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戰時…일자리 늘리려면 규제 풀어야"
“지역 일자리를 발굴하라면서 수도권, 광역도시는 안 된다는 게 말이 됩니까.”

이석행 한국폴리텍대 이사장(사진)은 8일 ‘규제 완화’ 필요성을 강조하며 정부의 일자리 정책을 비판했다. 그는 “지금은 전시상황”이라며 “일자리 하나라도 만들고 지킬 수 있다면 한시적이나마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했다.

이 이사장은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위원장 출신이다. 2007~2009년 민주노총 위원장 당시 미국산 소고기 수입 반대 총파업 투쟁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랬던 그가 지금 ‘일자리 전도사’로 변신했다. 2017년 12월, 고용노동부 산하 국책기술대학인 한국폴리텍대 이사장을 맡은 게 계기가 됐다. 취임 당시 쏟아진 ‘노동계 낙하산’이라는 비판을 의식해 그동안 인터뷰를 사양했던 이 이사장은 “전쟁 같은 비상상황에 할 말이 많다”며 한국경제신문에 인터뷰를 요청했다.

이 이사장은 일자리 창출을 막는 규제로 정부가 시행 중인 ‘지역산업 맞춤형 인력양성 사업’을 첫손에 꼽았다.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특성에 맞는 일자리 사업을 제안하면 정부가 훈련을 지원하는 사업이다. 폴리텍대는 일선에서 이 사업을 수행하는 기관이다. 전국 36개 지역에 훈련기지(캠퍼스)를 두고 있다.

이 이사장은 “현재는 수도권·광역도시라는 이유로 지역산업 맞춤형 인력 양성을 못 하게 돼 있다”며 “환경이 열악한 지역을 우선 지원하라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특별한 근거 규정도 없이 이렇게 돼 있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재직 중인 근로자의 이직·전직 훈련 관련 규제도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는 2018년부터 사업주 위탁 재직자 훈련을 각 사업장이 아니라 지역 폴리텍대 내에서만 운영하도록 하고 있다. 민간영역에서 훈련하는 과정 중 부정수급 문제가 있었고 이를 중앙에서 관리하기 힘들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이사장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사업의 근본 취지 등을 고려하면 구더기 잡겠다고 초가삼간 태우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이 이사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수습을 위해 정부가 쏟아낸 일자리 정책에도 아쉬움을 나타냈다. 그는 “재택근무 등 비대면 노동과 경제가 확대된다지만 일자리 정책이 ‘오로지 디지털’이어서는 안 된다”며 “디지털, 인공지능(AI)이 아무리 대세라지만 모두가 코딩만 배우면 시쳇말로 소는 누가 키우냐”고 했다. 뿌리산업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였다.

그러면서 “포스트 코로나 시대 핵심은 직업 경쟁력”이라며 폴리텍대 교수들의 역량 개발 방안도 밝혔다. 그는 “교원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필수의무 연수 과정을 도입할 계획”이라며 “교수들을 향후 기업 컨설팅까지 가능한 기술세일즈맨으로 만들 생각”이라고 했다.

한창 진행 중인 노·사·정 대타협과 관련한 조언도 했다. 이 이사장은 “그동안은 위기 때마다 노사를 억지로 모아 놓고 노동관계법을 개정하는 수준의 대화에만 머물렀다”며 “이제는 우리나라 산업 구조가 어떻게 바뀔지에 대한 담론까지 나눠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한 번 입사하면 정년이 보장되는 시대가 지났다”며 “급변하는 환경에 맞춰 직업훈련, 재교육 등을 통해 일터에 오래 머물 수 있는 방안을 노사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고 했다.

백승현 기자 arg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