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병석 칼럼] '재난지원금 소고기'가 목에 걸린다
“모처럼 소고기 국거리를 샀다는 보도를 보고 뭉클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긴급재난지원금으로 소고기 소비가 늘어 가격까지 뛰었다는 보도가 나오자 이런 말을 했다. 이렇게 대통령의 심금을 울린 재난지원금을 받아 간 가구가 한 달 만에 전체 대상의 99.5%를 넘었다. 금액으론 95%를 웃돈다. 자의든 타의든 재난지원금을 받지 않고 기부한 금액은 총 지원예산 14조2448억원 중 7000억원도 안 될 것으로 보인다. ‘관제 기부’ 논란을 무릅쓰고 대통령까지 나서 독려한 것 치고는 초라한 실적이다. 열성 지지자들이 기부에 동참해 ‘제2의 금모으기 운동’으로 확산되면 10~20%는 기부금으로 되돌아올 것이라던 여당은 난감해할 만하다.

그 돈은 처음부터 돌아올 돈이 아니었다. 정부가 현금을 나눠줘도 “난 필요없다”고 반납하는 국민이 꽤 있을 거라고 믿었다면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고 말해야 할 것 같다. 《국부론》을 쓴 애덤 스미스는 “우리가 저녁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빵 굽는 사람, 푸줏간 주인, 양조업자의 자비심 때문이 아니다. 그들이 자기 이익을 추구한 덕분이다”고 했다. 인간의 이기심을 꿰뚫어 본 것이다.

사람들의 이기심은 어떻게 물꼬를 터주느냐에 따라 공동체에 약(藥)도 되고, 독(毒)도 된다. 선명한 사례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다. 자본주의처럼 시장경쟁을 보장하고 성과에 대해 차등 보상을 하면 이기심에서 샘솟는 개인들의 노력이 모여 공동체 이익은 극대화된다. 반면 공산주의처럼 열심히 하든 말든 성과를 똑같이 나눠 주면 이기심은 개인이 노력을 덜 하게 작동한다. 공동체의 파이가 작아지는 건 당연하다.

이기심의 활용 관점에서 보면 공산주의보다 더 나쁜 게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이다. 개인의 이기심에 아첨해 공동체 이익을 아예 파괴해 버리기 때문이다. 이번에 긴급재난지원금이 그 위력과 위험성을 보여줬다. 재정 파탄을 걱정해 재난지원금 수령 거부 운동이라도 벌이자던 양식 있는 사람들조차 거의 빠짐 없이 받아간 것을 보면 그렇다. 하지만 이기심이란 본성을 억누르지 못한 국민을 나무랄 순 없다. 그 이기심을 악용한 ‘나쁜 정치’가 비난받아야 한다.

여야 잠룡들까지 앞다퉈 화두로 올리고 있는 기본소득도 마찬가지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으로 국회의원 총선에서 재미를 본 여당이나, 그것 때문에 선거에서 졌다고 생각하는 야당이나 기본소득을 들고나오는 이유는 비슷해 보인다. 국민에게 ‘공짜 점심’을 쏴서 환심을 사고, 다음 선거에서 표를 더 받아 보겠다는 심산이다. 이 때문에 기본소득을 도입하려면 기존 복지는 대거 폐지하거나 세금을 확 올려야 한다는 ‘불편한 진실’은 아무도 분명히 말하지 않는다.

긴급재난지원금의 맛을 본 국민도 이런 걸 매달 주겠다는데 싫어할 리 없다. 여론조사를 하면 기본소득 도입에 찬성하는 국민이 더 많다. 기본소득을 전 국민에게 1인당 매달 50만원씩 준다고 치면 연간 310조원가량이 필요하다. 당초 올해 정부 예산(512조3000억원)의 60%가 넘는다. 이 막대한 돈을 어떻게 조달할지엔 국민도 큰 관심이 없는 듯하다. 일단 주면 받고 보겠다는 잠재적 이기심이 작용해서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 긴급재난지원금도, 기본소득도 공돈 같지만 공짜가 아니다. 국민 호주머니에서 나올 수밖에 없는 돈이다. 세금을 더 내든, 나랏빚을 늘리든 해야 한다. 세금이 올라가고 국가채무가 쌓이면 나라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기 어렵다. 경제가 나빠져 국민 살림이 빠듯해지면 나쁜 정치는 더 많은 돈을 뿌리려고 할 게 뻔하다. 우고 차베스 대통령 시절(1999년 2월~2013년 3월)의 베네수엘라가 그랬다.

베네수엘라는 그 결과 10년 전만 해도 1만달러가 넘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지난해 2547달러로 4분의 1토막 났다. 같은 기간 25%였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200%에 육박했다. 작년 경제성장률은 -39%였고, 물가는 20만%나 올랐다. 근로자 한 달 월급으로 소고기 두 근도 못 사 먹는다. 이번에 재난지원금으로 사 먹은 소고기가 목에 걸리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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