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증권시장의 시가총액 상위 10개 기업의 변천사는 한국 경제를 지탱하는 주력산업의 흥망성쇠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1995년 이후 한국전력공사는 국내 증시에서 시가총액 기준 부동의 1위였다. 당시 시총 상위 10개 기업이 전체 상장사 시총 절반을 차지할 만큼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이를 ‘국민기업’ 한전이 이끌었다. 한전 이외에 포항종합제철, 대우중공업, 한국이동통신, 유공, 조흥은행 등 지금은 사명이 바뀌거나 역사 속으로 사라진 곳들이 대한민국을 대표했다.
1999년 말 정보기술(IT) 기업에 대한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삼성전자가 한전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산업 주도권이 바뀌는 시기였다. 당시 사상 최고가를 기록한 삼성전자는 시총 28조원을 넘어섰다. 한전과의 격차를 3000억원가량 벌리며 아슬아슬한 1위에 올랐다. 이후 격차는 점차 벌어졌다. IT 기업이 급부상하면서 1995년 당시 시총 3, 4위였던 포항제철, 대우중공업은 2000년대 들어 순위권에서 서서히 밀려났다. SK텔레콤, 한국통신공사(현 KT), 삼성전기 등이 새롭게 떠올랐다.

20년이 흐른 지금 또다시 판이 바뀌고 있다. 2000년과 비교해 시총 상위 10위 안에 여전히 이름을 올리고 있는 곳은 삼성전자와 현대차뿐이다. 여전히 국내 1위 자리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삼성전자와 달리 현대차는 신흥 주자 카카오 등에 밀려 10위 자리도 위태로운 상황이다. 삼성전자 시총은 29조원에서 320조원으로 급증했다.

산업 생태계가 급변하면서 불과 5년 전과도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2015년 시총 10위 기업 중 버텨내고 있는 곳은 당시 1~3위였던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현대차뿐이다. 한전은 4위에서 21위, 삼성SDS는 5위에서 20위로 밀려났다. 아모레퍼시픽삼성생명도 각각 5년 새 7, 8위에서 24위, 28위로 추락했다. 대신 삼성바이오로직스, 네이버, 셀트리온, 카카오 등이 자리를 채웠다. 김지산 키움증권 리서치센터장은 “2000년대 들어 IT붐이 일면서 시총 순위에 급격한 변화가 있었다”며 “2020년에도 새로운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재원 기자 wonderf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