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부터 증상이 심하지 않은 인지장애 질환으로 치매약을 복용하면 환자 부담이 크게 늘어난다. 정부가 한 해 185만 명이 처방받는 콜린알포세레이트 급여 기준을 축소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기 때문이다.
치매 외 다른 질환, 환자 부담 늘 듯

10일 의료계에 따르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11일 콜린알포세레이트제제를 복용하는 환자에게 건강보험 혜택을 주는 게 옳은지 등을 논의하기 위해 약제급여평가위원회를 연다. 콜린알포세레이트제제는 지난해 185만 명의 환자가 3525억원어치를 처방받아 복용한 약이다. 국내에 229개 제품이 출시돼 판매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달 이 약의 처방량이 급격히 증가하고 임상적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건강보험 급여 재평가 대상에 포함했다. 건강보험 재정이 낭비되는 것은 아닌지 등을 따져보겠다는 취지다.

이달 초 열린 약제급여평가위원회 소위원회에서는 치매환자가 이 약을 처방받으면 지금처럼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지만, 경도인지장애 등 다른 뇌 질환 환자가 쓰면 부담금을 높이는 방안이 유력하게 논의됐다.

3년 만에 두 배 넘게 성장

콜린알포세레이트제제는 이탈리아 제약사 이탈파마코가 1989년 개발한 약이다. 국내에서 뇌영양제, 치매 예방약 등으로 광범위하게 처방되고 있다. 약 부작용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치매환자를 치료하지 않는 진료과 등에서도 사용하면서 2016년 1676억원이었던 시장 규모는 지난해 3525억원으로 두 배 넘게 성장했다.

매출 1위인 대웅바이오가 콜린알포세레이트제제인 글리아타민으로 올해 4월까지 벌어들인 돈은 317억원에 이른다. 종근당의 글리아티린은 260억원, 유한양행의 알포아티린은 64억원이었다.

시장이 급격히 커지면서 부작용도 있었다. 일부 의료기관 등에서는 이 약이 뇌 기능을 살려주는 만병통치약처럼 남용됐다.

치매 환자 처방비율은 17%

지난해 치매질환 때문에 콜린알포세레이트를 처방받은 환자는 32만6000명이다. 처방액은 603억원으로 콜린알포세레이트제제 처방액의 17%에 불과하다. 경도인지장애 환자들의 부담금을 높이면 상당수 환자의 약값 부담이 높아질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부가 이 약에 대한 건강보험 혜택을 줄이는 방안을 유력하게 논의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사들은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다. 이찬녕 고려대 안암병원 신경과 교수는 “치매 환자에게 콜린알포세레이트가 효과 있다는 논문은 나와 있다”며 “경도인지장애는 치매 전 단계 환자를 관리하는 차원에서 건강보험 급여가 필요하다”고 했다.

치매 환자를 치료하는 의사들은 치매 진단을 받기 전 인지기능이 떨어진 환자에게 콜린알포세레이트와 도네페질 제제 등을 처방하고 있다. 인지기능이 떨어지는 속도를 늦추고 환자가 주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관리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해서다.

국내에 콜린알포세레이트를 대체할 수 있는 약은 없다. 의사들이 치매 환자를 상담해도 상담료 등을 받을 수 없다. 건강보험에서 이를 제대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경도인지장애 환자에게 약 처방까지 못하게 되면 이들이 치료 사각지대로 남을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도 나왔다. 의료계 관계자는 “선별급여로 전환되면 시장규모가 줄겠지만, 이보다 더 큰 문제는 건강보험 재정을 아끼려다 환자 부담을 늘리는 것”이라며 “일반약을 확대하고자 하는 약사들과 처방약을 지키려는 의사들 사이에서 절충안을 마련하다 보니 환자만 피해를 보게 됐다”고 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