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배터리, 인터넷, 게임업종의 대형주 ‘빅7’의 질주가 이어지고 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장중 시가총액 50조원을 넘어섰고 셀트리온도 연일 사상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꿈의 주식 테슬라와 함께 움직이는 삼성SDI LG화학도 신고가 대열에 합류했다. 인터넷 플랫폼기업 대표주자인 네이버 카카오 엔씨소프트의 주가도 강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급변동 장세에서 빅7(BBIG)은 전통산업 강자들의 순위를 끌어내리며 주식시장 주류로 자리잡고 있다는 평가다.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삼성바이오로직스 셀트리온 LG화학 삼성SDI 네이버 카카오 엔씨소프트 등 빅7의 시가총액 합계는 227조원을 넘어섰다. 주가가 저점을 찍은 지난 3월 19일과 비교하면 100조원 급증했다. 유가증권시장 시총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5.5%에 이르렀다. 1년 전과 비교하면 이들의 약진은 더 뚜렷하다. 작년 6월 11일 시가총액 10위 안에 있던 신한지주 포스코 SK텔레콤 등을 모두 10위권 밖으로 밀어냈다. 4개 종목은 빅7 중 유일하게 10위권 밖인 엔씨소프트에도 뒤진 상태다.

빅7이 약진하는 동안 전통업종 대표기업 10곳의 시총은 급감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가 상장한 직후인 2017년 초와 비교해봤다. 당시 빅7 시총 비중은 6.7%였고 신한지주 KB금융지주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은행), 현대자동차 현대모비스(완성차), 롯데쇼핑 이마트(유통), 삼성물산(건설), 한국전력(인프라) 등 10개 기업은 14.2%를 차지했다. 3년여가 지난 뒤 빅7은 15%대로 뛰었고 전통산업 10개 종목 비중은 9.3%로 쪼그라들었다. 네이버는 유통업체, 카카오는 은행의 시총 일부를 빨아들인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현대모비스 등의 감소한 시총 일부는 LG화학 등으로 돌아갔다고 볼 수 있다.
'BBIG'의 질주…카카오는 금융업, 네이버는 유통업 시총 잠식

지난 9일(현지시간) 수소트럭 스타트업 니콜라는 상장된 지 4일 만에 116년 역사의 포드 자동차 시가총액을 앞질렀다. 니콜라는 아직 차를 출시하지도 않은 상태다. 50만 대 생산이 목표인 테슬라의 주가는 1000달러를 넘어섰다. 시총은 1500만 대를 생산하는 GM과 포드의 시총을 합친 것의 두 배에 달한다.

국내에서도 마찬가지다. 작년 순손실 3000억원을 기록한 카카오 시총은 23조원으로 순이익 3조원이 넘는 신한지주(16조원)보다 43%가량 많다. LG화학은 현대차를 앞서고, 삼성바이오와 셀트리온 시총 합계는 전통 제약주들을 모두 합친 것보다 많다. 시장이 급변하면 새로운 주도주가 등장한다. 바이오 배터리 인터넷 게임업종의 대표주 빅7은 무형의 자산과 새로운 흐름에 올라타며 주류로 올라서고 있다.
시장 먹어치우는 플랫폼

코로나19 확산은 3대 업종 대표 기업이 성장하기에는 딱 좋은 환경이었다. 건강과 편리함(바이오 언택트), 환경(전기차)에 대해 소비자들이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시장에서 전통기업들의 가치(시총)를 잠식하며 빠르게 몸집을 부풀리고 있다.

첫 수혜자는 인터넷 게임업종의 플랫폼 기업들이었다. 이들은 강력한 플랫폼을 기반으로 전통산업의 영역을 빠르게 파고들고 있다. 지난 8일 출시된 ‘네이버 통장’을 보면 알 수 있다. 이 상품은 네이버파이낸셜과 미래에셋대우가 함께 만든 종합자산관리계좌(CMA)다. 통로만 네이버가 제공할 뿐 결국 알맹이는 미래에셋대우의 계좌다. 하지만 껍질에선 미래에셋대우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주식 시장은 이 변화를 숫자로 보여준다. 네이버와 카카오의 시총 합은 2년 전 39조원이었다. 당시 코스피지수는 2300선으로 지금보다 높았다. 두 회사의 시총은 최근 63조원으로 불어났다. 코스피지수는 아직 2200의 벽을 깨지 못한 상태다. 지수는 떨어졌는데 플랫폼 기업의 몸값은 24조원이 늘었다. 이들의 시총 변화에 대해 안정환 BNK자산운용 총괄 최고투자책임자(CIO)는 “카카오가 전통 은행업의 시총까지 잠식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기간 신한지주 KB금융 하나금융지주 우리금융지주 등 4대 금융지주의 시총은 23조원이 줄었다.

플랫폼 기업 네이버 카카오는 롯데, 신세계 등 기존 유통업체들로부터도 시장을 빼앗고 있다. 지난해 국내에서 가장 많은 결제가 발생한 온라인 서비스는 네이버(21조원)였다. 올해 1분기 네이버를 통한 결제액은 약 6조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2% 증가했다. 2년 전 16조원이었던 롯데쇼핑과 이마트 시총 합산은 6조원으로 급감했다.

변화하는 제조업 지형

제조업에서도 배터리와 바이오가 새로운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과거 투자자들은 “유가가 떨어지면 전기차 시대도 미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유가가 마이너스를 기록했을 때도 테슬라 주가는 계속 올랐다.

한국은 완성차 1등 기업 자리를 차지하지 못했지만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는 글로벌 1위(LG화학)에 올랐다. 전기차 시대를 기다리며 대대적인 투자를 한 결과다. 테슬라가 쏘아올린 전기차 물결에 올라탄 LG화학과 삼성SDI 시총은 2년 만에 31조원에서 58조원으로 늘었다. 2년 전 현대차 시총은 LG화학과 삼성SDI 시총을 합친 것보다 많은 35조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24조원으로 줄었다.

바이오는 한국 제조업의 미래를 책임질 듯한 기세로 성장하고 있다. 글로벌 제약사의 많은 특허가 만료되면 기회가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바이오시밀러 시장에 뛰어든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이 대표주자다.

이들은 글로벌 투자자들의 시선까지 사로잡았다. 정성한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알파운용센터장은 “한국의 바이오시밀러 기업들이 성과를 내기 시작하면서 글로벌 제약사들의 시총까지 빨아들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화이자, 노바틱스 등 글로벌 대표 제약사의 12개월 선행 주가수익비율(PER)은 각각 13배, 15배 수준이다. 반면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은 각각 100배와 50배가 넘는다. 훨씬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홍재근 대신증권 미래산업팀장은 “현재 시장의 영토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실적이 보장된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전통 제조기업이지만, 미래의 영토를 차지하는 기업은 무형자산을 가진 새로운 기업들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재연/박재원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