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범의 별 헤는 밤] 혜성 관측에 실패한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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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은 유난히 요란한 혜성 소식에 실망이 컸지만 그래도 며칠 혜성을 관측하느라 시간을 보냈다. C/2019 Y4란 고유명을 가진 아틀라스 혜성이 지난 세기 마지막으로 엄청난 밝기를 자랑했던 헤일밥 혜성보다 더 밝아질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갑자기 부서져버렸다. 태양에 근접하면서 혜성의 핵이 부풀어오르다 중력을 이기지 못하면 종종 발생하는 현상이다. 혜성의 초기 모습을 기록하고, 더 밝아지면 어떻게 관측할까 즐거운 고민을 하다가 그냥 흥이 식어버렸다.
1997년 봄, 경북 영천 보현산천문대 서쪽 하늘에 신비로울 정도로 선명하게, 덩그러니 한 달 이상을 떠 있던 헤일밥 혜성의 기억이 생생하기에 실망감은 더 컸다. 그나마 남쪽 하늘에는 C/2020 F8 스완 혜성이 예상보다 밝아지면서 길게 꼬리를 뻗어서 멋진 모습을 보인다. 마치 1996년 봄에 은하수가 밤하늘을 가로지르듯 온 하늘에 푸른 이온 꼬리를 길게 뻗었던 햐쿠타케 혜성의 축소판이었다. 20세기 마지막에 나타난 햐쿠타케 혜성과 헤일밥 혜성은 각각 엄청난 길이의 꼬리와 길이는 짧아도 보기 좋게 갈라진 푸르고 흰 꼬리로 대표되는 혜성이다.
일반적으로 혜성은 푸른 이온 꼬리와 흰 먼지 꼬리를 가지는데, 먼지 꼬리 없이 이온 꼬리만 있는 경우도 많으며 대표적으로 햐쿠타케 혜성을 들 수 있다. 이온 꼬리는 태양풍에 날려서 태양 반대 방향으로 길게 뻗어나가고, 먼지 꼬리는 혜성이 지나는 길에 뿌리면서 뻗어나간다. 그런데 혜성이 태양 가까이 다가가면 먼지 꼬리가 움직이는 방향과 태양 반대 방향으로 뻗는 이온 꼬리의 방향이 달라서 두 꼬리가 점점 더 벌어진다.
보기 드물게 선명한 은하수
혜성에 대한 미련 때문에 스완 혜성을 관측하려고 좌표를 찾아보니 북반구에서는 5월 하순 새벽 여명에 아주 낮게 겨우 볼 수 있었다. 점점 밤이 짧아지면서 새벽이 빨리 다가와 그대로 밤을 꼬박 새웠다. 조금 자고 새벽에 일어나면 좋겠지만 이게 참 잘 안 된다. 야간 관측에 익숙해 오히려 밤을 새우는 게 훨씬 쉽다.
혜성 관측 시간보다 조금 일찍 밖으로 나서니 도시의 불빛 위로 솟은 멋진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옅은 구름이 도시 불빛을 살짝 가려서 평소보다 훨씬 어둡게 느껴졌다. 그 덕분인지 은하수가 생각보다 선명하고 밝았다. 혜성은 추적이 되는 155㎜ 구경의 굴절망원경으로 관측할 계획이었는데 망원경이 있는 돔으로 가기 전에 발걸음을 멈추고 은하수 사진부터 찍었다. 천문박명까지 10분 정도 여유가 있었고 천문박명 후에도 10여 분을 더 찍을 수 있었다.
천문박명은 해가 일정한 고도 이하로 지평선 또는 수평선 아래 있어서 밤하늘이 충분히 어두운 시점의 기준이 되는 시간이다. 천체 관측은 천문박명을 기준으로 관측 시작과 마지막을 정하는데, 천문박명 후 하늘이 다소 밝아져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20~30분을 더 관측하기도 한다. 하지만 은하수 관측은 어두울수록 좋기 때문에 박명이 시작되면 추가 관측을 거의 포기한다. 혜성 관측도 중요하지만 은하수가 선명한 이런 날이 또 언제 오려나 싶어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찍어둔다. 실제로 이런 날은 연중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 귀한 순간이다.
