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이에서 남동쪽으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탕콩현대차 닌빈 조립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차체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하노이에서 남동쪽으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탕콩현대차 닌빈 조립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차체 조립 작업을 하고 있다.

타잉꽁(Thành Công) 그룹은 연 매출 10억 달러를 올리는 베트남 굴지의 기업이다. 약 20년 전 중국산 트럭을 수입해 팔던 이 회사를 ‘재벌’의 대열에 올려놓은 건 자동차다. 전국에 판매망을 보유한 타잉꽁은 2011년 현대자동차와 합작해 하노이에서 남동쪽으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닌빈(Ninh Bình)성에 자동차 조립 공장을 만들었다.

수입 자동차를 규제하고, 국내 조립생산을 장려하는 정부 정책까지 더해지면서 2018년을 기점으로 두 회사의 시너지 효과가 폭발했다. 타잉꽁현대차는 2018년에만 6만3526대를 팔았다. 그 해 베트남 전체 자동차 판매량의 약 18%에 달했다. 작년엔 7만9568대를 판매해 도요타와 치열한 경합을 벌였다. 전년 대비 25% 증가한 수치다. 올 1분기엔 ‘베트남 1위’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타잉꽁현대차의 스토리는 1970년대 현대자동차와 일본 미쓰비시가 맺었던 관계를 떠올리게 한다. 현대차는 미쓰비시를 ‘기술 스승’으로 삼아 결국 독자 엔진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기술을 넘겨주지 않으려는 미쓰비시와 청출어람의 길로 가려했던 현대차가 벌였던 당시의 치열한 암투는 한일 양국의 기업사(史)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꼽을 명장면이었다.

현대차는 과거 자신이 그랬듯이 타잉꽁과 사투를 벌여야할까. 현대차나 삼성 등 우리 기업의 경험에 비춰보면 탕콩에게 주어진 ‘올바른’ 길은 두 가지다. 현대차의 기술을 무슨 수를 쓰던 베껴서 독자적인 모델을 만드는 게 첫 번째다. 이미 10년 가까이 조립 생산을 해봤고, 양사는 제2 공장을 지어 더 많은 현대차 모델을 생산할 예정이니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경영학의 관점에서 이게 상수(上手)다.

완성차 업체로의 전환이 너무 위험하고, 불가능하다는 일이라는 판단이 든다면 자동차 부품쪽으로 눈을 돌릴만하다. 현대차만 해도 도요타 등 일본차와 경쟁하기 위해 현지에서 가성비 좋은 부품을 조달받기를 원하고 있다. 현재 베트남 내엔 마땅한 자동차 부품업체가 없다. 잘만 한다면 현대차 외에 베트남에서 조립공장을 운영 중인 글로벌 메이커들이 주요 고객사가 될 수 있다. 이건 중수(中手)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타잉꽁 그룹은 의외의 선택을 했다. 자동차 조립판매로 질주를 거듭하며 벌어들인 돈을 건설부동산업에 투자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미 호찌민시에 3개의 아파트 단지를 건설했고, 이달 말엔 다낭시에서 남쪽으로 40Km쯤 떨어져 있는 꽝남(Quảng Nam)성 디엔 응옥(Điện Ngọc) 해변에 신라호텔 브랜드를 단 9층짜리 고급 호텔을 개장할 예정이다. 호텔 인근에 조성 중인 럭셔리 리조트도 37동에 달한다. 인프라 및 공장 건설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기 위해 타잉꽁E&C라는 건설업체도 신설했다. 현대건설과 전략적 제휴도 맺었다.

타잉꽁의 선택이 시사하는 바는 여러 가지다. 베트남이 한국이나 중국의 길을 갈 수 있을 것인가에 관한 의문이 제기될 수밖에 없다. 한국은 치열한 추격자 전략을 통해 짧은 시간 안에 제조업 역량을 축적했고, 이를 통해 고소득 국가로 도약했다. 중국은 강탈에 가까운 기술 탈취와 시간 축적의 한계를 뛰어넘는 공간과 인구의 힘을 빌어 단숨에 G2의 지위에 올랐다. 타잉꽁의 결정은 국가적인 차원에서 봤을 때 하수(下手)임이 분명하다.

외부의 시각에 비춰진 타잉꽁의 행위는 비합리적으로 보일 수 있겠으나, 프리즘을 바꾸면 얘기가 달라질 수 있다. 베트남의 주요 기업들 대부분이 건설부동산으로 큰 돈을 벌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연 매출 약 40억 달러로 재계 1위인 빈그룹만 해도 리조트와 럭셔리 아파트 건설로 부를 거머줬다. 지난해 빈그룹이 계열사인 빈패스트를 통해 자동차 산업에 뛰어들고, 스마트폰과 TV까지 만들겠다고 선언했지만, 빈그룹은 여전히 부동산 재벌로 인식되고 있다.

일례로 전문가들은 빈패스트의 하이퐁 자동차 공장도 부동산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지적한다. 하이퐁 정부의 적극적인 후원 아래 바다를 메워 조성한 해안가 공단은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데 현재 이곳엔 빈패스트 공장 하나만 달랑 들어서 있다. 빈그룹이 BMW의 구형 모델을 빈패스트 브랜드로 둔갑시켜 판매하는데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향후 공단 분양을 통해 떼돈을 벌 것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빈그룹이 올 초 신규 사업으로 공단 조성 및 분양 사업을 추가한 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기업들의 부동산 쏠림 현상은 베트남 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부동산에서 나오는 부(富)는 경제 성장의 결과물일 뿐, 성장을 위한 마중물이 아니라는 점에서다. 상품과 서비스 등 재화를 만들어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한 땅과 건물은 사상누각이나 마찬가지다. 공장 부지의 가격이 오른 건 삼성전자 같은 해외 기업들이 베트남의 저렴한 노동력을 활용하기 위해 앞다퉈 들어왔기에 가능했다. 리조트와 럭셔리 아파트의 가격 상승 역시 해외 관광객과 비즈니스맨들이 베트남으로 몰려온 덕분이다.

