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 최초로 동영상 시대 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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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와 문화의 가교 한경
두꺼운 유리에 볼록 튀어나온 화면. 1990년대 후반까지 널리 쓰였던 브라운관 TV 모습이다. LCD(액정표시장치) 상용화 전까지 가정마다 거실 한가운데 놓였던 브라운관은 왜 이름이 브라운(Braun)일까. 1897년, 브라운관을 발명한 독일의 물리학자 이름이 바로 카를 페르디난트 브라운이기 때문이다.
브라운은 150년 전인 1850년 6월 6일 독일 중부의 풀다에서 태어났다. 스트라스부르대에서 물리학 교수이자 물리학 연구소장으로 연구를 하던 브라운은 1897년 마침내 브라운관을 발명해냈다. 브라운관은 전기신호를 영상으로 구현해낸 최초의 발명품이었다.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는 동영상 시대가 100여 년 전 브라운의 발명으로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이후 LCD 등 가볍고 얇은 차세대 디스플레이가 상용화되기 전까지 브라운관은 한 세기 동안 TV와 컴퓨터의 디스플레이로 널리 쓰였다.
브라운관 개발 이후 그는 무선 전신 연구에 집중했다. 당시 무선 전신 기술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전파가 급격히 약해져 통신에 한계가 뚜렷했다. 브라운은 고주파 전파를 활용한 통신 기술을 고안해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해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1902년 그에게 노벨물리학상을 수여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
브라운은 150년 전인 1850년 6월 6일 독일 중부의 풀다에서 태어났다. 스트라스부르대에서 물리학 교수이자 물리학 연구소장으로 연구를 하던 브라운은 1897년 마침내 브라운관을 발명해냈다. 브라운관은 전기신호를 영상으로 구현해낸 최초의 발명품이었다. 현대에도 이어지고 있는 동영상 시대가 100여 년 전 브라운의 발명으로 비로소 시작된 것이다. 이후 LCD 등 가볍고 얇은 차세대 디스플레이가 상용화되기 전까지 브라운관은 한 세기 동안 TV와 컴퓨터의 디스플레이로 널리 쓰였다.
브라운관 개발 이후 그는 무선 전신 연구에 집중했다. 당시 무선 전신 기술은 거리가 멀어질수록 전파가 급격히 약해져 통신에 한계가 뚜렷했다. 브라운은 고주파 전파를 활용한 통신 기술을 고안해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해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은 1902년 그에게 노벨물리학상을 수여했다.
정의진 기자 justj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