장엄한 일출과 짙은 운해는 흔한 풍경
은하수 사진을 찍고 급하게 돔으로 가서 망원경을 혜성으로 향하니 보현산 능선에 가려버렸다. 작은 망원경이 있는 돔은 정상에서 남쪽으로 조금 아래 있는데 혜성이 생각보다 훨씬 북쪽으로 치우쳐 떴다. 미리 확인을 못한 탓도 있지만 어차피 찍을 수 없는 대상이었다. 깨끗이 포기하고 밖으로 나서니 해뜨기 전의 여명에 차갑고 짙은 푸른 대기가 가슴을 시원하게 해줘 혜성 관측에 실패한 아쉬움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옅은 운해가 서서히 올라와 산봉우리를 둘러싸고 지상의 모습을 감췄다.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마을과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푸른 여명은 해뜨기 전의 옅은 황금빛 여명으로 서서히 변해갔다. 마침내 눈부신 붉은 해가 나오고 세상은 더 짙은 황금빛으로 뒤덮였다. 하루 중 이 시간이 참 좋다. 저녁노을도 좋지만, 새벽 여명은 차분한 마음이 들게 하다가 급격히 들뜨게 한다. 해가 올라오는 시간이면 세상이 다 밝아지고, 왜 안 올라오지 하면서 포기할 때쯤 눈이 부시게 나타나는 태양 때문에 세상은 다시 어두워진 느낌이 든다.
밤새 기다린 혜성 관측은 실패했지만 은하수도 보고, 멋진 새벽 여명과 일출도 봤다. 이날과는 다른 상황이지만 천문박명 시간쯤 관측을 마치면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일출을 볼지 그냥 잠자리에 들지 항상 고민이다. 사실 일출의 장엄한 모습이나 골을 넘나드는 운해의 모습은 천문대의 그저 흔한 장면일 뿐이다. 구름이 조금 껴서 해가 잘 보이지 않는 일몰을 보고 감탄하던 학생들이 무덤덤하게 딴짓만 하던 필자를 이상한 듯 바라보던 모습이 떠오른다. 여기선 이렇게 살아!
전영범 <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
1997년 봄, 경북 영천 보현산천문대 서쪽 하늘에 신비로울 정도로 선명하게, 덩그러니 한 달 이상을 떠 있던 헤일밥 혜성의 기억이 생생하기에 실망감은 더 컸다. 그나마 남쪽 하늘에는 C/2020 F8 스완 혜성이 예상보다 밝아지면서 길게 꼬리를 뻗어서 멋진 모습을 보인다. 마치 1996년 봄에 은하수가 밤하늘을 가로지르듯 온 하늘에 푸른 이온 꼬리를 길게 뻗었던 햐쿠타케 혜성의 축소판이었다. 20세기 마지막에 나타난 햐쿠타케 혜성과 헤일밥 혜성은 각각 엄청난 길이의 꼬리와 길이는 짧아도 보기 좋게 갈라진 푸르고 흰 꼬리로 대표되는 혜성이다.
일반적으로 혜성은 푸른 이온 꼬리와 흰 먼지 꼬리를 가지는데, 먼지 꼬리 없이 이온 꼬리만 있는 경우도 많으며 대표적으로 햐쿠타케 혜성을 들 수 있다. 이온 꼬리는 태양풍에 날려서 태양 반대 방향으로 길게 뻗어나가고, 먼지 꼬리는 혜성이 지나는 길에 뿌리면서 뻗어나간다. 그런데 혜성이 태양 가까이 다가가면 먼지 꼬리가 움직이는 방향과 태양 반대 방향으로 뻗는 이온 꼬리의 방향이 달라서 두 꼬리가 점점 더 벌어진다.
