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어 대사전에는 전단(傳單: 선전이나 광고 또는 선동하는 글이 담긴 종이쪽)의 북한어라고 풀이돼 있다. 전단지는 홍보용 종이 인쇄물을 가리킨다. 주로 마케팅 등 상업적인 용도로 쓰인다. 그러나 삐라라고 하면 어감이 달라진다. 정치적 선전이나 군사용으로 이용돼왔기 때문이다.
삐라의 효용은 고대 이집트의 노예 추적부터 종교개혁 때 교황의 위선을 비판하는 것까지 다양했다. 2차 대전 중 독일에 삐라를 뿌리던 연합군 조종사들은 자신을 ‘휴지 배달부’라고 불렀다. 쓸데없는 짓이라는 얘기였다. 하지만 전선에서는 기대 밖의 효과를 거뒀다.
6·25전쟁 때에도 유엔군이 심리전을 위해 공산군 진영에 삐라를 뿌렸다. 휴전 후에는 북한이 더 많이 뿌렸다. 당시만 해도 북쪽이 더 잘살았기에 삐라에 현혹돼 월북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삐라 색깔은 대부분 눈에 잘 띄는 붉은색이었다. 북한 삐라의 약발이 떨어진 것은 남북의 국력이 역전된 뒤부터였다.
우리도 손 놓고 있진 않았다. 이른바 ‘대북전단’에 간단한 생필품과 먹을거리, 비디오테이프 등을 넣어 보냈다. 1983년 미그기를 몰고 귀순한 이웅평 대령은 “불량품 신고 전화번호와 함께 ‘유통 중 이상이 생긴 제품은 교환해 드립니다’라는 문구를 난생처음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북한은 틈만 나면 대북전단을 문제 삼고 나섰다. 2008년 금융위기 때와 2011년 천안함 폭침 1주기 때 등 정국이 불안할 때마다 ‘삐라’를 구실로 온갖 요구를 해왔다. 2014년엔 대공포로 요격하기도 했다. 2018년 대북 확성기가 철거된 뒤로는 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다.
지난 4일에도 북한 2인자 김여정이 대북전단을 맹비난하는 협박성 담화를 발표했다. 이에 정부와 여당이 “법으로 금지하도록 하겠다”며 저자세를 보이자 어제 남북 통신연락선을 차단하며 고삐를 더 죄고 있다.
그 사이에 북의 삐라는 종이에서 인터넷으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민간단체의 대북전단만 문제 삼는다. 예나 지금이나 삐라는 체제가 불안한 사회에 더 잘 먹힌다. 북이 이토록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도 그만큼 현재 상황이 어렵다는 방증이 아닐까 싶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