를 인수하기로 했다. 인수금액은 역대 최대 규모인 162억달러(약 17조7500억원). 훈훈하게 마무리되는가 싶더니 최근 잡음이 나고 있다. ‘세기의 인수’로 불리는 이번 M&A가 불발될 가능성이 언급되기 시작했다.
○루이비통과 티파니의 만남 불발되나
아르노 회장이 지난 2일 밤 긴급 이사회를 소집해 티파니 인수 관련 재협상 방안을 모색했다고 로이터통신이 보도했다. 지난해 11월 두 회사는 재협상을 통해 인수가를 주당 135달러(16만원 상당)로 확정했다. 하지만 아르노 회장은 이 가격을 좀 더 낮출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고문 등 전문가들과 머리를 맞댄 것으로 알려졌다. 또 티파니가 안고 있는 부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문제제기를 하면서 티파니가 협상 의무를 위반하고 있는지 등을 면밀하게 검토 중이다.
반면 티파니 측의 생각은 다르다. M&A 협정에 따른 금융 계약 등을 준수하고 있으며 2주 전 분기배당을 한 후에도 이 기조를 계속 유지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즉 재협상을 해야 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두 회사의 M&A는 아직 당국의 승인을 받지 못했다. 예정대로라면 지금쯤 인수거래가 마무리돼야 한다.
M&A를 발표할 때만 해도 장밋빛 미래를 함께 꿈꿨던 두 회사 간 분위기는 최근 급속도로 냉랭해졌다. 이처럼 갑작스러운 기류 변화가 생긴 건 거대 변수가 생겼기 때문이다. 전세계를 덮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다. 코로나19 여파로 명품업계가 직격탄을 맞으면서 사정은 급변했다.
로이터는 “LVMH는 인수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여서 부담을 덜고 싶어하는 반면 티파니 측은 합의대로 인수가를 받고 싶어해 양측의 의견 차를 좁히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코로나19 여파로 명품업계의 상황은 좋지 않다. LVMH의 1분기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15% 줄어든 105억9600유로(14조3415억원)이었다.
전세계 패션 명품업계는 이같은 움직임을 지켜보고 있다. 세계적인 속옷업체 빅토리아 시크릿 인수에 나섰던 미국 사모펀드 시커모어 파트너스가 최근 인수 계획을 철회한 데 이어 대형 M&A가 또 불발되지 않을까 하는 우려에서다. 시커모어 파트너스는 코로나19가 확산되기 이전엔 지난 2월 5억2500만달러(6401억원)에 지분 55%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으나 지난 22일 빅토리아 시크릿이 계약을 위반했다면서 인수 철회 소송을 냈고 결국 두 회사 간 합병은 파기됐다. ○전세계 명품시장 평정한 황제의 꿈
유럽 최고 부호로 꼽히는 아르노 회장은 현대 명품산업의 ‘대부’로 불린다. 1949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그는 아버지가 운영하는 건설회사에서 경영수업을 받았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유럽의 전통적인 명품에 눈을 돌렸다. 당시만 해도 대부분의 유럽 명품업체들은 창업자에게서 물려받은 단일 브랜드를 운영하는 가족기업 형태였다.
아르노 회장은 상류층 소비자 대상 맞춤 제작 위주였던 유럽 명품에 미국식 경영기법을 접목해 대중 브랜드로 재탄생시켰다. 특히 1985년 파산 직전인 크리스챤 디올의 모기업 부삭 그룹을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수십 개 명품 브랜드를 사들여 거대 그룹으로 성장시켰다.
1989년에는 루이비통을 대상으로 적대적 인수합병을 벌여 ‘캐시미어 코트를 입은 늑대’란 별명을 얻기도 했다. 아르노 회장은 명품 산업 진출 계기에 대해 “1980년대 미국 뉴욕에서 ‘샤를 드골 전 프랑스 대통령은 몰라도 디올은 안다’는 택시 운전사를 만난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LVMH의 시가총액은 2000억유로(272조원)로 석유기업 로열더치셸에 이어 유럽 2위다. 구찌와 발렌시아가, 보테가 베네타 등을 거느린 또다른 명품업체 케링의 시가총액은 LVMH의 3분의 1도 안 된다. 아르노 회장의 재산은 1068억달러(130조원)로 추산된다.
아르노 회장은 니콜라 사르코지 전 프랑스 대통령의 절친한 친구이며 에마뉘엘 마크롱 현 프랑스 대통령이나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등과도 가까운 사이다. 최근엔 프랑스의 미디어회사 라가데르그룹의 CEO인 아르노 라가르데르가 보유한 지분 중 25%를 1억유로(1364억원)에 매입했다. 라가르데르 CEO는 창업주인 고(故) 장 뤽 라가르데르의 아들이다. 창업주의 막역한 친구였던 아르노 회장은 “라가르데르 CEO가 먼저 지분 매입을 제안했다”고 말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