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걱정부터 앞서는 내년 최저임금 협상
“경제 활성화에 대한 자기희생의 자세는 없고 국민 세금 퍼주라는 거냐” “일자리 지키기를 최우선 과제로 삼고 소모적 논쟁 벌이기보다는….”

최근 노사 단체가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와 노·사·정 대화와 관련해 내놓은 발언의 일부분이다. ‘세금 퍼주기는 안 된다’는 말은 경영계가, ‘일자리 지키기가 최우선 과제’라는 언급은 노동계가 했을 것 같지만 그 반대다. 앞의 발언은 지난달 27일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경제단체를 향해 한 것이고, 뒤의 발언은 이달 초 중소기업중앙회 임원이 한 것이다. 한 노동계 인사는 “평소 노사 단체가 사용하던 언어가 뒤바뀐 진풍경이 나타났다”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가 노동시장에 준 또 다른 영향”이라고 말했다.

내년도 최저임금을 결정할 최저임금위원회 심의가 11일부터 시작된다.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를 맞고 있어 최저임금 심의 결과를 전망하는 게 그 어느 때보다 쉽지 않다. 22년 만에 양대 노총이 참여하는 노·사·정 대타협이 추진되는 가운데 열리는 이번 최저임금 심의가 극단을 달리는 노사 공방의 간극을 얼마나 메울지 예상하기 어렵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양대 노총은 노·사·정 대타협 논의 과정에 ‘해고 금지’를 주장하면서 동시에 최저임금 대폭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양립 불가능한 주장이다. 경영계는 코로나19 비상 상황 속에 최저임금 인상은커녕 지금 근로자들이 받고 있는 임금도 줄여야 고용 유지가 된다는 입장이다.

내년도 최저임금 논의를 더 걱정스럽게 하는 것은 바로 공익위원들이다. 공익위원들은 최저임금 결정의 키를 쥐고 있다. 하지만 노사 어느 쪽도 공익위원들의 생각이나 견해를 궁금해하지 않는다. 오로지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의 ‘입’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공익위원들은 독립성을 유지하며 노사 의견을 듣고 철저한 사전 현장·실태 조사를 거쳐 전문가적 식견을 담아 최저임금을 결정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아서다.

그동안 공익위원들은 스스로에게 부여된 독립성을 내던지고 ‘정권의 코드’를 살펴 인상률을 결정한 경우가 많았다. 박근혜 정부부터 문재인 정부에 걸쳐 최저임금을 결정했던 공익위원들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2016년과 2017년에 적용되는 최저임금을 전년 대비 각각 8.1%, 7.3% 올렸다. 하지만 ‘최저임금 1만원’을 공언한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자 2018년도 최저임금을 무려 16.4% 올렸다. 이런 ‘거수기 결정’은 취약 근로자의 고용 불안을 초래했다.

일각에서는 “차라리 내년 최저임금 결정을 못 하면 좋겠다”는 반응도 나온다. 최저임금 결정을 못 하면 이듬해는 ‘최저임금이 없는 한 해’가 된다. “시장 같지 않은 시장보다는 정글이 낫다”는 목소리가 공익위원에게도 들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