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영국 경제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전 세계 주요국가 중 가장 낮은 -11.5%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됐다. 코로나19로 유럽에서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하는 등 큰 피해를 입은데다 재확산을 우려해 봉쇄조치 완화도 더디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올 연말 노딜 브렉시트(영국의 아무런 합의없는 유럽연합 탈퇴)까지 현실화되면 영국 경제가 더욱 추락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뒤늦은 봉쇄로 피해 키워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10일(현지시간) 경제전망을 통해 올해 영국의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전년 대비 -11.5%로 제시했다. OECD 37개 회원국 중 가장 낮다. 이어 △프랑스(-11.4%) △이탈리아(-11.3%) △스페인(-11.1%) △체코(-9.6%) △포르투갈(-9.4%) △벨기에(-8.9%) 등의 순이었다. 코로나19의 2차 확산이 없는 경우(single-hit)를 전제로 한 것이다.

영국은행(BOE)에 따르면 -11.5%는 1709년 이래 311년만의 최악의 감소폭이다. OECD는 2차 확산이 발생할 경우(double-hit) 영국의 GDP 증가율은 -14.0%까지 떨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이 경우 스페인과 프랑스가 각각 -14.4%와 -14.1%로 영국보다 나쁠 것으로 예상됐다.
자료=BBC
자료=BBC
일간 가디언 등 현지 언론은 영국 정부의 봉쇄조치 시행이 다른 국가에 비해 늦었던 것이 코로나19 피해를 키우고 경제회복을 늦추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정부는 지난 3월 23일부터 슈퍼마켓 및 약국 등 필수 영업장을 제외한 모든 가게의 영업을 중단시키는 등 봉쇄조치를 시작했다. 스페인과 이탈리아 등 다른 유럽 국가에 비해 일주일 가량 늦었다. 영국 정부는 사태 초기 인구 중 대략 60%가 면역을 얻으면 바이러스 확산을 막을 수 있다는 ‘집단면역’ 논리를 폈다. 하루 사망자가 수백명으로 불어나자 뒤늦게 방침을 바꿨다.

보건당국에 따르면 영국의 이날 기준 코로나19 누적 사망자는 4만1128명으로, 전날 대비 245명 늘었다. 전 세계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수치다. 누적 확진자는 29만143명으로, 전날 대비 1003명 증가했다. 확진자 기준으로는 미국, 브라질, 러시아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영국의 누적 사망자와 확진자 모두 유럽에서 가장 많다.

정부 전직 자문위원인 닐 퍼거슨 임피리얼칼리지 교수는 이날 하원에 출석해 “봉쇄조치를 일주일만 빨리 도입했다면 사망자 수를 적어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봉쇄조치가 도입되기 3~4일 전부터 영국 내에서 발병 규모가 매일 두 배씩 증가하고 있었다는 것이 퍼거슨 교수의 설명이다. 이에 대해 보리스 존슨 총리(사진)는 “그런 판단을 하기엔 시기상조”라며 “아직까지 전염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갈 길이 멀다”고 즉답을 피했다.

영국 정부는 오는 15일부터 백화점과 상점 등 비(非)필수 영업장의 영업 재개를 허용할 계획이다. 지난달 말부터 봉쇄조치가 완화된 대부분의 유럽 국가에 비해 2~3주 가량 늦었다. 지금도 신규 확진자가 매일 1000명 이상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술집인 펍(pub)과 음식점, 미용실 등 일부 업종의 영업은 이르면 내달 4일부터 재개될 전망이다. 제1야당인 노동당은 “정부가 사태 초기 코로나19 피해를 키운 데 이어 출구전략 추진과정에서도 혼란을 거듭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딜 브렉시트 겹치면 최악 시나리오

OECD는 영국을 비롯한 세계 경제가 올 2분기 저점을 찍은 이후 2021년까지 완만하게 회복할 것으로 내다봤다. 문제는 영국이 올 연말 브렉시트를 앞두고 있다는 점이다. OECD가 이날 내놓은 경제성장률 예측치는 노딜 브렉시트에 따른 영향은 감안하지 않은 것이다.

OECD는 “영국이 올 연말까지 유럽연합(EU)과 무역협정을 체결하지 못한다면 경제성장률에 매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와 피치도 노딜 브렉시트가 영국 경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영국 정부와 EU는 이달 초 화상회의를 통해 4차 미래관계 협상을 진행했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올 연말까지 예정된 전환기간의 연장여부를 결정하는 마감시한인 이달 30일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열린 회의였다.

영국은 지난 1월31일 EU 집행부 및 산하기구에서 모두 탈퇴했다. 이른바 정치·외교적 브렉시트다. 경제적 브렉시트는 연말 이뤄진다. 영국은 올 12월 31일까지 EU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에 잔류한다. 이 때까지가 전환(준비)기간이다. 영국과 EU는 전환기간 동안 영국과 EU는 FTA 등 새로운 미래협정을 맺어야 한다. 전환기간은 양측이 합의하면 한 차례에 한해 최장 2년 연장할 수 있다.

양측이 전환기간 연장에 합의하지 못하면 영국은 올 연말 EU 관세동맹과 단일시장을 탈퇴하게 된다. 전환기간 연장에 합의하지 못하더라도 올 연말까지 남은 기간 동안 미래협정을 체결하기만 한다면 노딜 브렉시트는 막을 수 있다. 하지만 농·어업, 금융 등 다양한 무역현안뿐 아니라 합의해야 하는 안보 관련 사안이 산적해 있다. 올 연말까지 남은 6개월 간 합의를 이뤄내는 건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 때문에 EU는 전환기간을 연장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존슨 총리는 전환기간 연장은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올 연말까지로 예정된 전환기간이 연장된다는 건 브렉시트가 또 다시 연기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이유에서다.

연말까지 FTA를 타결 짓지 않은 채 영국이 EU 관세동맹에서 탈퇴하면 양측은 세계무역기구(WTO) 체제를 적용받는다. 영국은 EU산 물품을 수입할 때 WTO 최혜국대우(MFN) 세율을 적용한다. 예를 들어 독일에서 생산한 자동차를 영국에 수출할 때 지금은 무관세가 가능하지만 내년 1월부터는 10% 관세가 부과된다. 관세 부담에 따라 교역량이 급감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달 말 예정된 존슨 총리와 EU 행정부 수반인 우르줄라 폰데어라이엔 집행위원장의 만남이 노딜 브렉시트라는 파국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수단으로 꼽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양측 모두 이달 말 열리는 최고위급 회담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지적했다.

런던=강경민 특파원 kkm1026@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