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세대 차이
나의 아버님은 1920년대에 태어나셨다. 나는 1950년대, 나의 아들은 1980년대생으로, 각기 ‘생년’의 차이는 30년가량 나는 셈이다. 아버님이 작고하실 때까지 삼대가 함께 살면서 종종 의문을 품은 점이 있다. 아버님과 나 사이, 나와 내 아들 사이에서 어느 쪽이 더 ‘세대 차이’가 날까?

적어도 내 아들이 어린 시절에 무조건 나를 따라다닐 무렵까지는 별생각 없이 나와 내 아들 사이가 더 가깝게 느껴졌다. 장차 어떤 형태로든 세대 차이가 있으리라고 가늠하지 못했다. 아버님은 전통적인 가부장적 가치관을 갖고 집안 대소사를 관장하셨고, 자녀 교육에 철두철미한 원칙을 세워놓고 계셨다. 그 가운데 몇 가지는 아버님처럼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적도 있었다. 가령 식사 시간에는 무조건 온 식구가 식탁에 모여야 한다든지, 사내가 부엌에 드나들면 사내답지 못하다는 역할 편향적인 말씀 등.

일제 강점기 농촌에서 태어난 아버님은 한창 젊은 시절 해방과 6·25전쟁이라는 극심한 시대의 변화를 체험하셨다. 반대로 나는 6·25전쟁 발발 직후 서울에서 출생해 비교적 평화로운 시절을 지냈다. 내 아들도 같은 맥락에서 더욱 진보적인 감각을 지니며 생활하는 정도라고 짐작했다.

그러나 아들이 대학에 들어갈 무렵부터는 그건 나의 착각일지 모른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세상 돌아가는 일에 대해 나는 아버님과 비슷하게 느끼고 원활하게 대화할 수 있는 점이 여러 가지 있었다. 그러나 아들은 기존의 관습이나 법리에 얽매이지 않고 좀 더 다른 관점에서 사회와 인간관계를 바라보고 있다는 점을 알아차릴 기회가 종종 있었다. 가령 국가와 국민, 선생님과 제자의 관계, 그리고 미래의 부부와 자식 간 관계에 대해 대화하다 보면 내 아들이 나와는 다른 세상의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런 과정들을 거치면서 세대의 변화가 가속화하고 있다는 점이 나에게도 점점 분명히 다가왔다. 아버님, 나, 아들이 시대에 따라 다른 환경, 다른 시대정신의 맥락 속에서 살아온 만큼 다른 생각을 하는 건 당연한 것이리라.

특히 좀 더 많은 사람이 물질적 풍요를 누릴 수 있는 방향으로 지구촌의 여건이 대폭 개선을 거듭하고 있고,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인간다운 생활을 누리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되고 있다는 점이 그 반대급부의 이면을 차치한다면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가을이면 자신의 가정을 이루게 될 아들도 나와 같은 의문을 품을 날이 곧 오리라는 작은 바람을 담아 나만의 구호를 자그마하게 외쳐본다. “아들아, 세대 차이가 느껴져도 좋다. 부디 건강하게, 행복한 자신의 삶을 살아가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