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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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스러운 폭언으로 남조선 절대존엄을 모독했는데, 온 몸으로 각하를 지키던 청와대 전현직 참모들, 한 말씀 하셔야죠. 사실 그날 냉면이 맛 없었다든지, 옥류관 냉면이 대단하다는 생각은 당신들 뇌피셜이라든지. 박수 좀 쳐 줬더니 정은이가 꽃을 다 꺾었다든지. (진중권 교수 페이스북)"

평화의 상징으로 여겨졌던 옥류관 평양냉면이 불과 2년 2개월만에 갈등과 비난의 상징이 됐다.

최근 오수봉 옥류관 주방장은 북한의 대외선전 매체 ‘조선의 오늘’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향해 “평양에 와서 이름난 옥류관 국수를 처먹을 때는 그 무슨 큰일이나 칠 것처럼 요사를 떨고 돌아가서는 지금까지 전혀 한 일도 없다”고 막말을 퍼부었다.

북한의 도 넘은 발언이 계속되다 급기야 옥류관 주방장까지 대통령을 비난하고 나서자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외교부나 통일부는 굳이 북한의 유치한 대응에 같은 수준으로 대응할 필요가 없다"면서도 "다만 의원들은 북한의 도발에 대해 우리 국민이 느끼는 불쾌감을 대변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2018년 9월19일 남북정상회담을 위해 평양을 방문했을 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내외와 옥류관에서 오찬을 함께 했다. 평양 방문 공식·특별수행원들도 옥류관에서 식사했다. 리선권 당시 조국평화통일위원장(현 외무상)이 같은 테이블에 앉은 재계 수장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문 대통령에 대한 막말의 포문을 연 것은 김여정 북한 노동당 제1부부장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친동생인 그는 2018년 2월 평창동계올림픽을 앞두고 특사 자격으로 남한을 방문했다. 김일성 일가를 일컫는 이른바 '백두혈통'이 남한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그는 문재인 대통령과 청와대에서 오찬을 함께하며 오빠의 친서를 전달했고, 화기애애하게 여자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예선 첫 경기를 관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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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에는 임종석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 등과 함께한 비공식 환송만찬 자리에서 "하나 되는 그날을 앞당겨 평양에서 반가운 분들을 다시 만나기를 바란다"며 덕담을 남겼다.

2018년 4월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 9월 평양에서 열린 정상회담에서도 지근거리에서 의전을 수행하며 행사의 분위기를 밝혔다. 현장을 담은 사진에는 이리저리 동분서주하며 행사를 챙기고 문 대통령에게 살가운 미소를 보내는 그의 모습이 곳곳에 남았다.

하지만 김 제1부부장은 지난 3월 3일 밤 '청와대의 저능한 사고방식에 경악을 표한다' 제목의 담화를 발표하며 청와대의 북한 화력전투훈련에 대한 유감 표명을 맹비난했다. 담화에는 '주제넘은 실없는 처사', '바보스럽다', '저능하다' 등 원색적인 표현이 담겨 충격을 줬다.

지난 4일 담화에서는 대북전단을 살포하는 탈북민을 '쓰레기', '똥개' 등 거친 표현으로 난타하며 불쾌감을 노골적으로 표시했다.

남측이 제대로 조치하지 않는다면 금강산 관광 폐지에 이어 개성공업지구 완전 철거,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9·19 남북군사합의 파기까지 나아갈 수 있다고 으름장을 놨다.

이로부터 아흐레 만인 13일 담화에선 본격적인 대남 군사행동까지 예고했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사진=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 당 중앙위원회 제1부부장 (사진=연합뉴스)
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은 이같은 김 제1부부장의 도 넘은 언사에 대해 "김여정의 타겟은 삐라가 아니라 문 대통령이었다"라고 말했다.

하 의원은 14일 페이스북 글을 통해 "청와대가 완전히 헛다리 집었다. 삐라가 본질이 아니었다"라며 "문 정권이 아무리 삐라에 대해 강력 대처해도 북한은 대남 말폭탄을 멈추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김여정이 공언한대로 북한쪽에 위치한 남북연락사무소는 조만간 폭파하고 군사적 압박으로 넘어갈 것 같다"면서 "과거 사례를 보면 북한이 대남무력도발할 때는 요란하게 떠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처럼 한국 정부가 나약한 태도를 보이면 북한의 오판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타겟은 삐라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임이 명확해지고 있다"면서 "삶은 소대가리 표현이 나올 때는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어제 옥류관 주방장까지 내세워 문대통령에게 치욕을 준 것은 문대통령과는 관계개선 없다는 절교선언이다"라고 주장했다.

하 의원은 "북한의 요구를 들어주면 남북관계 좋아지겠지 하는 요행심은 자칫 나라를 큰 위기로 몰고 갈 수 있다"면서 "지금처럼 김여정 하명에 계속 굽신굽신하는 모습만 보인다면 대한민국은 북한의 노예국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김 제1부부장이 군사 도발 의지를 표명하는 등 남북관계가 최악의 상황에 빠지자 정부는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 당일 기념식을 최대한 축소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이 대북 메시지를 내놓을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