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59·사진)는 최근 출간한 장편소설 《기억》(열린책들)에서 영혼이나 환생의 영역을 소설로 풀어낸 이유를 이같이 설명했다. 베르베르는 14일 서면 인터뷰에서 “영성(靈性)은 흥미로운 탐구 대상”이라며 “불교와 초기 기독교 및 유대교에 관심을 갖는 것도 이들 종교가 정신적 탐험의 도구로서 지니는 유용성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기억》은 주인공 르네 톨레다노가 이 최면을 통해 불교의 윤회 사상과도 맞닿아 있는 ‘전생’을 찾고 그 전생을 이용해 신화 속 존재를 파헤치는 내용이다. 퇴행 최면을 비과학적이며 심리적 요인에 의한 것이라고 폄하하는 시선에 대해 그는 “최면에서 깬 사람이 자신이 경험한 시대와 장소를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걸 보고 있으면 상상력으로만 치부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며 “소설을 통해 최면으로 보게 되는 전생이나 환생의 존재를 믿으라고 설득할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퇴행 기억으로 진행되는 르네의 모험을 통해 작가는 기억의 집합체인 역사의 실체가 승자들의 기록물로 정의하는 것에 비판적 시선을 보낸다. 고등학교 역사 교사인 르네는 패자의 역사, 이름 모르게 사라진 약자들의 역사와 같이 존중받지 못하는 이들에 대한 기억을 되짚어 낸다. “주류 역사의 문제점은 모두 정복자와 승리자들 위주라는 것입니다. 로마에 패한 카르타고, 그리스에 패한 트로이, 스페인 정복자들에 의해 사라진 마야 문명 등은 모두 발달된 문명을 이룩한 민족들이었지만 전쟁에서 지며 역사에서 사라졌죠. 제가 글을 쓰는 것은 공식 역사와는 다른 관점에서 인류 역사에 선한 영향력과 악한 영향력을 끼친 사람을 구별해 내고 약자, 패배한 사람들, 잊힌 존재들을 활자로 되살려내기 위한 방편입니다.”
전생과 함께 집단 기억의 산물인 역사를 가르치는 교사, 알츠하이머 환자, 전생을 불러내 기억을 되살리는 최면사 등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정체성에서 기억이 얼마만큼 차지하는지, 인간이 어떻게 기억을 만들고 지켜나가는지’를 끊임없이 질문한다. 그에게 기억은 어떤 의미일까. “망각에 대해 공포에 가까운 감정을 느껴요. 할머니 두 분이 알츠하이머로 돌아가셨고 어머니가 알츠하이머로 투병 중인 가족사와도 무관하지 않죠. 제가 꿈을 기록하고, 만나는 사람들에 관해 메모해놓는 것은 망각과 싸우는 방법입니다. 소설 쓰기도 제 생각이 흩어져 사라지기 전에 붙잡아 두기 위한 것이죠.”
베르베르에겐 전작의 플롯들을 반복한다는 비판이 자주 제기된다. “사람은 누구에게나 세계를 지각하는 자신만의 방식이 있죠. 애거사 크리스티도 비슷한 이야기 구조를 고수했고, 쥘 베른과 조르주 심농에게서도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그들만의 어떤 스타일이 발견돼요. 작품 간 유사성은 작가 고유의 사고 구조를 반영한 것이지만 그럼에도 제 아이디어를 조합할 창의적 방식을 계속 고민하고 있습니다. 경험이 더 쌓이고 나이도 더 들어 지금보다 더 창의적인 작가가 되는 게 제 바람이자 목표입니다.”
은정진 기자 silv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