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세기 한국도 비슷한 고민에 빠졌다. 위기의 이름은 대홍수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바뀌었다. 정부는 지난달 말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기간산업안정기금 출범식을 열었다. 기금의 목적은 명확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일시적 자금난을 겪고 있는 대기업을 살려내는 것이다. ‘40조원짜리 노아의 방주’인 셈이다.
고민의 본질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다.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포기할 것인가. 정부는 신속하게 움직였다. 지난달 22일 문재인 대통령이 주재한 5차 비상경제회의에서 윤곽이 잡혔고, 1주일 만에 법적 근거를 담은 산은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코로나발 구조조정 본격화
테러나 전쟁보다 코로나19가 경제에 더 큰 피해를 줄지 모른다는 두려움은 전 지구적이다. 시나리오는 비교적 단순하다. 코로나19 위기의 본질은 ‘전염’이다. 당연한 귀결로 해결책은 ‘차단’이다. 각국이 하나같이 ‘사회적 거리두기’에 몰두하는 이유다. 곧바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고, 모이지도 않으면서 실물 경제는 활력을 잃어버렸다. 자기 돈만으로 사업하는 사람은 드문 법. 금융회사에서 빌린 돈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도 하나둘 늘어났다. 금융은 실물 경제의 모세혈관에 혈액을 공급한다. 금융이 부실해지면 심장에서 먼 조직부터 서서히 괴사한다. 곪은 부분을 잘라내는 구조조정은 필연.
정부의 상황은 수술 집도의와 별반 다르지 않다. 환자에게 수술 이유를 설명해야 하듯, 구조조정에 대한 분명한 기준을 제시해야 한다. 기간산업안정기금을 출범시키면서도 ‘국민 경제와 고용 안정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기업을 중심으로 지원한다’는 대원칙부터 세웠다. ‘총차입금이 5000억원을 넘고, 근로자가 300명 이상이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 세부 원칙도 마련했다.
하지만 그물은 여전히 성기다. 모호한 상황이 속출할 개연성이 크다. 좀 더 촘촘하게 기준을 정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생사가 걸린 문제다. 복잡다단한 이해관계도 얽혀 있다. 솔로몬이 기준을 정한다고 한들, “아, 그렇군요”라고 선선히 물러설 기업은 없다. 사회적 갈등은 이렇게 잉태된다.
사회적 갈등 야기한 기안기금
갈등의 조짐은 이미 나타나고 있다. ‘우리부터 챙겨달라’는 호소가 잇따른다. 자칫 무게중심을 잘못 잡았다가는 욕먹기 딱 좋은 구조다. 구체적인 기업 단위로 내려가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진다. 쌍용자동차가 대표적이다. 기금이 가동되기 전부터 “쌍용차는 구조조정 기업이므로 기금 지원 판단에 신중해야 한다”(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는 얘기가 흘러나왔고, 얼마 지나지 않아 “2000억원의 기금 지원이 필요하다”(정일권 쌍용차 노조위원장)는 주장이 맞부딪혔다.
지원 여부를 결정하는 ‘노아’는 기금운용심의회 소속 민간 전문가 7인이다. 여야와 각 부처에서 한 명씩 추천했다. 모두의 의견이 같을 확률은 희박하다. ‘과반 출석, 과반 찬성’이라는 기금 결정 시스템에는 이런 태생적 한계가 녹아 있다. 어설픈 야구 심판은 벤치 클리어링을 촉발한다. 갈등을 키워 경기를 난장판으로 만든다. 윙윙 소리를 내며 코로나 후폭풍이 몰려오고 있는 지금, 사심 없던 노아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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