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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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싶어도 살 수가 없어요. 매물이 나와야 말이죠.”

중견그룹 회장 P씨. 그는 올초 회사 재무담당 임원에게 경기 여주의 한 고급 골프장 회원권 매입을 지시했다. 회원과 동반해야만 입장할 수 있는 ‘프리빌리지드(privileged) 골프장’으로 이름 높은 곳. 그러나 6개월이 다 돼가는 지금도 감감무소식이다. 매물이 자취를 감췄기 때문이다. 그는 “사겠다는 사람 수십 명이 줄을 섰는데, 팔겠다는 이가 한 명도 없다”며 “웃돈도 통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했다.

골프 회원권 시장에 불이 붙었다. 저금리로 시중에 풀린 뭉칫돈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갈 곳을 잃은 레저 수요가 골프장으로 한꺼번에 쏠린 게 불쏘시개가 됐다. 한 달 새 1억원 오른 회원권, 초기 발행가의 최대 세 배까지 호가가 폭등한 무기명 회원권도 등장했다.
골프 회원권 '코로나發 특수'…레이크사이드 2억 급등
28억원 호가 ‘황제 회원권’ 등장

회원권 시장은 변동성이 크지 않은 게 보통이다. 1년 내내 가격 변동이 없는 종목이 허다하다. 하지만 올 들어서는 지역, 가격대를 가리지 않고 뛰는 ‘묻지마’ 강세장을 나타내고 있다. 국내 최대 회원권 거래소인 에이스회원권에선 등록된 173개 종목 중 60%인 104개 종목의 6월 거래가가 전달보다 올랐다. 이현균 에이스회원권거래소 애널리스트(본부장)는 “단기간 많은 종목이 한꺼번에 오른 것은 거의 10여 년 만”이라고 말했다.

상승률로 따지면 레이크사이드(용인)의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올초 4억1500만원에 거래되던 게 이달 6억5000만원에 팔렸다. 차익이 57%나 된다. 비전힐스(남양주)도 같은 기간 4억7000만원에서 6억5000만원으로 38% 뛰었고, 크리스탈밸리CC(가평)는 올초(2억원)보다 50% 급등한 3억원에 거래됐다. 남부CC(용인)는 8억2000만원에서 9억원(10% 상승)으로 오르며 10억원대 진입을 눈앞에 뒀다. 회원 수가 많지 않고 접근성이 좋으며, 코스 상태가 A급인 ‘대장주 회원권’이란 게 공통점이다.

비회원도 싸게, 눈치 보지 않고 쓸 수 있는 무기명 회원권은 품귀 현상을 빚고 있다. ‘황제 회원권’으로 불리는 태광CC(용인)의 무기명 회원권 시세는 현재 28억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작년 말보다 5억원이 뛰었다. 이 회원권의 최초 분양가는 9억5000만원이었다. 최초 분양가가 6억원이던 발리오스CC(화성) VVIP 회원권은 현재 12억원 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동아회원권거래소 관계자는 “인기 상품인 무기명 회원권은 신규 발행이 끊긴 데다, 회사가 자금이 급하지 않는 한 매물을 내놓을 이유가 별로 없어 호가 폭등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코로나 뚫어낸 회원권의 희소가치

업계에선 수급 불균형을 ‘회원권 르네상스’의 또 다른 배경으로 꼽고 있다. 골프 수요는 늘어난 반면 회원제 골프장 수는 급감하다 보니 값이 치솟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다.

최근 10년간 골프장 구조조정이 지속되면서 60곳 안팎의 회원제 골프장이 문을 닫거나 대중제(퍼블릭)로 전환했다. 4만여 개의 부실 회원권이 사라지면서 비교적 우량한 회원권만 남게 됐다. 여기에 코로나19 속에서도 ‘골프장은 상대적 청정지대’라는 이미지가 가격 상승을 부추겼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달라진 회원권 시장 분위기는 회원권 종합지수에서도 드러난다. 에이스회원권이 집계하는 ‘에이스피(ACEPI)’는 12일 전날보다 1.46% 오른 921.5포인트를 기록했다. 2011년 11월 900선을 내준 뒤 9년 만에 밟은 900 고지다. 에이스피는 2005년 1월 1일 기준(1000포인트)으로 시장 현황을 반영해 매일 호가 등락을 표시하는 시세 지수다. 한국을 대표하는 116개 골프장의 173개 세부 회원권 시세를 가중평균해 도출한다.

이현균 본부장은 “수급 불균형을 해소할 마땅한 방법이 없어 연내 1000포인트를 무난히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1000포인트는 회원권 업계에서 “앞으로 영원히 보지 못할 수치가 될 수도 있다”고 봤던 고지다.

“당분간 강세장 지속”

전문가들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도 회원권 시장 호황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사용편익에다 대체투자 가치까지 갖추고 있어서다. 골프의 대중화 바람 속에서 ‘프라이빗’한 공간을 선호하는 골퍼가 늘어나고 있다. 회원 수가 적고 비회원 출입이 많지 않은 최고급 회원제 골프장 회원권의 호가 상승이 두드러진 이유다. 필요할 경우 라커룸이나 식당, 사우나 등을 일시적으로 폐쇄해 언택트(비대면) 스포츠 문화로 어렵지 않게 전환할 수 있다는 점도 회원권의 가치를 높이는 또 다른 요소로 꼽힌다. 주머니 두둑한 베이비부머들이 은퇴를 했거나 앞두고 있다는 점도 회원권 시장엔 호재다.

이 본부장은 “금융위기, 코로나 사태 등 다양한 악재 속에서도 생존한 골프장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는 안정성을 증명해 보이고 있다”며 “가치가 더 오를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