③편 갑질 피해 대책 부족한 한국 사회
▽ 신체·경제보다 '정신 피해' 더 호소
▽ 피해자 10명 중 5명, 개인적 처리
▽ 갑질이라도…60%, 소비자 요구 수용
▽ "사내 피해 교육·매뉴얼 없다" 토로
▽ 갑질 피해 구제 장치 마련해야
이 사건을 계기로 우리 사회의 '갑질' 현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갑질'은 수 년 전부터 끊임 없이 사회적 논란거리였습니다. 외신이 발음을 그대로 쓴 'gapjil'로 써 조명할 정도죠. 이미 만연한 사회 현상이지만 명확한 정의도, 해결 방안도 없는 상황입니다.
뉴스래빗이 형사정책연구원의 '소비자 '갑질' 폭력에 대한 피해조사 연구' 보고서를 통해 갑질이 무엇인지 정의하고, 우리 사회의 현실을 조명합니다. 대한민국 갑질의 실제 모습을 조명하는 [팩트알고] 갑질 특집입니다. 10여년 전부터 국내 연구들이 정의한 '갑질'이란 무엇인지, 보고서에 수록된 다양한 정의를 살펴봅니다. 소비자 갑질 피해 경험이 있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인터뷰 결과도 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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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 [팩트알고] 경비원 갑질에 화난 당신…'콜센터 여직원'에겐 친절했나요?
② [팩트알고] 1년 지나 "반품" 집어던져…'갑질' 약자의 일상
앞선 기사에서 확인해보니 '갑질'은 특이한 상황이 아니라 일상 속에 있었습니다. 모욕적인 비난과 욕설, 성희롱, 위협과 괴롭힘, 차별대우, 물리적 신체 접촉(폭력) 등 종류도 다양하죠.
이 중에서도 피해자들은 모욕적인 비난과 욕설을 가장 많이 경험했습니다. 1063명을 설문조사했더니 이 중 891명, 83.8%가 '경험이 있다'고 밝혔습니다.
모욕적 비난과 욕설 "제가 실수한 것도 없는데 (고객이) 욕하고 '신입사원이지? 인사 똑바로 안 하냐 새X야. 와서 그딴 식으로 할 거면 때려쳐라'고 굉장히 모욕적으로... 욕을 심하게 했었어요"
성희롱 "전화 상담을 하면서 정신적인 부분에서 가장 스트레스가 크죠. (...) '잠이 안 와서 그러는데 잘 자요 한 마디만 해달라'고 하시는 분도 있고, 이런 경우에도 해줄 수밖에 없어요. 욕설이 아니니까 저희가 먼저 못 끊잖아요. 그리고 저희 상품 중에 성인 채널들이 있는데 '어떤 게 더 진해?', '어떤 게 어떤 스타일이야?' 하면서 물어봐요"
차별대우 "(...) 술에 엄청 취한 남자분이 들어오셔서 (여직원이) 영업 끝났다고 말씀드리니까 '그래도 한 잔만 팔아라' 이런 식으로 말씀하셔서 그 친구가 이미 머신도 다 정리했으니 어려울 것 같다고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대요. (...) 나중에 제가 가보니까 그 남자분이 여직원한테 거의 쌍욕을 하시면서 멱살을 잡으려고 하시더라고요. 그러다가 제가 들어온 걸 보시곤 그 남자분이 갑자기 말투가 바뀌더니 그냥 나가버리시더라고요"
그렇다면 서비스업, 판매업 종사자들은 '소비자 갑질'로 인해 어떤 피해를 입고 있을까요.
형사정책연구원은 2019년 12월 <소비자 '갑질' 폭력에 대한 피해조사 연구>란 제목의 연구보고서를 발간했다. 이 보고서는 그간 체감으로만 느껴왔던 '갑질'을 구체적으로 정의한 기존 연구들을 소개하고, 직접 수행한 설문조사와 표적집단면접조사(focus group interview, 이하 '인터뷰') 결과도 수록했다.
설문조사는 종사자 1000명을 대상으로 소비자 갑질 피해 관련 문항에 답하게 한 결과다. 20여명 규모의 인터뷰는 소비자를 상대로 하는 서비스업, 판매업 등의 종사자에게 갑질 피해 경험을 더 깊게 물은 '심화판'이다. 인터뷰 대상자들이 직접 낸 목소리도 수록돼 있다.
정신적 피해가 심각한 수준이었다는 대답도 비중이 유독 높았습니다. '매우 심각(15.5%)'과 '심각(34.1%)'을 합하면 49.6%로 절반에 달하죠. '매우 심각'과 '심각'의 합이 신체적 피해는 8.9%, 경제적 피해는 15% 수준인 점과 대조됩니다.
혼자서, 혹은 주변인의 도움을 받아 개인적으로 해결한 경우가 10명 중 9명인 셈입니다. 회사나 외부 기관의 도움을 받은 경우는 10.7%에 불과했습니다.
갑질 피해시 마무리 유형을 조사한 결과, '소비자의 요구 일부 수용'이 45.2%로 가장 많았습니다. '전부 수용'이 15.1%로 뒤를 이었죠. 둘을 합하면, 10명 중 6명이 소비자의 요구를 수용했다는 뜻입니다. 소비자가 '갑질'이라 느낄 만한 행동을 했더라도, 일단 불만 제기가 들어왔으면 전부든 일부든 수용할 수밖에 없는 현실인 셈입니다.
교육도, 매뉴얼도 "없다"
회사에서 소비자 갑질 관련 교육을 받은 적이 있냐는 질문에 53.7%가 "전혀 없다"고 답했습니다. "가끔 받는다"는 37.8%를 제외하면 교육이 잦은 곳은 8.5%에 불과합니다.
갑질에 대응하기 위한 매뉴얼이 존재하냐는 질문에도 절반 이상이 "없다"고 답했습니다. 회사에 소비자 갑질 대응 매뉴얼이 존재한다고 답한 종사자는 1000명 중 313명(31.3%)에 불과합니다. 다만 매뉴얼이 있는 경우에는 해당 매뉴얼이 '적절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61.7%로 많았습니다.
연구보고서를 통해 피해자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온 사회가 분노했던 이 '소비자 갑질'은 경비원만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종사자 1000여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대부분이 피해를 경험해봤다고 답했습니다. 대부분 정신적 피해이지만, 일단 불만이 접수되면 일부든 전부든 들어주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피해를 당한 종사자는 회사나 관련 기관의 도움을 받기보단 혼자서 해결하고 있는 점도 문제입니다.
'경비원 갑질' 사건에 크게 분노한 한국 사회에, 분노와 공감 이상의 해결책은 아직 없는 현실입니다. 경비원 최씨와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은 발생하지 않도록, 기업과 사회 모두 안전장치를 마련해야 할 때입니다.
책임= 김민성, 연구= 강종구 한경닷컴 기자 jonggu@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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