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회복을 위해 조성하는 7500억유로(약 1028조원) 기금 분배방식을 놓고 또 다시 분열되고 있다. 당초 코로나19 기금의 조성방식을 놓고 갈등을 빚은 회원국들은 이번엔 기금을 나눠주는 기준을 놓고 충돌하고 있다.

7일(현지시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EU 행정부인 집행위원회는 코로나19 기금을 분배하기 위한 잠정 기준을 정했다. 집행위는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의 평균 국내총생산(GDP), 1인당 GDP, 실업률 등 세 가지 항목을 근거로 회원국들에게 기금을 나눠주기로 했다. 지난 3월부터 유럽에서 확산된 코로나19에 따른 직접 피해는 감안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남부유럽 국가는 동유럽 등 신흥국가에 비해 GDP 증가율이 낮다. 반면 상대적으로 인구는 많아 1인당 GDP는 서유럽 국가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매년 두자릿수의 높은 실업률은 남부유럽 국가들의 고질적인 문제이기도 하다. 집행위는 이 기준대로라면 코로나19로 피해가 컸던 이탈리아, 스페인, 그리스 등 남부유럽 국가가 가장 큰 수혜를 입을 것으로 내다봤다.

전체 기금의 절반 이상이 이들 3개국에 지원될 것이라는 게 집행위의 설명이다.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위원장(사진)은 “자금지원은 모든 회원국에 제공될 예정”이라면서도 “코로나19로부터 가장 피해를 많이 받고 회복 필요성이 가장 큰 곳에 집중될 것”이라고 밝혔다.

FT는 “집행위의 이 같은 계획에 대해 일부 회원국들이 큰 불만을 표시하고 있다”고 전했다. EU의 한 외교관은 FT와의 인터뷰에서 “코로나19 기금은 전염병으로 피해를 입은 곳에 사용돼야 한다”며 “코로나19 봉쇄조치와 무관한 기준으로 기금이 지급되는 건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어 전 세계에서 코로나19 사망률이 가장 높은 벨기에는 집행위의 잠정 기준대로라면 기금 지원을 거의 받지 못한다. 벨기에의 인구 10만명당 코로나19 사망자는 82.8명으로 소국 산마리노(123.8명)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높다. 그럼에도 코로나19 발병 직전인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의 GDP와 실업률 등만 반영되면서 기금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 FT의 지적이다.

벨기에뿐 아니라 동유럽 국가들도 기금 지원의 혜택을 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신흥국 위주의 동유럽 국가들은 선진국들과 달리 지난해까지 연간 5%가 넘는 고성장을 계속해 왔기 때문이다. 실업률도 남부유럽에 비해 훨씬 낮다.

FT는 코로나19 기금계획안이 통과된 후에도 자금 지원여부를 결정하는 과정에서 갈등이 적지 않을 것으로 내다봤다. EU에 따르면 기금 지원을 희망하는 회원국들은 집행위에 자금 신청을 해야 한다. 지원 여부는 27개 회원국의 다수결 투표로 결정된다. EU 관련 전문매체인 유랙티브닷컴도 “일부 국가에 기금 수혜가 집중된다는 것에 대한 회원국들의 반발이 적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