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5 20년] 북핵에 갇힌 남북관계…20년째 도돌이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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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5공동선언으로 새 지평 기대에도 南 정권교체·北 도발 등으로 부침 거듭
문재인 정부서도 '북핵 진전 없자 남북관계도 한계' 실감…반전 쉽지 않아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한반도 화해와 평화의 새 시대를 선언했던 6·15 남북정상선언이 채택 20년을 맞았다.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뒤 평양 순안공항을 떠나면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포옹하고 "남과 북은 지금까지의 대결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밝힐 때만 해도 남북 화해 시대가 성큼 다가올 것 같았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이후 남북관계는 나아가는 듯하다가도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오는, 마치 도돌이표에 갇힌 형국이 계속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2018년에만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퍼졌지만, 6·15공동선언 20주년을 앞둔 지금의 남북관계는 '6·15 이전으로의 회귀'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북한은 대북 전단 살포 문제를 계기로 남북 연락 채널을 모두 끊고, 남한을 '적'으로 규정하며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북한 선전매체가 정부의 6·15 공동선언 20주년 행사를 '철면피한 광대극'이라고 한 비난은 지금의 남북관계 현실을 대변해준다.
지난 20년간 남북관계의 부침은 남한 정권교체에 따른 대북정책 변화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핵심은 북한의 지속적인 핵 개발에 있다.
남북은 경제협력을 통한 민족 경제의 균형 발전 등이 적시된 '6·15 정상선언' 채택 이후 각 분야에서 전례 없이 활발하게 교류했다.
금강산관광이 본격화하고 개성공단이 조성되면서 남북이 더는 과거의 대립 관계로 돌아가지는 않으리라는 기대감이 퍼졌다.
이런 분위기를 이어 2007년 10월에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사이에 2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돼 '10·4선언'이 도출됐다.
2006년 북한의 첫 핵실험이 진행되는 등 위기도 있었지만, 남북관계에 급브레이크를 걸 정도는 아니었다.
2007년 북핵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의 첫 단계 이행계획인 '2·13 합의'가 도출되는 등 성과를 거둔 것도 도움이 됐다. 그러나 2008년 들어선 보수 성향의 이명박 정부가 '비핵·개방·3천'으로 대변되는 '선(先) 핵 폐기' 원칙을 고수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2008년 7월 박왕자 씨 피살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이 중단되자 북한이 금강산 부동산 동결·몰수 등으로 맞서는 등 남북관계는 빠르게 얼어붙어 갔다.
북한이 이듬해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 등 고강도 도발을 이어가고,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이에 대응해 북한과의 인적·물적 교류를 끊는 5·24 조치까지 시행되면서 경색 국면은 더욱 확고해졌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의 북한 붕괴론에 입각한 대북 압박정책과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미사일 도발이 맞물리면서 남북관계는 최악의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인 개성공단마저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2016년 2월 전면 중단을 선언하면서 문을 닫았다.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는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인 화해 손길에 북한이 이듬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로 호응하면서 급속도로 풀렸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단둘이 만나 대화하는 모습, 문 대통령이 그해 9월 평양 5·1 경기장에서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 등은 달라진 남북관계에 대한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2018년 6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사되면서 마침내 냉전의 마지막 공간인 한반도에도 평화가 깃들 것이라는 흥분이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이에 따라 미국이 제공할 상응 조치를 둘러싼 실무협상은 지지부진했고,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이 제재 완화에 대한 이견으로 '노딜'로 끝나자 협상은 동력을 잃었다. 북핵 문제에서 진전이 없자 남북관계도 벽에 부닥쳤다.
문재인 정부는 철도·도로 연결과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등의 청사진을 그렸지만, 대북제재로 한 발짝도 떼기 쉽지 않았다.
북핵 문제 해결이 요원한 상황에서 정부는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며 개별관광 등을 제안했지만, '남측이 미국 눈치만 본다'는 불만이 쌓여가던 북한은 결국 전단 문제를 명분으로 대남 공세의 포문을 열었다.
대립의 2017년과 화해의 2018년, 교착의 2019년을 보낸 남북관계는 6·15공동선언 채택 20주년을 맞은 올해 다시 대립 구도로 돌아갈 위기에 처한 셈이다.
정부는 북한이 문제 삼고 있는 대북전단 살포 문제에 강력히 대응하고 있지만, 전단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북한이 다시 마주 앉으려 할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은 이미 남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노동신문 등을 통해 '남북관계 총파산'을 언급하는 등 대남 공세를 사회적 어젠다로 세팅한 분위기여서 쉽게 태도를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2000년 정상회담으로 남북한의 정상이 반세기 만에 마주 앉았고, 또다시 20년이 흘렀음에도 남북한 분단체제는 허물어지지 않은 채 공고해만 가는 모양새다.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서도 '북핵 진전 없자 남북관계도 한계' 실감…반전 쉽지 않아 남북 정상이 처음으로 만나 한반도 화해와 평화의 새 시대를 선언했던 6·15 남북정상선언이 채택 20년을 맞았다.
