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자체 생산능력이 없는 중국이 부품 조달길을 차단한 미국의 조치에 타격을 입어 반도체 국산화에 착수할 거란 전망이 나왔다. 현실화될 경우 한국 반도체 산업이 직격탄을 입을 것으로 보인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5일 '트럼프 행정부의 대(對) 화웨이 반도체 수출규제 강화와 시사점' 보고서에서 이 같이 내다봤다.

보고서에 따르면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15일 미국의 수출관리 규정을 개정해 자국 기술을 활용하는 해외 기업도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하려면 미국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화웨이에 대한 기존의 25% 최소기준 규정에 추가로 해외 생산 제품에 대한 규제 강화에도 나선 셈이다. 화웨이는 당장 수급 문제에 직면했다.

미국의 이번 조치에는 화웨이가 첨단 시스템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하도록 하려는 전략적 판단이 깔렸다. 인텔·퀄컴·ARM 등 반도체 유력 회사와 거래가 중단된 화웨이는 그동안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인 대만 TSMC로부터 부품을 조달했지만 이마저도 더는 어렵게 됐다.

KIEP는 "미국의 이번 규제 확대는 화웨이와 TSMC 사이 연결고리를 제거하는 데 목적이 있다"며 "미국이 자국 내 TSMC의 최첨단 시스템반도체 공장 건설을 유치한 만큼 이 회사를 중국에서 분리하고 미국의 공급망에만 편입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 화웨이가 현실적으로 택할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반도체 개발을 화웨이와 무관한 팹리스 기업에 의뢰하는 것"이라며 "중국 파운드리 업체가 TSMC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으나 기술 수준이 TSMC나 삼성전자보다 뒤처진다"고 밝혔다.

KIEP는 "첨단 반도체 제조능력이 없어 타격을 입은 중국은 이번 경험을 통해 첨단 반도체 국산화에 박차를 가할 것"이라며 "이들이 제조능력을 갖추게 되면 장기적으로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중국과의 기술격차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제언했다.

KIEP의 분석처럼 중국이 첨단 반도체의 국산화에 성공하고 규모까지 키울 경우 한국 반도체 산업에 직격탄이 예상된다. 반대로 국산화가 늦어지면 중국내 첨단 반도체 수요가 줄어 시장이 위축돼 한국 업체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밖에 없다.

중국은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 70% 달성을 목표로 하고 있다. 지금까지 중국은 50개 반도체 사업에 2430억 달러를 투자하는 등 반도체 제조 장비를 폭발적으로 구입하고 있다. 2019년 처음으로 반도체 장비 구입 규모 면에서 한국을 추월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