비그라세라(Viglacera)는 박닌성에 대규모 산업공단을 조성해 삼성전자 휴대폰 공장을 입주시키면서 베트남을 대표하는 공단 사업자이자 건설업체로 성장했지만, 비그라세라 계열사 중에 산업 공단에 들어갈 만한 제조업이 단 하나도 없다는 건 베트남 경제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코로나 신종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베트남의 아킬레스건을 더욱 도드라지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베트남 부동산을 지탱하는 핵심 중 하나는 관광 산업이다. 베트남 GDP(국내총생산)의 약 6%가 관광업에서 나온다. 코로나19는 베트남의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무용지물로 만들었다.

빈 그룹의 ‘캐시 카우’ 역할을 해 온 빈펄리조트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다. 계열사인 빈홈(Vin Home)이 새로 지은 럭셔리 아파트들은 미분양 사태에 처했다. 빈홈 아파트를 여러 채 보유한 호찌민과 하노이의 부유층들이 자산 가격 상승과 고가의 월세까지 더해 이중으로 돈을 벌던 호시절은 옛 추억이 돼 버렸다. 세입자가 끊기면서 아파트 가격은 바닥을 모른 채 추락하고 있다. 호찌민 고가 아파트의 대표 격인 빈컴 랜드마크81만 해도 매수세가 실종된 데다 전단지에 나와 있는 호가를 믿는 이들은 거의 없다. 빈 그룹이 자동차 등 제조업에 조(兆) 단위 투자를 했고, 앞으로도 더 많은 투자를 해야 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최근의 상황은 전례없는 위기라고 할 수 있다.
호찌민시를 관통하는 고가 도로 넘어 빈그룹이 지은 랜드마크81이 보인다. 사회적 격리가 해제됐음에도 관광객이 사라진 호찌민의 도심은 여전히 한산하다.
호찌민시를 관통하는 고가 도로 넘어 빈그룹이 지은 랜드마크81이 보인다. 사회적 격리가 해제됐음에도 관광객이 사라진 호찌민의 도심은 여전히 한산하다.
부동산 및 레저 전문 그룹인 FLC의 올해 손실액은 84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의 전망치인데 실제로는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하롱(Hạ Long), 섬선(Sầm Sơn), 꽝빈(Quảng Bình), 꾸이년(Qui Nhơn) 등 해안가에 고급 리조트를 지으면서 급성장한 FLC는 코로나19 창궐 직전에 뱀부 에어웨이라는 저비용 항공사를 출범시켰다. 베트남 내 국내 여행이 재개되면서 숨통이 트이긴 했지만, 공항 이용료도 제때 못 낼 정도로 재정난에 처한 것으로 알려졌다.

썬 그룹도 위중한 상황에 놓여 있기는 마찬가지다. 썬 그룹은 다낭 바나힐(Bana Hill), 사파(Sapa), 푸꾸억(Phú Quốc) 등 베트남의 천혜의 자연에 썬월드(Sun World)를 건설해 베트남 관광 산업을 업그레이드 시켰다고 평가받는 기업이다. 썬 그룹이 만든 바나힐의 케이블카와 레저 시설 덕분에 다낭은 하롱을 보유한 꽝닌(Quảng Ninh)성보다 관광으로 더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었다. 2015년에 꽝닌을 방문한 관광객은 770만명에 달했으나 관광 수입은 2억8300만 달러에 그쳤다. 같은 해 다낭은 460만의 관광객이 다녀가 5억6200만 달러를 썼다. 코로나19 이후 썬월드의 케이블카들은 언제 다시 가동할 지도 가늠하지 못한 채 허공에 멈춰서 있다.

부동산 시장과 관광 산업의 붕괴가 위험한 이유는 그 파장이 금융으로 번질 수 있어서다. 다른 동남아시아 국가들에 비해 베트남의 은행들은 상대적으로 건전성을 유지하고 있는 편이다. 2010년 이후 오랜 노력 끝에 부실 은행을 정리했고, 주요 은행들의 부실채권 비율도 1%대로 떨어졌다. 부동산과 레저로 쉽게 돈을 번 베트남의 간판 기업들은 은행 대출을 이용하기도 쉬웠다. 은행들은 거의 10%에 육박하는 예대 마진을 누리며 시쳇말로 떼돈을 벌었다. 코로나19는 과거의 선순환이 지속될 수 있을 지에 심각한 의문을 던지고 있다.

이 같은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베트남 경제가 2009년 금융위기 때처럼 붕괴할 가능성은 낮다. 그때나 지금이나 여전히 해외 자본시장과의 연계가 매우 낮은 데다 ‘차이나+원’을 고려하는 글로벌 기업들이 베트남으로 공장을 이전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베트남 대기업들은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비밀 투자자’들이 있기 때문에 언제든 자금 공급이 이뤄질 수 있다는 얘기도 있다. 중요한 건 베트남의 발전 속도다. 아킬레스건을 공격당한 베트남은 당분간 절름발이로 지내야할 수도 있다. ‘리틀 타이거’로 평가받던 베트남이 호랑이로 성장할 수 있을 지에 관한 물음표는 여전히 유효하다.

박동휘 하노이 특파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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