2000년 6월 15일 김대중 당시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뒤 평양 순안공항을 떠나면서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 포옹하고 "남과 북은 지금까지의 대결의 시대에 종지부를 찍었다"고 밝힐 때만 해도 남북 화해 시대가 성큼 다가올 것 같았다.
그러나 기대와 달리 이후 남북관계는 나아가는 듯하다가도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오는, 마치 도돌이표에 갇힌 형국이 계속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마찬가지다.
2018년에만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되면서 '이번에는 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퍼졌지만, 6·15공동선언 20주년을 앞둔 지금의 남북관계는 '6·15 이전으로의 회귀'를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북한은 대북 전단 살포 문제를 계기로 남북 연락 채널을 모두 끊고, 남한을 '적'으로 규정하며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북한 선전매체가 정부의 6·15 공동선언 20주년 행사를 '철면피한 광대극'이라고 한 비난은 지금의 남북관계 현실을 대변해준다.
지난 20년간 남북관계의 부침은 남한 정권교체에 따른 대북정책 변화에서도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핵심은 북한의 지속적인 핵 개발에 있다.
남북은 경제협력을 통한 민족 경제의 균형 발전 등이 적시된 '6·15 정상선언' 채택 이후 각 분야에서 전례 없이 활발하게 교류했다.
금강산관광이 본격화하고 개성공단이 조성되면서 남북이 더는 과거의 대립 관계로 돌아가지는 않으리라는 기대감이 퍼졌다.
이런 분위기를 이어 2007년 10월에는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김정일 위원장 사이에 2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돼 '10·4선언'이 도출됐다.
2006년 북한의 첫 핵실험이 진행되는 등 위기도 있었지만, 남북관계에 급브레이크를 걸 정도는 아니었다.
2007년 북핵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의 첫 단계 이행계획인 '2·13 합의'가 도출되는 등 성과를 거둔 것도 도움이 됐다. 그러나 2008년 들어선 보수 성향의 이명박 정부가 '비핵·개방·3천'으로 대변되는 '선(先) 핵 폐기' 원칙을 고수하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2008년 7월 박왕자 씨 피살사건으로 금강산관광이 중단되자 북한이 금강산 부동산 동결·몰수 등으로 맞서는 등 남북관계는 빠르게 얼어붙어 갔다.
북한이 이듬해 장거리 로켓 발사와 2차 핵실험 등 고강도 도발을 이어가고, 2010년 북한의 천안함 폭침과 이에 대응해 북한과의 인적·물적 교류를 끊는 5·24 조치까지 시행되면서 경색 국면은 더욱 확고해졌다.
여기에 박근혜 정부의 북한 붕괴론에 입각한 대북 압박정책과 북한의 잇따른 핵실험·미사일 도발이 맞물리면서 남북관계는 최악의 국면으로 빠져들었다.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인 개성공단마저 박근혜 정부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응해 2016년 2월 전면 중단을 선언하면서 문을 닫았다. 꽁꽁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는 2017년 5월 출범한 문재인 정부의 적극적인 화해 손길에 북한이 이듬해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로 호응하면서 급속도로 풀렸다.
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단둘이 만나 대화하는 모습, 문 대통령이 그해 9월 평양 5·1 경기장에서 15만 평양시민 앞에서 연설하는 모습 등은 달라진 남북관계에 대한 희망을 주기에 충분했다.
2018년 6월 12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 간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까지 성사되면서 마침내 냉전의 마지막 공간인 한반도에도 평화가 깃들 것이라는 흥분이 최고조에 달했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이에 따라 미국이 제공할 상응 조치를 둘러싼 실무협상은 지지부진했고, 지난해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2차 북미정상회담이 제재 완화에 대한 이견으로 '노딜'로 끝나자 협상은 동력을 잃었다. 북핵 문제에서 진전이 없자 남북관계도 벽에 부닥쳤다.
문재인 정부는 철도·도로 연결과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등의 청사진을 그렸지만, 대북제재로 한 발짝도 떼기 쉽지 않았다.
북핵 문제 해결이 요원한 상황에서 정부는 '할 수 있는 것부터 하자'며 개별관광 등을 제안했지만, '남측이 미국 눈치만 본다'는 불만이 쌓여가던 북한은 결국 전단 문제를 명분으로 대남 공세의 포문을 열었다.
대립의 2017년과 화해의 2018년, 교착의 2019년을 보낸 남북관계는 6·15공동선언 채택 20주년을 맞은 올해 다시 대립 구도로 돌아갈 위기에 처한 셈이다.
정부는 북한이 문제 삼고 있는 대북전단 살포 문제에 강력히 대응하고 있지만, 전단 문제가 해결된다고 해서 북한이 다시 마주 앉으려 할지는 불투명하다.
북한은 이미 남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노동신문 등을 통해 '남북관계 총파산'을 언급하는 등 대남 공세를 사회적 어젠다로 세팅한 분위기여서 쉽게 태도를 바꾸지는 않을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2000년 정상회담으로 남북한의 정상이 반세기 만에 마주 앉았고, 또다시 20년이 흘렀음에도 남북한 분단체제는 허물어지지 않은 채 공고해만 가는 모양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