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대남·대미 라인 고위급 관료들이 연일 바통을 이어받는 식으로 릴레이식 비난 담화를 쏟아내고 있다. 노동신문 등 기관지와 대외 선전매체들 역시 대남·대미 비방 수위를 높이고 있다. 남북 관계를 대결 국면으로 끌고가 협상력을 키우고, 경제난으로 틈이 벌어진 내부 체제 결속을 위한 정치 술수로 풀이된다.

최근의 릴레이 담화는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으로부터 시작됐다. 김여정은 지난 4일 탈북민 단체들의 대북전단 살포를 트집잡으며 “남북 9·19 군사합의 파기를 각오하라”고 엄포를 놨다. 12일 아침에는 이선권 외무상이 나서 “우리의 전략 목표는 미국의 장기적인 군사 위협을 관리하기 위한 보다 확실한 힘을 키우는 것”이라고 했다.

12일 밤부터 다음 날까지 24시간 동안 장금철 통일전선부장, 권정근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김여정으로 이어지는 대남 압박 담화가 연달아 나왔다. 장금철은 12일 밤 “이제부터 흘러가는 시간들은 남조선 당국에 참으로 후회스럽고 괴로울 것”이라고 주장했다. 권정근은 13일 “비핵화라는 개소리는 집어치우는 게 좋다”는 담화를 발표했고, 같은날 밤 김여정이 마지막 바통을 받으며 “대적 행사권을 군에 넘기겠다”고 군사도발을 예고했다. 급기야 대외선전매체 ‘조선의 오늘’은 옥류관(냉면집) 주방장의 발언까지 전하며 우리 정부를 비난했다. 옥류관 주방장은 “평양에 와서 옥류관 국수를 처먹을 때는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더니 지금까지 전혀 한 일이 없다”고 했다. 2018년 9월 남북 정상회담 당시 옥류관에서 오찬으로 평양냉면을 먹었던 문재인 대통령 등 우리 측 인사들을 향한 막말이다.

대북제재 장기화와 코로나19 사태로 경제난에 직면한 북한이 대남 비판을 통해 내부 결속을 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중국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 4월 북·중 간 상품 수출입 규모는 2400만3000달러로 전년 동기 대비 10분의 1 수준에 그쳤다.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은 지난 9일 성명을 통해 “북한은 코로나 사태로 1월 이후 5개월간 북·중 국경을 봉쇄하면서 식량 상황이 크게 악화됐다”고 했다.

이정호 기자 dolp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