보기 드물게 선명한 은하수
혜성에 대한 미련 때문에 스완 혜성을 관측하려고 좌표를 찾아보니 북반구에서는 5월 하순 새벽 여명에 아주 낮게 겨우 볼 수 있었다. 점점 밤이 짧아지면서 새벽이 빨리 다가와 그대로 밤을 꼬박 새웠다. 조금 자고 새벽에 일어나면 좋겠지만 이게 참 잘 안 된다. 야간 관측에 익숙해 오히려 밤을 새우는 게 훨씬 쉽다.
혜성 관측 시간보다 조금 일찍 밖으로 나서니 도시의 불빛 위로 솟은 멋진 은하수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옅은 구름이 도시 불빛을 살짝 가려서 평소보다 훨씬 어둡게 느껴졌다. 그 덕분인지 은하수가 생각보다 선명하고 밝았다. 혜성은 추적이 되는 155㎜ 구경의 굴절망원경으로 관측할 계획이었는데 망원경이 있는 돔으로 가기 전에 발걸음을 멈추고 은하수 사진부터 찍었다. 천문박명까지 10분 정도 여유가 있었고 천문박명 후에도 10여 분을 더 찍을 수 있었다.
천문박명은 해가 일정한 고도 이하로 지평선 또는 수평선 아래 있어서 밤하늘이 충분히 어두운 시점의 기준이 되는 시간이다. 천체 관측은 천문박명을 기준으로 관측 시작과 마지막을 정하는데, 천문박명 후 하늘이 다소 밝아져도 미련을 버리지 못해 20~30분을 더 관측하기도 한다. 하지만 은하수 관측은 어두울수록 좋기 때문에 박명이 시작되면 추가 관측을 거의 포기한다. 혜성 관측도 중요하지만 은하수가 선명한 이런 날이 또 언제 오려나 싶어 기회가 생기면 무조건 찍어둔다. 실제로 이런 날은 연중 한 손으로 꼽을 정도로 귀한 순간이다.
장엄한 일출과 짙은 운해는 흔한 풍경
은하수 사진을 찍고 급하게 돔으로 가서 망원경을 혜성으로 향하니 보현산 능선에 가려버렸다. 작은 망원경이 있는 돔은 정상에서 남쪽으로 조금 아래 있는데 혜성이 생각보다 훨씬 북쪽으로 치우쳐 떴다. 미리 확인을 못한 탓도 있지만 어차피 찍을 수 없는 대상이었다. 깨끗이 포기하고 밖으로 나서니 해뜨기 전의 여명에 차갑고 짙은 푸른 대기가 가슴을 시원하게 해줘 혜성 관측에 실패한 아쉬움은 전혀 생각나지 않았다.
옅은 운해가 서서히 올라와 산봉우리를 둘러싸고 지상의 모습을 감췄다. 구름 사이로 언뜻언뜻 마을과 도시의 불빛이 보였다. 시간이 흐르면서 푸른 여명은 해뜨기 전의 옅은 황금빛 여명으로 서서히 변해갔다. 마침내 눈부신 붉은 해가 나오고 세상은 더 짙은 황금빛으로 뒤덮였다. 하루 중 이 시간이 참 좋다. 저녁노을도 좋지만, 새벽 여명은 차분한 마음이 들게 하다가 급격히 들뜨게 한다. 해가 올라오는 시간이면 세상이 다 밝아지고, 왜 안 올라오지 하면서 포기할 때쯤 눈이 부시게 나타나는 태양 때문에 세상은 다시 어두워진 느낌이 든다.
밤새 기다린 혜성 관측은 실패했지만 은하수도 보고, 멋진 새벽 여명과 일출도 봤다. 이날과는 다른 상황이지만 천문박명 시간쯤 관측을 마치면 한 시간 정도 기다렸다가 일출을 볼지 그냥 잠자리에 들지 항상 고민이다. 사실 일출의 장엄한 모습이나 골을 넘나드는 운해의 모습은 천문대의 그저 흔한 장면일 뿐이다. 구름이 조금 껴서 해가 잘 보이지 않는 일몰을 보고 감탄하던 학생들이 무덤덤하게 딴짓만 하던 필자를 이상한 듯 바라보던 모습이 떠오른다. 여기선 이렇게 살아!
전영범 < 한국천문연구원 책임연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